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왕의 사돈이 되다
나라 정국은 안정돼 가고 백성들의 살림이 다소 나아지기는 했다지만 왕의 큰 꿈인 해상왕국의 길은 아직 요원 했다.
“자네가 송구해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상일이 모두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된다면야 어찌 사람의 일이라 하겠느냐? 다 때가 있는 법이라 믿고 열심히 할 밖에…”
“그래도 여러 가지로 심려가 많으신데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하는 소장의 무능이 한스럽습니다.”
“별 말을 다 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자네와 운동을 하고 나면 다른 어느 때 보다 힘이 솓곤하는데 지금 산적해 있는 문제들 가운데 자네 책임인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오늘 내가 자네를 부른 까닭도 특별히 무슨 해결책을 찾겠다는 게 아니라 같이 있으면 힘이 나고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아진 너한테는 사람에게 힘을 얻게하는 그런 기운이 있단다.”
“황공하옵니다.”
“언젠가도 말했다만 세상일이 어려울때면 한발짝 물러서서 다시 집어보는 그런 지혜와 여유가 필요한 법이지.”
“그래도 특별히 분부 하실 일이 계시온지?”
아진은 다른 일은 몰라도 토지개혁이며 군부개편과 관련해 왕이 자신에게 무언가 임무를 주려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다시 물었다.
“아직 특별한 일은 생각지 않았다.”
왕은 그러고 잠시 침묵에 들어갔다.
그때 미미가 물병을 들고 왔다.
“마마 약수 드시지요.”
“그래 대 장군에게도 한잔 올리거라.”
왕은 미미가 공손하게 건네는 사발을 받아들고 물병에서 따라 주는 약수를 받으면서 한마디 했다.
위쪽 약수터에서 방금 받아온 샘물일 터였다.
아진도 물 한사발을 받았다.
미미를 보면 아진은 늘 죽은 아내 무미를 떠올리곤 했다. 여러모로 미미는 무미를 빼다 놓은듯 닮았다. 인물이야 미미가 훨씬 여성스럽고 출중했지만 지체가 무미만큼 높은 집안 출신은 아니지만 왕에게 스스럼 없이 대하는 것이 특히 그랬다.
“오늘 따라 물맛이 썩 좋구나. 아주 시원하구나.”
왕이 물 한사발을 단숨에 들이킨 뒤 말했다.
“마마 오늘도 그리 빨리 드시옵니까? 저희들 한테는 물 한잔도 음미해서 천천히 씹어 마셔야 한다고 그러시면서…”
“그랬던가. 아진과 함께 운동을 했더니 기운이 더 나서 그런다.”
물을 마시던 아진은 그 소리를 듣고 부러 천천히 음미하듯 마셨다.
그런 아진을 보며 왕도 생각 났다는 듯 아진의 집안 일을 물어왔다.
“얼마전에 자네 며느리를 보았지 않은가? 할아버지 될 소식은 없는가?”
왕은 지난 가을에 있었던 대창하의 장남 경준의 혼사날에 기러기 꾸러미를 하사 했었는데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 그 소식은 없습니다.”
경준은 지금 집을 떠나 중원 주둔군의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자네 아들이 또 하나 있지 않은가?”“네 하지만 아직 소견이 차 있지 못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둘째 경서는 형과는 달리 문약한 편 이었다. 병적에 올라 있기는 한데 무예보다 학문을 더 가까이 하고 있어 태학 쪽 출입이 잦았다.
“한번 궁에 같이 들어오도록 하게나, 내 좋은 규수 감을 점찍어 둠세.”
그러면서 왕은 무슨 뜻인지 미미를 쳐다보는 것 이었다.
“이제 곧 찬바람이 불기 시작 하겠구나.”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체를 한번 흔들면서 저만큼 오동나무 꼭대기에 앉아있는 까치를 보면서 말했다. 아까부터 끼룩대고 울던 까치였다.
그런데 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까치가 포드득 하면서 왕의 품을 향해 돌진하듯 날라 드는 것이었다. 아진과 미미가 동시에 손을 뻗어 까치의 진로를 막으려 했지만 까치는 그 손을 피해 휙 오르더니 왕의 어깨에 턱하고 앉는 것이었다.
“허허 이거 참 이 녀석이 오늘은 달려들기까지 하는 구나.”
왕이 그리 말하면서 어깨를 그리 심하게는 아니었지만 흔들었음에도 까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미미가 살짝 손을 뻗어 까치를 손에 잡아 어 왕의 어깨에서 떼어 냈다. 까치는 가만히 있었다. 마치 길들여진 집 새와 같이 미미의 손위에 앉아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진은 웬지 문득 정란공주가 생각났다. 까치의 검은 눈동자가 정란의 눈동자를 연상케 했던 것이다.
까치는 미미의 손바닥을 몇 번 쪼는 시늉을 하더니 푸두둑 하고 날아갔다.
“정란이 죽었다는 다음날부터 저 까치가 이곳에 왔었지?”왕이 허공을 도는 까치의 모습을 보면서 미미에게 말했다.
“예 저도 저 까치를 보면서 효문 공주님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 참으로 희한한 일이로구나.”
왕은 다시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듯 가만히 있었다.
“저 마마 제가 감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발짝 물러서 있던 미미가 침묵을 깼다.
“무언고?”
“벌을 내리셔도 좋다는 생각에서 감히 말씀 드립니다.”
“그래 무슨 일인데 말 해보거라.”“저를 위나라로 보내 주십시오.”
“그게 무슨말이냐?”“며칠째 마마께서 상심하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 낸 일입니다. 저라도 위나라로 가면 사신들의 닦달이 수그러 들지 않을까 싶은게 제 소견입니다.”
“뜻은 가상하다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겠느냐?”
“아닙니다. 자를 양녀로 맞아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위나라에서도 양녀라도 맞아서 보내라고 한다지 않습니까?”
“참 당돌한 녀석이구나 너야 말로…”
“마마 역시 제가 벌 받을 일을 말씀드린 것인가요?”
미미는 당차게 나왔다.
“아니다. 내가 왜 너의 갸륵한 생각에 벌을 주겠느냐? 상을 주어야지.”
“제 신분이 미천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마마께서 명령 하시면 안 될 일도 아니라고 생각 했습니다. 어치피 저희 고구려 백성들이야 모두 마마의 자식이 아니옵니까?”
“진정이더냐? 나는 네 아비가 생각나서 그런다.”
왕이 눈을 크게 뜨고 미미의 눈을 응시 하면서 재차 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