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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55회

 안동일 작       

 실직주 출정과  중원 고구려비

내물왕은 장수왕을 만나자 머리를 굽히며 신하의 예를 취했고 실직주에서 일어난 일을 불미스러운 일이라 면서 용서 해달라고 빌었다.
장수왕은 형제간에 그런 예를 취할 것까지 있냐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일전에 마마께서 아우인 복호를 돌려 보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있는데 이번에 이런 일이 일어나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마마를 향한 저의 충성과 정리는 전혀 다름이 없는데 몇몇 불충한 장수들이 있어 일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눌지 마립간이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말을 계속 했다.

아진은 그의 태도는 더없이 공순했지만 그의 눈매나 얼굴 표정에는 진심으로 감읍하지 않고 있다는 태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해 동포라는 말을 마립간은 아시오?”
장수왕이 짐짓 눌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짐작은 하겠습니다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아진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위나라의 탈발씨가 얼마전에 국서를 보내면서 쓴 말인데 사면의 바다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형제다 이런 얘기요. 탁발씨 저는 나름대로 자신이 다 군림해서 키운다는 뜻으로 썼겠지만 나로서는 참 의미있는 신조어다 싶었소.”
“그렇겠습니다. 포(胞)자에는 얻어 먹인다라는 뜻이 있지 않습니까?”

“마립간은 한문자에도 조예가 있구려.”
“무슨 과찬의 말씀을…”
“우리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백제야 말로 기원이 같은 동포 아니오? 사해동포란 우리를 두고 이름이 아닌가 싶었소.”
“그렇습니다, 선대왕이신 호태왕 마마 시절부터 저희 신라에 베풀어 주신 각별한 정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동포인 우리 백성들이 사는 모습이오. 성현들의 가르침도 많은 부분이 군주된 사람의 이치와 도리를 말하고 있는 것 아니겠소.”
두 군주의 대화는 고전적 또 다분히 현학적으로 흘러갔다.
아진은 내물왕의 태도가 점점 장수왕에게 호의와 존경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같은 내물왕의 태도는 아진에게 또 다른 일거리를 제공 하게 된다.
내물이 대화 도중 장수왕의 철학과 치적을 담은 송덕비를 건립 하겠다고 나왔던 것이다,
“대왕의 흠덕을 후세에 전하고 사해동포로서의 화목을 다짐하는 송덕비입니다. 친견 하지는 못했지만 국내성에 호태왕 마마의 공덕을 기리는 큰 비가 건립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못지않은 비를 건립하고 싶습니다.”
“선왕의 공덕비에 못지 않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겠지만 사해동포의 다짐을 담은 기념비라면 의의가 있는 일이기는 하겠구려.”
장수왕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당장 그 건립 장소며 문안을 만드는 일에 착수 해야 겠습니다.”
“흐흠 급하시기도 하구료, 석비 건립이라면 이사람 아진 장군이 우리 나라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재주장이요.”
왕이 기어코 아진을 끌어 들였다.
“그렇지 않은가?”
왕이 아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첫 손가락에 꼽힌다는 말씀은 황망하지만 소임을 맡겨 주시면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세 중원 고구려비라 일컫는 장수왕 공덕비가 건립되게 된 것이다.
화급을 다투듯 급히 서두를 일은 아니어서 아진이 실직주 출정이 있었던 장수왕 41년 서기 454년 이태 뒤인 456년에 건립되게 된다.
그사이 아진은 신라인들과 어울려 비석에 쓰일 석재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문안을 작성 하는 일, 이를 전각 하는 일, 건립 위치를 선정하는 일 등 건립 전반을 책임지면서 일에 많은 정열을 쏟았고 서너 차례나 신라에 내려와 보름 스무날씩 걸리며 사방을 돌아 다녔는데 이때 삼한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피부로 알게 되었다.
제막식이 있던 날 장수왕은 내물 마립간과 함께 참석을 했는데 그렇게 흡족해 할 수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국내성의 호태왕비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크기는 절반 정도로 돼 있는 비는 고려대왕이라는 장수왕의 경칭으로 시작돼 그간의 삼한 경계 역사를 적은 뒤 왕이 간직 하고 있는 사해동포의 공생 철학을 적었고 공생을 다짐하는 문장으로 마무리 되는 7백 여자를 적었다.

호태왕비를 썼던 남온 박사가 세상을 떠난 뒤여서 그와 필체가 비슷한 제자 학자가 붓을 잡았고 석도강 제조로 까지 승급한 구하가 노련한 솜씨로 전각을 한 명비였다.
“아진 이번엔 내가 너에게 무슨 상을 내려야 하겠니?”
건립식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왕이 아진에게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상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것도 너무나 즐겁게 했습니다. 그게 다 상이라고 생각 합니다.”
“흠, 고맙다. 우리 끝까지 형제의 의를 변치 말자꾸나.”
“형제라니 황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소장이야 말로 마마의 은덕을 얼머나 많이 입었습니까.천한 말갈의 자식이 이만큼 까지 입신 한 것도 세상서는 기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너 답지 않은 소리구나 천한 말갈이라니 사해동포 노래까지 지어 놓고서 아직 너 스스로 그런단 말이냐?”

사해 동포 노래란 아진이 신라의 재주꾼 승려 춤담을 시켜 만들게 한 속요였다. 실제로도 충담의 생각이기도 했는데 비문이 너무 어려워 백성들로서는 그뜻을 알길 없는 터라 쉬운 속요로 왕과 신하 장수, 백성의 도리를 담은 노랭를 만들게 하엿고 제막식에 오르는 길에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왕도 듣고 흡족해 했었다.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미요
백성은 어린 아이로고” 하시면
백성이 그 뜻을 알리이다
구물거리며 살아가는 백성이
이를 먹어 다스려져
” 이 땅을 버리고 어딜 가겠는가” 할지면
나라 안이 유지되는지 알리라
아아, 군답게 신답게 민답게 하신다면
사해가 동포라 나라 안이 태평하니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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