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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제4회

안 동일 지음

송파나루

할미탈을 썼던 용산아씨 금원과 노장탈을 썼던 꼭두쇠 덕배가 마주 앉았다. 송파 나루에 있는 주막 평상 위 였다. 탁배기 한잔씩 걸치고 나면 연희패들은 양주 두물머리 나루로 떠나고 금원은 춘궁리로 갈 셈이다.
“어째 그 추사 대감 어르신은 아무 일 없으시려나 모르겄네. 잘 들어가셨겠지.”덕배 아재가 막걸리 사발을 비우면서 입을 열었다.
주암리 삼거리 까지만 함께 갔고 그 다음부터는 달준과 초립동에게 들것에 실린 추사 대감을 맡기고 나루로 왔기 때문이다. 우루루 몰려갈 필요 까지 없었다. 초당 앞에는 언제 부터인지 감시하는 눈이 있었다.
금원은 구룡 언덕에서 젊은 선비들을 태운 말들이 말죽거리 큰길에서 주암리 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었다. 전갈을 받고 달려 온 추사의 제자들일 터였다.

금원과 덕배 패가 부용사를 떠난 직후 태을 스님은 지필묵을 꺼내 급히 뭔가를 적었었다. 작은 기름종이에 세필로 쓰는 해동청 서신이었다. 엽전 크기로 접은 편지들 위에는 통인동 변대감, 가회동 박 교수, 그리고 운현재 등의 수신자와 행선지의 이름이 적혔 있었다.
“네 그럼요, 삼거리에서는 댁이 바로 코앞인데요. 잠시 혼절 한 것이기 때문에 괜찮으실 겁니다. 더구나 그 털보 초립동청년이 힘께나 쓰던데요. 뭐.”“그렇두만“
“아무튼 오늘 아재네 패가 마침 부용사에 올라와 있었던 게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자네 덕이지, 자네가 있다고 해서 몰려간 것이니, 암튼 나도 자네와 큰스님을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어서 그나마 면이 섰네. 자네한테 신세를 한 두번 졌는가?”“아재와 저는 늘 동패가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해 줬다면 고맙고, 그려, 그 동패라는 말 힘이 부쩍 나게 하는 말이지, 나는 이제야 뭐 사람답게 산다는 생각 하다니까, 신관은 고달파도…”
오늘 탈패가 부용사에 왔던 것은 정말 절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추사 김정희 대감은 단단히 곤욕을 치렀을 게다.

오늘 아침, 노스님의 고갯짓에 따라 금원이 스님과 덕배 아재 두 사람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자 스님은 구룡재 언덕과 과지초당에 대해 물어왔다.
“왜 추사 대감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과천 과지초당은 추사 김정희 대감의 처소였다. 추사는 금원의 스승이자 집안 내 어른이기도 했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6촌 형이었다.
“추사 대감에게 사충서원 작자들이 서독이라는 것을 발행 했다는군.”서독(書牘)은 서원에서 임의로 만들어낸 일종의 소환장 이다. 관가의 그것 보다 더 악명을 떨치고 있는 물건이다. 근자에 들어 더 횡행하고 있었다. 다 재물을 갈취하려는 수작이었다.
“무슨 꼬투리로 그런답니까?”
“원춘이 요즈음 부쩍 송파 봉은사 출입을 한다지 않는가, 아예 불문으로 출가를 하려 한다는 얘기도 있고…”

원춘은 추사의 자였다. 호는 아랫사람도 부를 수 있지만 자는 절친한 친구나 집안 어른들만이 불렀다.
용화종의 최고 어른이자 계회의 회주이기도 한 스님은 추사 대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었다. 다행히 저들이 추사를 납치하려 하는 장소와 시간에 대해 알아냈기에 놀이패 장정들을 보내 급한 불을 끄려 한다고 했다. 덕배 아재의 상두계는 계회의 행동대이기도 했다.
“午(오)시 라면 급히 움직여야 하겠네요.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스님,”
두물머리 나루에서 배를 타면 오시 전에 구룡재에 닿을 수 있었다.
“나나 박 존위는 자네가 구룡 언덕 지형이나 일러주고 저쪽 토굴로 돌아 갔으면 하는데…” “아닙니다. 제가 꼭 가야 합니다. 그래야 일도 수월해지고…”금원은 완강했다.
“알았네, 그렇게 하세나. 대신 너무 앞에 나서진 말게.”
노스님에게 가슴찍기 합장 인사를 하곤 돌아서 동패들이 탈을 벗고 휴식하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동패들이 무슨 일 인가 싶어 우루루 일어선다.
“회주님 당부가 떨어졌소이다. 벗님들 얼른 준비하고 가십시다.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하고…”
“선상님도 같이 가는 겁니까?”그렇다는 말에 모두들 와하고 함성을 올렸다.

일행은 나루로 내려가기 전, 아랫마당 입구의 장승 매향비로 먼저 몰려갔었다.
매향비는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돌 장승이었다. 사람들은 그 형상이 철을 먹고 불을 뿜는 전설속의 괴수 불가사리의 모습이라고 했다. 용화종의 莊嚴神物(장엄신물)이다.
금원이 쌓아둔 더미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올리려는데 손 끝이 따끔한다. 작은 가시에 찔린 모양이다. 크게 개의치 않고 가지를 구덩이에 던지고 합장을 했다.
‘메태야 매태야 매태에하라 사바하’
미륵의 현존을 비는 주문이다. 향나무를 땅에 묻는 것은 장차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하면 그때 피우기 위해서였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가시를 뽑으려는데 매끄럽게 잘 뽑히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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