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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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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41회

안동일 작

– 어려운 결단, 파병

아진의 선봉대는 대릉하를 굽어 보는 송하 언덕에 진을 쳤다. 뒤쪽으로는 고구려 요서 지역 맨 끝 성인 화룡성이 있는 곳이었다. 북연의 도읍 용성과는 반나절 거리 밖에 되지 않는 곳이었다.
진지가 구축되기도 전에 연의 사자가 들이 닥쳤다.
풍홍왕이 급하기는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
“선봉대장 어디 계시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드시오.”
연의 사자는 자신의 처지를 전혀 잊은 듯 진지에 도착 하지 마자 큰소리로 거들먹거렸다.
“폐하께서는 멀리 변방에서 충성을 다하기 위해 달려온 고구려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높은 치하를 하라고 하셨소. 성은이 태산과 같이 높은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오. 영광으로 알고 폐하의 칙지를 받드시오. 나는 폐하를 모시는 승정관 가운데서도 제일 상석에 있는 사람이오.”
태평구라 하는 한족 사자는 머리가 모자라는 것인지 아니면 과대망상에 빠져 있는지 수인사가 끝나자 마자 첫마디부터 아진과 고구려군의 심기를 흔들고 있었다.
아진으로서도 뭐 이런 위인이 다 있나 싶어 시큰둥하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뭐하고 있는가. 빨리 폐하의 전교를 받으라니까…”
아진이 땅에 무릎이라도 꿇기를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 이었다.
“나는 고구려 왕 마마 이외에는 무릎을 꿇지 않소. 전하려는 말이 무언지 빨리 전하고 돌아 가도록 하시오. 우린 할 일이 많소.”
아진이 한어로 단호하게 말했다.
사자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졌다.
“무엄한 오랑캐들은 어쩔 수 없군…폐하의 전교를 받지 않겠다니…”
혼잣말 처럼 말했지만 들으라는 소리 였다.
“뭐라고? 오랑캐?”
한어를 알아 듣는 부장 한사람이 나섰다.
“폐하는 무슨 폐하란 말아오? 당신 한테나 폐하지 우리에겐 폐하란 없소.”
“보자 보자 하니까…”
“도대체 이 위인 정신 나간 사람 아니오.”

부장들이 더 흥분 하고 나섰다. 대부분의 부장들이야 한어를 모르기 때문에 자세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짐작 할 만 했기 때문이다.
성질 급한 평양 출신의 부장 하나가 사자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 한 태세로 다가 서서 큰소리로 말했다.
“우린 당신들이 위급하다 해서 달려온 원병이오. 그리고 여긴 아직 우리 고구려 땅이오. 어딜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요. 필요가 없다하면 우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여기 멀물 것이오. 경우 없는 작자 같으니라고.”
그 부장은 한어를 조금 했다.
그제서야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 챘는지 물러서는 듯한 태도로 기세가 누그러 지기는 했지만 사자는 계속 거들먹 거리는 자세로 한마디 했다.
“당신들이 이렇게 나오면 폐하의 전교는 열 수 없겠소. 그래도 왔으니까 폐하의 명령은 전하겠소. 고구려 장병들은 한시라도 빨리 도성으로 들어와 폐하를 알현 하라라는 그런 전언이오.”
말을 마치고는 두루마리 자락을 팽하고 휘날리더니 군막을 나섰다.
“정말 정신 나간 작자로군..”
“저런 작자가 고관이라고 거들먹 거리고 있으니 나라가 그꼴이지…”
“승정관이면 연나라 승전관이지 우리 승정관 이란 말인가”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아직 뜨거운 맛을 못봐서 그렇지…”

위군은 아직 용성 인근 대릉하 지역 까지 진격해 있지는 않았다.
정탐 척후의 보고에 따르면 요양 지역에서 한번 큰 전투가 벌어졌는데 겁을 먹은 연군이 추풍낙엽처럼 패퇴 했다는 것이다.
연나라로서는 속이 탈 노릇이기는 했다.
하지만 고구려군 으로서도 섣불리 연의 편에 붙어서 위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위험 천만 한 일이었다.
장수왕은 미리 이런 저런 경우를 대비해 계책을 세웠고 그 대강을 출전하는 장수들에게 일러 주었다.
왕은 연에게는 연대로 밀사를 보내 도와 줄테니 걱정 말라 했고 위 쪽에도 밀사를 보내 요동의 안정과 국경을 지키기 위해 군을 파유 하는 것이지 위와 전면전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뜻을 전하는 특유의 등거리 외교전략을 이번에도 구사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벌기 -요동의 주인은 누구냐

아진의 부대는 풍홍왕의 속을 썩이기로 작정 했는지 대흥하에서 며칠을 움직이지 않았다.
속이 탄 풍홍왕은 세차례나 사자를 보내 왔다. 하루에 두 번 온 날도 있었다. 처음에 왔던 태평구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지기는 했다. 마지막에 온 사자는 용성으로 빨리들어와 달라고 애걸을 하다 시피 했다. 아진은 그러나 꿈쩍 하지 않았다. 위군과의 정면 충돌을 미리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그사이 맹광 장군이 이끄는 중군이 도착을 했다.
맹광 장군은 위군의 움직임을 보아서 국경을 넘기로 하자며 계속 경계 명령을 하달 했다.
고구려군 진지의 움직임은 그대로 용성으로 전해지는지 중군이 도착한 다음날 퐁홍의 아들인 태자 풍설이 고구려 군 진지로 왔다.
“장군 이왕 여기 까지 왔는데 무얼 더 망설인단 말이오. 선비 오랑캐의 위는 소문만 요란하지 사실 한나절 거리밖에 안되오. 폐하의 전교를 받들어 빨리 용성으로 들기 바라오.”
안하무인격 큰소리는 연의 습성인 듯 싶었다.
“그렇게 한줌 거리 밖에 안 된다면서 왜 그리 몸 달아 하시오?”보다 못해 중군 부장 한사람이 나섰다.
“과거부터 우리 연과 고구려는 절친한 관계 아니었소. 한 나라나 다름없다는 게 우리 폐하의 생각이오. 우리 연이 없으면 고구려가 광폭한 위의 만행을 어찌 견뎌 냈겠소. 빨리 평성으로 들어가 위를 물리칠 궁리를 해 봅시다.”
어림없는 소리였다. 연나라야 말로 고구려를 괴롭히고 약탈했던, 심지어 선왕의 무덤까지도 파헤쳤던 무도한 도적 떼들 아니었던가. 거기다 지금의 풍씨 왕조는 고구려인을 자처 했던 고연, 모용연을 몰아내고 차지한 왕조 아닌가.
“알았소. 우리는 우리대로 궁리가 있으니 돌아가서 잠시만 기다리시오.”
맹광이 군막이 울릴 정도의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연태자는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연왕에게 전하시오. 본관이 연의 군사 현황과 배치에 관한 군도를 보아야 겠다 한다고…”
연태자의 뒤 꼭지에 대고 맹광이 한마디 더 보탰다.
하지만 용성에 들어가 군도를 보고 작전을 세울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연 태자가 고구려 군영에 왔다 돌아간 그날 저녁에 풍홍 왕이 직접 고구려 진영으로 왔기 때문이다.
풍홍이란 위인은 황제는커녕 작은 고을의 군수 재목도 못되는 인물이었다.
위군이 아직 연나라 땅 깊숙한 곳까지 들어 온 것이 아니었다. 국경에서 얼마 떨어진 임유관이 그날 새벽 위군의 기습으로 함락 됐다는 소식을 듣자 좌불 안석 하더니만 그예 백여명도 안되는 수하를 이끌고 국경을 넘어 고구려의 군영으로 달려 왔던 것이다.
풍홍은 불안에 떨 면서도 속이 빤히 보이는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내 사자를 그리 보냈건만 장군들이 지체를 하고 있기에 독려를 하러 왔소.”
그래도 명색이 황제라 하니 군막의 윗자리를 내주기는 했다. 그랬더니 자리가 왜 이리 딱딱 하냐, 왜 이리 추우냐 하면서 불평 투성이의 수선을 떨어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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