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ykorea
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54회

안동일 작

실직주 출정

목책이 빤히 보이는 언덕 중간쯤에 지휘소가 설치 됐고 아진은 이내 날라져온 전병을 먹었다. 일반 병사들과 똑 같은 전병이었다.
전병 안에서 씹히는 쌀밥의 맛을 음미하면서 아진은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석식을 마쳤다. 평양으로 옮겨진 이래 말갈의 전병에도 쌀밥이 주곡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조나 수수와는 그 맛이며 향취가 천양지차 였다.
저쪽 신라군은 무엇을 먹고 있을까 은근히 신경이 써졌다. 왕이 오늘 오전 신라도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서 였을까.
지금쯤 왕이 이끄는 본진은 문주 목성 쯤에 와 있을 것이었다. 왕의 명령 대로 이쪽의 기세를 보이려면 오늘 밤에 야습을 감행해야 했다.

진작부터 이런 요량이 있었지만 아군에게도 이곳에서 야영을 해야 한다 이르고 실제로 야영 준비를 하게 한 것은 적을 속이려는 의도였다. 적을 속이려면 자신부터 속이는 것을 차도계라 했던가.
석식을 마친 뒤 아진은 부장들을 불러 모아 작전을 지시했다.
“계속 이곳에서 야영을 하는 듯이 보이다가 어둠이 완전히 깔리게 됐을 때 일거에 몰려 나가 목책을 부수도록 한다. 공상 마차를 단단히 꾸리도록.”
“예 준비하겠습니다.”
공성 마차는 기병들이 자신의 말을 이용해 공성 차를 만드는 것으로 2두 혹은 4두로 구성되는 비밀 병기의 하나였다. 말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 위쪽으로 목갑을 씌우고 마차 앞쪽에는 아름드리 나무 둥치인 공성봉둥을 달아 돌진하면서 성을 부수는 말갈 군단 특유의 공성 장비였다. 지난 많은 전투에서 큰 효과를 보았던 무기였고 말들도 익숙해져 있었다. .
적들은 기병이기 때문에 성벽이나 목책 가까이 오지 못할 것으로 짐작 하고 대비에 소홀 한 사이 목갑으로 둘러싼 마차가 돌진해 오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화실이나 돌은 목갑에 의해 제지되었기에 아군의 피해는 적은 편이었다.

오늘 따라 날이 흐려 달이 구름에 숨는 통에 상현 이었음에도 칠흑 같은 어둠이 실직주 벌판에 깔렸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어디선가 풍겨 왔고 물새가 끼룩끼룩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아진의 기병대는 조용하고 신속 하게 움직였다. 재갈을 물리기는 했다지만 훈련이 썩 잘 돼 있는 말들도 주인의 뜻에 따라 조용하게 움직였다.
야영지의 횃불은 그쪽만 밝게 하고 있을 뿐 옆쪽 산기슭 가까이로 몰려가는 아진군의 모습은 어둠에 가려져 있어 목책 안의 신라군은 영문도 모른 채 단잠에 빠져 있었다.
실제로는 큰 전투가 앞에 있다는 긴장감에 겁을 먹고 있었기에 잠을 이루는 병사야 없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불침번만 남겨 두고 목책 안 신라 군사들은 휴식에 들어 있었다.

펑하는 방포가 울고 징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시작된 고구려군의 돌격은 순식간에 일어 나 전광석화 같이 목책에 다다랐다.
불화살이 사위릏 밝히며 요란하게 날았고 울음을 참았던 말들이 히힝하며 울어 대면서 벌판이 말발굽 소리로 뒤 덮혔고 잠시 후에는 목책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 갔다.
전투는 싱거우리 만큼 일방적으로 끝났다.
한밤중에 기습을 당한 신라군은 저항다운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다 성쪽으로 달아나기에 바빴고 용기 있게 병장기를 겨눈 몇 병사는 고구려군의 낭아창에 어깨를 찔려 바닥에 나뒹굴어야 했다.
“쓸데없는 살육은 삼가라.”
“병장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달아나지 마라 항복하면 살려준다.”
고구려 부장들의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두손을 머리 뒤로 한 채 무릎을 꿇는 신라군이 부지기수였다.

상황을 점검해보니 5백에 가까운 군사를 포로로 잡았고 무엇 보다 큰 소득은 목책 안에 쌓여있던 불화살 수백 발을 노획 한 것이었다.
활촉에 기름 솜방망이를 장착한 불화살은 성곽을 방어 할 때도 쓰이지만 공성전에도 요긴하게 쓰이는 무기였다.
포로 가운데는 부장급의 장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을 통해 얻은 정보로는 대부분의 군사들이 목책으로 나와 있었기에 성안에는 변변한 군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 하슬라 성은 성곽이 제대로 꾸려져 있지 않았기에 수성을 할 수 없어 목책을 세우고 군사를 전진 배치하는 방어 전략을 세웠었다는 것이다.

목책을 점령한 고구려군은 그 밤을 거기서 지낸 뒤 아침 일찍 성으로 몰려 갔다.
성에는 이미 백기가 걸려 있었다.
아진은 성안 노인들이 안내를 받아 군사들을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창표를 살해한 실직주 성주와 하슬라 군 장교는 벌써 내빼고 없었다. 성주의 저택에 처소를 꾸렸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후 왕이 당도 하면 그곳으로 모실 요량이었다.
아진은 성안 곳간을 열어 그곳에 있던 양식들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라 일렀다.
곳간 형편이 워낙 궁벽해 성에 남아 있던 백성들 하루분의 식량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백성들은 너무도 기뻐했다.
잠시후 금성에서 왔다는 사자가 아진 앞에 안내 되어 왔다.
“금성 마립간님의 분부를 받고 달려온 사자 입니다.”
젊은 청년 장교였다.
“마립간이 보냈다고?”
마립간은 신라인들이 자신들의 왕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예 마립간께서 몸소 이곳으로 오시겠다고 합니다.”
“그래?”
“고구려국의 대왕께서 친히 납신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서둘고 계십니다. 내일이면 당도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 알았네.”
신라 쪽은 몸이 몹시 달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장수왕과 신라 내물왕의 실직주 대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53회

안동일 기자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35회

안동일 기자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9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