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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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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42회

안동일 작

 정벌기 – 요동의 주인은 누구냐

그러더니 풍홍왕은 함께 온 환관에게 다시 용성에 가서 자신의 차일과 천막을 가져와 이곳에 설치하라 이르는 것이었다.
독려를 하러 왔으면 장수들을 만나고 돌아갈 일이지 그냥 고구려 군막에 머무를 모양이었다. 그런데 풍홍의 명을 들은 환관의 낯빛이 사색이 되는 것이었다. 용성으로 다시 가기가 죽기보다 싫은 모양이었다.
풍홍이 이처럼 고구려군 진영으로 달려온 것에는 나름대로는 긴박한 사정이 있었다. 용성에 반역의 조짐이 있었던 것이다.
워낙 위인이 변변치 않은데다 성정까지 괴팍하고 탐욕스럽다 보니 그의 주변에는 제대로 따르고 보필 하는 번듯한 신하 한사람이 없었다.
그런 판에 황제인지 왕인지 그의 안하무인격인 태도 때문에 강국인 위의 비위를 거슬려 전쟁 까지 일어나게 됐으니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불만의 무리들이 그를 몰아내고 왕을 새로 옹립하지는 논의를 하게 됐고 이런 조짐을 눈치 챈 왕은 노심초사하다 고구려 진영으르 도망치다 시피 나온 것이었다.
곽생 이라고 풍홍이 병권을 맡긴 한족 출신 병부상서가 그 중심인물이었다.
역사상 유례가 드문 일이었다. 황제를 칭한 일국의 왕이 자신의 도성 바로 지척에서 다른 나라의 군막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어쨌든 연의 환관과 병졸 몇 명이 용성으로 다시 갔고 고구려 장수들은 풍홍을 찬 군막에 둔 채 옆 군막에서 회의를 열었다.

“연의 사정이 이러하다는 것은 제장들도 지금 들은 바 그대로 인데,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게 좋은지 의견을 모아 봅시다.”
맹광이 정탐을 위해 선발조로 나섰던 발 빠른 백부장의 보고가 끝난 뒤 좌중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용성으로 진격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풍홍왕의 권유에 따라 반란을 진압 한다는 명분이 서는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됩니다.”
“아직 명확한 반역의 조짐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곽생의 군대도 그리 녹녹히 보아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전투에서 적을 두려워 해서 되겠소. 연나라 꼴을 보니 뭐 제대로 된 군대가 있을 법 하지 않은데, 밀고 들어갑시다.”
“위나라 군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연해관을 함락 하고 잔뜩 기세가 올라 있을 텐데 우리가 위와 전면전을 벌이러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위군 쪽 정탐을 위해 나간 정탐꾼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쪽 정황을 살펴보고 다시 대책을 논하는게 순서 일 듯 싶습니다. 우리로서는 급하게 굴 까닭이 없습니다.”
의견이 분분했다.
“선봉장의 의견은 어떠하시오?”
총사가 아진에게 물었다.
“용성으로 나가 싸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또 승산도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성을 함락 하고 난 후가 더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풍홍왕을 다시 권좌에 오르게 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계속 남아 다스린다는 것도 그렇고 또 염려 하시는 대로 위가 어떻게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고 오늘 내일 잠시 정황을 살펴 보는게 이로울 듯 싶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 습니다.”
“그러면 일단 위군 쪽의 동태를 살피러 떠난 정탐병들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다들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군사들의 규율이며 사기에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총사.”

사실 고구려군의 사기는 여느때 보다 드 높았다. 장수왕 시대 접어들어 대규모 출병이 없었지만 국력이 강성해지고 재정이 탄탄해 지면서 군에 대한 지원도 크게 향상 됐기에 훈련도 탄탄하게 받았을 뿐더러 이번에 정예로 선발 됐다는 자긍심이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진의 선봉대는 여진군과 내군, 그리고 새롭게 조련된 평양 부대로 구성돼 있었기에 더 했다. 위가 됐건 연이 됐건 고구려의 안위를 넘보는 외적들과 한바탕 붙어 자신들의 존재를 내외에 부각 시키고 나라를 빛내겠다는 각오에 불타고 있었다.
병사들의 이런 바람은 그리 오래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저녁 점호를 취하는 그 순간 일이 겹으로 터져 그 밤에 출격을 단행 하게 됐던 것이다.
위군 쪽의 동태를 살피러 나갔던 정탐병과 용성으로 풍홍왕의 차일을 가지러 갔던 환관이 동시에 헐떡이며 군막에 들어섰는데 양쪽의 소식 모두 고구려군의 출동을 미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먼저 위군은 연해관을 점령 한 뒤 숨도 쉬기전에 질풍 노도처럼 연나라의 영토를 유린 하면서 용성 하루걸이인 하란내 근처에 까지 진격해 왔다는 것이다. 이 밤은 하란내 분지에서 야영을 하고 내일 총공세를 펼칠 차비를 하고 있다는 첩보였다.
용성으로 갔던 환관은 상 거지꼴이 돼서 돌아 왔는데 그는 팽홍왕 앞에 엎어져 통곡을 하고 있었다.
“폐하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모든 것이 다 곽생 간신 놈 때문 입니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풍홍왕이 떠나자 곽생이 즉각 어전을 장악 했고 자신이 왕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같이 갔던 환관 일행은 비품들을 가져오기는커녕 성문에서 경비병에게 붙잡혀 끌려갔는데 꾀를 내어 뒤쪽에 숨어 있던 자신만 목숨을 건져 구사일생으로 살아 왔다는 것이다.
“부경은 어떻게 됐다더냐? 곽생놈이 그럼 짐의 부경 까지 손을 댔단 말이냐? 그러면 큰일인데. 이를 어쩌냐? 유희 향희 소식은 모르고?”
풍홍은 사직이나 백성들 보다 자신이 노략질한 보화를 저장해둔 보물 창고와 후궁 애첩들을 더 걱정 하고 있었다.
풍홍은 맹광장군의 바짓가랑이 라도 잡겠다는 듯이 빨리 용성으로 진격해 달라고 애걸을 했고 긴급히 열린 장수 회의에서도 일이 이렇게 번졌으니 일단 용성을 접수하는게 순서라는 결론이 났다.

병사들의 신속한 손놀림으로 대릉하에 부교가 설치 됐고 아진의 선봉대가 대릉하를 건너 연나라 땅에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보름이었기에 휘영청 밝은 달이 사위를 식별 할 수 있게 했다. 야습을 하려면 그믐밤이나 초승밤이 좋았겠지만 딱이 야습이라 할 것도 없었기에 용성의 누각이 보이는 언덕에 이르기 까지 거칠 것이 없었다.
풍홍과 함께 고구려 진영에 온 연 병사가 앞장을 서 길 안내며 휘둥그래 하는 연도 촌락의 백성들을 달랬기에 더 쉬웠던 진격이었다. 아진은 그들이 팽홍의 기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 했다. 부락민들은 물을 떠다 병사 들에게 나눠 주기 까지 했다. 전란을 하도 겪어본 민초들이 새로운 강자를 알아보는 지혜였던 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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