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도림 스님과 한산성 전투
“공주 마마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스님”
오히려 경문, 미미가 짐짓 당황해 하는 태를 보였다.
“참 바둑이라면 이 아기가 잘 두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진이 퍼뜩 생각이 미쳐 한마디 했다.
경문은 바느질이며 서화 그리고 기박에 이르기 까지 잡기에도 능했다.
“그렇습니까? 무례가 아니라면 언제 한수 배웠으면 좋겠군요.”
도림이 반가운 듯 대뜸 대꾸를 했다.
“잘 두다니요, 그저 흉내만 낼 뿐인데요. 아버님도 참”
평소에도 미미는 시아버지 아진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오늘은 외부의 손님과 응대를 하는 것을 더 즐기려는지 그 스스로도 자리를 뜰 생각을 않는 태였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는가?”
미미는 자신의 두 아이 뿐 아니라 두 조카들까지도 제어를 제치고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었다.
“네 방금 씻겨 침상에들 뉘었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우리 아기 바둑 솜씨 한번 구경해 볼까?”
“스님 어떻습니까?“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올시다.”
이렇게 해서 야심한 시각 숙신장에서의 국수전이 시작 되었다.
아진은 흥미진진하게 바둑판을 응시 했다.
서로 겸양의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미미가 흑을 쥐고 도림을 공격하는 형세가 시종 계속 되고 있었다. 바둑에 문외한인 아진이 보기에도 도림의 솜씨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어이구 어이구 어떻게 여인네의 손속이 매섭단 말 입니까? 큰일입니다. 이쪽 대마가 다 죽게 생겼습니다.”
도림은 연신 엄살을 부리면서 교묘한 수로 빠져나가곤 했다.
“스님 그렇게 봐 주실 요량이시라면 더 안두겠습니다.”
미미가 토라진 듯 불만을 토했다.
“마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결국 미미의 흑집이 세집 이긴 것으로 해서 판이 끝났다. 워낙 빨리들 두는 통에 차한잔 마실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미미는 자신이 이기고서도 무언가 미심쩍은지 한판 더 둬야 한다고 시아버지를 쳐다보며 말 했다.
“이번 판은 무효입니다. 스님이 봐주시기만 하니 진정 승부를 다시 가려야 하겠습니다.”
“그래 한판 더 두시지요.”무미가 세 점을 깔았다.
“아니 세상에 이긴 사람이 점을 붙이는 경우도 있단 말입니까? 죽었군 죽었어.”
하면서 도림은 좌변부터 공격해 들어갔다.
“제가 삼한을 다 돌아다니며 바둑을 두었지만 여인네가 이렇게 높은 수를 지니고 있는 분은 마마가 처음입니다.”
연신 엄살을 떨면서 도림은 돌을 흩뿌리듯 속기로 던졌다.
놀랍게도 이번에도 미미가 딱 세집을 이기게 되는 것으로 판이 끝났다.
미미는 자세를 고치면서 도림에게 깍듯한 목례를 올렸다.
“스님 정말 오늘 저는 하늘을 본 듯합니다. 궁에 있을 때 한다하는 고수들을 다 만나 보았지만 스님이야 말로 진정 고수이십니다.”
“무슨 말씀을 소승은 이기는 바둑 알지 못합니다. 진 적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진도 퍼뜩 느끼는 바가 있었다. 도림이 다시 보였다. 장난끼가 서려 있었지만 그 장난끼 속에 깊은 속량이 있는 듯 했다.
미미가 다시 깍듯한 목례를 올리고 사랑을 나간 뒤 바둑판을 원래 있던 자리로 가져다 놓으면서 도림이 한마디 던졌다.
“백제의 개루왕이 기박을 아주 좋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한데 갑자기 개루왕의 이야기는 왜?”
도림은 자리에 앉아 자세를 바로 하면서 아진을 응시했다.
“오늘 장군을 찾아뵌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말씀 하시죠.”
“호국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백성을 먼저 생각하라는 대왕 마마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듣던대로 마마에 대한 충심이 대단 하시군요.”
“감사한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왕과 같은 현군을 만난 인연을 지닌 것이 우리의 홍복입니다.”
“고맙습니다. 스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마마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이 어떤것이라 생각 하시오? 장군은.”
“아무래도 개루왕의 백잔 일이 아니겠습니까? 스님도 아시고 오신것 처럼…”
“제가 개루왕을 거꾸러뜨리겠습니다. 장군, ”
“무슨 계책이 있으시군요.”
“바둑입니다. 바둑.”
“그렇군요 스님의 바둑이라면 세상의 누군들 거꾸러지지 않겠습니까?”
“바둑으로 개루왕을 거꾸러 뜨리면 연후에 도탄에 빠진 백제의 백성 들을 구휼하는 것은 마마와 장군의 몫이 아니겠소?”
“무슨 말씀이신지 짐작은 하겠소만 말처럼 쉬운일은 아닐 터인데…”
“그렇지요 그래서 장군의 도움이 필요한게 아니겠습니까? 우선 마마께 소승을 소개시켜 주십시오.”
“흐음….”
대창하는 잠시 생각에 잠겨야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