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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43회

안동일 작

정벌기 – 요동의 주인은 누구냐

그러나 용성에 이르렀을 때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새벽 어스름이었는데 성 안팎에 환하게 횃불이 밝혀져 있었고 먼 곳에서 바라 보기에도 창검을 들고 성위에 올라 경계를 서고 있는 군사들이 제법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병서를 읽었다는 곽생이 나름 대로는 야습을 대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다 일국의 도성답게 그 규모며 성곽의 짜임새가 녹녹치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성곽을 쌓은 돌이 단단한 화강암이 아닌 무른 편무암에 잡돌 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돌 전문가 아진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긴 이 벌판에서 화강암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군 전략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군 출신 천부장 말객이 아진에게 말했다. 그는 선봉군의 군사 격인 전군 참위직을 맡고 있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참이었소.”
“경계가 제법 인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소.”
“성내에 병력은 기껏해야 일만 남짓이라지 않습니까? 우리 전군만 해도 저들의 배가 넘습니다.”
다른 부장 하나도 나섰다.
“공성전은 꼭 병력의 다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소.”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이왕 적이 우리의 움직임 알고 대비하고 있다면 기습을 할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공성전을 펼쳐야 할 것 같소.”
“일단 놈들의 사기를 꺾어 놓읍시다.”
“어떻게 한단 말이오?”
“아무리 풍홍왕이 폭정을 했다 해도 아직은 왕인 터 저들이 반란군이라는 것을 크게 내세우는 것이죠, 풍홍왕의 병사를 앞세워 선전대를 성 밑까지 내보내겠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오.”

“야 이 반란군 놈 들아 성문을 열어라 황제 폐하의 명이시다. 세상에 황제를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킨 놈들의 최후가 어떤 줄 모른단 말이냐?”
북과 괭과리 그리고 고동 뿔을 앞세운 고구려 선전대가 용성의 신 새벽을 뒤 흔들었고 풍홍의 병사들은 대군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이 덩달아 신나는지 천하에 둘도 없는 충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성곽의 병사들은 조용했다. 뭐라고 대꾸 할 법도 했는데 꿀먹은 벙어리마냥 조용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분기탱천해서 틈을 노리는 그런 모습도 아니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형국 이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러다보니 성밑에서 요란을 피우고 있는 선전대도 곧 시들해 지고 말았다.
선전대가 성 밑으로 상당히 가까이 갔을 때도 위쪽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활을 쏜다 던지 돌이나 뜨거운 물이라도 쏟음 직 했는데도 조용하기만 했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처럼 조용한게…”
“아마 곽생이 병사들을 완전 장악 하지 못했나 봅니다. 저들의 사기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섣불리 판단하지 맙시다. 총사에게 전령을 보내 지침을 하달 받아야 할 것 같소.”
아진은 맹광에게 전령을 보내 사정을 이르기로 했다. 그러는 한편 나름대로 공성전 작전을 머릿속에 그렸다. 이쪽이 병력이 많기에 당연히 성동격서의 전법으로 나가야 했다.
총사도 일단은 선봉대가 알아서 공성을 책임지라 할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중군과 후군은 용성 쪽으로 진격에 오는 위군을 맞아 경계를 해야 하기에 더 이상의 병력을 공성에 투입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용성에는 두개의 대문이 있었다. 한쪽은 아진군이 지금 노리고 있는 평야 쪽으로 향한 남문이고 한쪽은 요양산에 바로 붙어 천험의 요새로 세워진 북쪽 망루의 문이었다. 북문 쪽의 경계는 상대적으로 허술할 것이 분명했다.
아진은 참위와의 논의 끝에 산타기에 능한 자신의 여진군을 북쪽 산으로 보내기로 작정했다.
“나 장군, 당신이 숙신군 5천을 이끌고 요하를 우회해서 북문으로 가시오, 은밀히 움직여 적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시오. 일단 산속에 매복해 있다가 신호 방포소리가 울리면 일시에 문을 공격하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연부장, 방포수들을 북문까지 연계 되게 배치하는 것 잊지 마시오.”
“예 벌써 안배해 두었습니다.”
북문 까지 거리가 상당 했기에 중간에 군데 군데 방포수들을 배치해 먼 거리에서 봉화로 연락하는 그런 요령으로 공격 개시 신호를 울리는 고구려군 특유의 방식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었다. 여러 군데서 방포가 울리게 되면 수비하는 적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황하게 되는 그런 효과도 있었다. 아진도 백제와의 관미성 전투 때 이 동시다발 방포의 효험을 확인 한 바 있었다.
“백부장 공성차며 방패차 조립은 진행 되고 있겠지?”“예 염려 하지 마십시오. 다섯 대가 벌써 완성 됐고 곧 다섯 대가 완성됩니다.”
예로부터 고구려의 마차 기술은 요동 제일이었다.
성곽의 나라 였기에 성을 쌓기 위한 무거운 돌을 운반 하려니 자연 마차를 이용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그 기술이 발달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고구려 바퀴는 유명했다. 중국의 각 나라들도 명마를 보내면서 고구려의 바퀴를 얻고자 했었다.
공성차는 성곽과 성문을 부수는데 사용되는 전차였다. 아름드리 나무둥치를 얹어 병사들이 밀고 나가 일거에 성문을 부수는 병기였다. 고구려군은 행군 중에는 바퀴와 둥치 앞에 씌우는 철갑을 따로 운반해 다니다. 필요할 때 조립해 쓰고는 했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중군에 달려갔던 전령이 돌아 왔다.
전령은 혼지 온 것이 아니라 꼬리를 달고 왔는데 그 꼬리가 바로 풍홍왕이었다.
그 겁 많은 풍홍이 수하 몇 명을 이끌고 온 것은 그만큼 아진군의 위세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풍홍은 진지에 있을때 선봉군의 조련 광경을 목격한 바 있었다.
“내 성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제장들의 수고를 덜어 주려고 온 것이다. 용기백배해서 빨리 성을 무너 뜨려 달라.”
자신의 성을 공략해 달라고 부탁하면서도 거슬리는 허풍과 위세는 여전 했다.
하지만 아진으로서는 연왕이 진영에 와 있는 게 나쁠 게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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