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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77, 마지막회

안동일 작

작자의 말

국내의 경제 상황이며 냉온 기류를 오가며 부침을 거듭하는 남북문제 그리고 중국의 역사 왜곡, 일본과의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 등 제반 여건이 난마처럼 얽혀지면서 그 빛이 다소 바래져 한 때의 장밋빛 바람으로 보여지기도 한다지만 이런 관심과 바람은 ‘편협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동북아시아 각국의 역사인식 공유와 평화공존, 상호발전 모색이라는 당위 섞인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지평을 한 차원 높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동북아 연대는 블록 간 공조 그리고 경쟁이라는 새로운 지리의 시대로 돌입한 지구촌 정세 환경에도 부합되는 정서라고 할 수 있다. 냉전 종식 후 15년, 유럽은 25개국의 거대 연합체를 형성해 통합과 협력의 길을 착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이런 저런 난관이며 우여곡절이야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유럽은 냉전 붕괴 후의 상황을 활용하면서 위상과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중이다.
또, 북미와 남미 역시 지역 경제연합과 공동체 결성에 적극 나서서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  지역은 지역내 결합의 당위와 필요성에는 공감해 경제협력이며 안보협력에 관한 논의가 제기되고는 있다 해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을뿐 현실은 갈 길이 먼 상황 아닌가?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라이벌 의식 고조, 중·일간의 갈등, 그리고 여전히 불씨를 내재하고 있는 북핵 문제며 각국간 무역 분쟁 등 현안을 놓고 냉전시기의 중·소 대륙 동맹라인과 미·일 해양 동맹라인이 겉모습을 바꿔 긴장은 완화돼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립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부인 못할 사실이다.

이같은 시기에 한국이 남북문제 양자관계의 틀을 뛰어 넘어 동북아 평화 연대라는 국제적 정책목표를 세우고 이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분명 성장한 국력의 반영이자, 우리 한국인의 세계인식 확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속에 담을 콘텐츠를 어떻게 채우는가이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힘만으로는 채울 수 없기에 주변국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고 부양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프로젝트라 하면서 고구려사의 자국사로의 편입이라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중국의 이와 같은 행동은 중화 패권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동북아 연대라는 큰 틀의 그림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의 왜곡 및 자국사로의 편입 시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 그들의 아전인수, 견강부회를 지적해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 대응이 감정적이며 국수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비쳐진다면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의 현실적 위상이며 전략적 위치에 대한 분석과 고려 위에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 중국은 물론 일본, 나아가 미국까지 포함하는 주변 당사국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한차원 높은 ‘동북’의 연대 협력의 구조 형성과 그 역사적, 논리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어찌 보면 공정에 대한 우리의 가장 차원 높은 대응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만주를 포함하는 고구려(동북)의 문제를 다룰 때 이 강역에서 연고권이 높은 한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만주족의 명맥이 끊어져 있다는 이즈음 4촌인 우리가 만주의 역사를 새롭게 연구하고 만주족의 인물들을 탐구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 성과는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 틀림없다. 한마디로 만주의 역사를 어느 한 민족의 틀과 시각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을 공유하고 있는 제 민족 전체의 틀에서 공통의 역사라는 인식을 갖자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이 강역에서 만큼은 오히려 이른바 중화민족이라는 한족의 설 땅이 아주 협소하게 된다는 것이 이내 명백해 질 것이다. 우리의 이른바 배달 민족주의로 중화의 패권 민족주의나 일본의 황국 민족주의와 정면으로 싸움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고 또, 국가의 국경을 변경시킬 가능성은 전혀 없다.

‘독도는 우리땅’을 넘어서 ‘만주는 우리땅’, ‘대마도도 우리땅’이라는 다소 계면쩍으면서도 무수히 불러 보았던 그 구호 속에 담겨 있는 ‘찬란한 반만년의 우리 민족사’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땅 중심의 아날로그적 미련에서 이제 벗어나야한다. 요즘 같은 지구촌 디지털 시대에 꼭 우리의 행정력이 미쳐야만 우리땅인가. 꼭 요즘 우리가 쓰는 우리식의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만이 동족인가.

중국이 아무리 자기네 역사라고 우긴들 천하가 엄연히 알고 있는 우리 민족의 고구려가 중화 속의 변방 고구려가 될 것인가. 이탈리아가 반도에 갇혀 있다고 로마의 역사가 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제는 시야를 더 넓게 돌려야 한다. 이제 우리는 ‘반만년 역사의 배달 겨레’라는 담론이 만들어 낸 프로그램 속의 국수적 성향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는 ‘빨간 캡슐약’을 먹어야 한다. 천 오백년전 우리의 영명한 선조 장수왕은 이미 이 약을 제조해 자신이 직접 장백산 강역의 제 민족들을 어우른 백성들과 함께 복용한 바 있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에 찬 역사 분석이다.

우리가 장수왕의 그 ‘빨간 캡슐약’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것을 오늘에 맞게 다시 제조해 낸 다면 우리 역사 인식의 지평을 확고히 넓히게 되면서 이런 발상 전환과 지평 변화가 트로이의 목마처럼 상대편에 의해 상대편 진영 깊숙이 들어가 종국의 승리를 따내는 가장 힘 있는 요소가 될 것이 틀림없다. 종국의 승리는 결코 우연으로 찾 아오는 것이 아니다.
마천동 산자락에서 저자    (연재 끝)

그동안 애독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10월 부터는 안동일작 ‘조선여인 금원’이 연재 됩니다. 계속 애독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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