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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63회

안동일 작

백제와의 한산성 전투

이 밖에도 백제의 개로왕은 자신과 아들, 왕권 강화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강화를 시도하여 왕족중심의 집권체제를 만들려고 하였다. 개로왕은 이전인 458년에는 중국 송나라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관작제수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그때 관작 제수를 요청한 11명을 보면, 그의 두 아들 여도(餘都: 뒤의 文周王)와 여곤(餘昆: 文周王의 아우이자 東城王의 아버지인 昆支로 추정됨)을 위시한 8명이 왕족인 여씨(餘氏)인 반면, 당시 백제의 큰 세력이었던 해씨(解氏)나 진씨(眞氏)는 없었다. 또한, 문주왕은 왕자로서 백제의 최고관직인 상좌평(上佐平)을 지냈다.

이러한 사실들은 개로왕이 구래의 귀족들을 배제시키면서 왕족중심의 집권체제를 추구했음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왕권강화를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귀족세력들이 그대로 존속하는 속에서 그들을 배제시킨 왕족중심의 집권체제는 백제 내부의 정치적 결속을 와해시키고, 백제왕실의 영도력 자체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간자와 유민들을 통해 수집해서 고구려 조정과 군부가 내린 결론이기는 했다.

조당에서의 논의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군사를 동원해서 백제와 개로왕을 징치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기는 했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라와의 전쟁이 아닌가. 상황을 더 관찰하고 그 시기와 방법을 강구하기로 하면서 회의를 마쳐야 했다.

그 며칠 뒤.
아진, 대창하가 모처럼 집에서 가족이 모두 모여 안주인인 도도의 진두지휘 아래 차려진 저녁을 함께 한 날이었다. 숙신장 이라고도 불리 우는 대창하의 집은 결코 작지 않은 규모였지만 이제는 그게 비좁게 느껴질 만큼 식구가 늘어 있었다.
가정을 이룬 두 아들이 아직 그와 함께 살고 있었고 이젠 손자 손녀들도 생겨 있었기 때문이다.
대창하가 사랑을 겸하고 있는 부경채의 다방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군, 어떤 스님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예, 처음 뵙는 스님입니다.”
“이 밤에? 처음 보는 스님이…어쨌든 모시도록 하시오.”
청년 시절 벽암스님과의 인연 이후 아진은 불교의 가르침에 가슴을 열었고 굳이 심취 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전쟁에 나가게 되는 등 일이 있을 때 마다 마음의 지표로 그 가르침을 새기곤 했다.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이루어지거늘 선업(善業)을 지으면, 진정한 마음으로 성의를 다하면 선과(善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었고 또 그런 믿음은 그를 실망시키거나 좌절에 빠트리지 않았었다.
의외로 젊은 스님이었다. 체구가 작았지만 재주 있어 보이는 외모였다.
“도림이라 합니다.”
스님은 아진에게 합장을 하면서 말했다. 아진의 얼굴을 쳐다보는 작은 눈매가 반짝였다.
“어서 오시지요.”
아진은 책상에서 일어나 다방의 탁자로 다가가면서 스님을 자신 옆쪽에 앉게 했다.
도림이라 자신을 소개한 스님은 주변을 둘러보기만 할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눈치로 보아 아진의 부경 사랑의 짜임새며 가구 그리고 놓여 있는 책들을 살피는 모양인데 눈가에 미소가 흐르는게 불만스러워 하는 태는 아니었다.
“그래 어쩐 일로…”
아진이 먼저 입을 여었다.
“청룡스님을 아시지요?”
“예 잘 알고 있지요. 요즘엔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청룡스님이라면 벽암의 제자로 아진과는 무예를 겨뤄 보기도 했던 호걸풍의 스님이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도반은 호국무예를 창안한다 해서 분주합니다.”
“그렇군요. 청룡스님 답습니다. 호국무예라…”
“호국이라 하면 장군께서 더 윗길이라고 청룡은 말하곤 하더군요.”
“무슨 과찬의 말씀을 그저 주어진 일을 해낼 뿐인데요…”
잠시 침묵이 더 흘렀다.
“장군께서도 바둑을 즐기십니까?”
벽난로 옆에 놓여 있는 바둑판을 보면서 도림이 물었다.
“아닙니다. 아직 기박과 가까이 할 기회를 갖지 못해서… 저건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장백산 박달나무로 만든 판이라고 바둑을 즐기는 어느 대신이 그곳에 다녀오다 몇 개를 구했다고 선사한 것이었다.

“그러시군요.”

“스님께선 바둑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예, 원체 수양과는 거리가 먼 돌중이라 잡기에 소양이 좀 있는 편입니다.”

그때 부경채 문의 풍경이 흔들렸다. 안체에서 다과라도 내오는 모양이었다.
“아버님 찻물 내왔습니다.”
둘째 며느리였다. 장수왕의 양녀인 경문공주 바로 그였다.
“그래 들거라.”
과정이야 어쨌든 공주로 책봉 되었던 그녀가 이젠 대씨 가문의 여인이 되어 집안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워낙 그런 쪽에 무딘 도도나 큰 며느리와는 달리 성정이 밝았고 동작이 재빠른 그녀를 볼때 마다 아진은 무미를 떠올려야 했다.
“우리 둘째 며느리입니다. 스님께 인사드리거라.”
탁자위에 차 소반을 올려 놓는 그녀와 도림을 번갈아 보면서 아진이 말했다.
도림은 작은 눈이 동그래져 자세를 고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는 것이었다.
“공주마마이시군요. 소승 도림입니다.”
도림도 경문공주의 일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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