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6 F
New York
September 20, 2024
hinykorea
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36회

안동일 작

-천도, 그 험난한 여정

 

“역시 졸본제일 환나의 장정들이구나, 나 거련왕 이다. 너희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여기 이렇게 왔더니 역시 든든하구나.”
이때 도혁만이 갑자기 “대왕마마 ” 하며 앞으로 엎어지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를 따라 무릎을 꿇는 군사들이 늘어 가더니 종래에는 후두둑 소나기가 떨어지듯 군사들이 왕앞에 무릎을 꿇었다. 앞쪽의 장수급 몇 명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들도 무릎을 꿇었다. 아진과 병부랑 등도 짐짓 분위기를 돋구려 무릎을 꿇었다.
왕의 짧지만 단호한 웅변이 이어졌다.
“이제 우리 고구려는 영락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계승해 더욱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큰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을 수행하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제장들이 나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이렇게 달려와 든든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에 나도 감복 했다. 일을 마친 후 내 큰 상을 내려 주겠노라. 고구려 제일 환나의 장병들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을 믿겠노라. 모두 일어 나거라”
병사들 몇몇이 일어서면서 ‘대왕 만세’를 외쳤고 그 외침은 폭풍우가 몰아 치듯 환나의 장원을 뒤 엎었다.
이런 소동이 있자 염창 대가가 뒤쪽 전각에서 황급히 나왔다. 그를 따라 나오는 환나의 가신들과 장수들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들 이었던 것을 아진은 놓치지 않았다.
노회한 염창은 표정을 감춘 채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창졸간에 납시시니 대왕을 제대로 맞지 못했습니다. 불충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불충이라니 당치 않소 어서 일어나시오 대가. 대가야말로 나에게는 숙부 같은 분이 아니시오”
“안으로 드시지요. 마마 ”
일어선 염대로가 왕을 안으로 안내 했다.
“그럽시다.”
왕은 전각 안으로 들기 전에 다시 한번 병사들을 둘러 보면서 오른 손을 번쩍 들었다. 다시 대왕마마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의 장수들이 제지하려는 우락부락한 표정과 몸짓을 지었지만 병사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환나 중앙 전각 안 대회랑은 밖보다 더 호화스러웠다. 호사한 탁자며 의자 주변으로 온갖 보화가 치장되어 있었다. 중국의 서화며 도자기 심지어 악기들까지 늘어놓아져 있었다.
이런 것 들을 둘러보는 왕의 표정이 잠깐 찌푸려졌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고는 한마디 던졌다.
“역시 이사 준비가 잘 진행되고 있군요. 옮겨 놓느라 애들 많이 쓰셨겠오.”
환나 사람들의 표정이 또 한번 벌레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가운데 놓여 있는 탁자에 왕을 중심으로 환나의 염대로와 그 아들들 그리고 중신들이 앉았고 병부랑을 제외한 아진 등 내궁측 무장들은 왕 뒤에 시립해 섰다.
모처럼 납시었는데 술상을 보아 오겠다고 수선을 떨었지만 왕은 그저 차나 한 잔 마시겠다고 했다.
왕에게 찻잔을 올리면서 염대로가 입을 열었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납시신 까닭은 무엇인지요?”
“염숙부가 나를 안 찾으니 내가 오는 수 밖에 없지 않겠소?”
“당치 않은 말씀을…”
“오늘 제가 회의와 함께 열린 백관 회의에 왜 참석 하지 않으시었소?”
“갑자기 몸이 불편해서…고뿔이 걸렸는지…”
“그래서 병문안 온 것이오.”
왕이 짐짓 내숭을 떨었다. 완전히 주도권은 왕이 쥐고 있었다.
“실은 천도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둘러 보고 있는 중이오, 오늘이 그 첫날로 나라 제일의 나부인 환나를 먼저 찾은 것이오. 그랬는데 역시 환나야 말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었소, 내 아주 감복 했소.”
“감복 이라시니 송구스럽습니다.”
“오늘 회의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역시 환나부가 가장 먼저 움직이는게 바른 모양새가 된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소. 오늘 와서 보니 준비가 다 돼 있는 것 같아 든든하오.”
계속 떨떠름한 표정 의 염대가가 무언가 말을 해야겠다고 마른침을 계속 삼키고 있었지만 왕은 짐짓 모르는체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천도 행차는 다른 나라와 백성들을 눈이 있기에 어느 행렬 보다 질서가 있어야 하고 또 위용을 갖춰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런 점에서 환나가 선봉을 서야 된다는 얘기요.”
“저 마마…”
“그나저나 염숙부의 고뿔이 낳아야 할텐데. 고뿔에는…”
“대왕, 천도와 관련해서 꼭 고할게 있습니다.”
보다 못한 염창의 장남 염태온이 큰소리로 왕을 말을 자르고 나섰다.
염태온은 태대형 중장군의 직위에 있는 무장이었다.
“무슨 말인가?”
“저 한번 더 고려 하실 수는 없겠습니까?”
“고려 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평양은 오지입니다. 넓은 이곳을 두고 왜 오지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평양이 오지라니? 자네 평양에 가봤는가?”
태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환나 사람들은 애써 평양을 가지 않았다.
“그러고 다 끝난 결정인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우리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돌연 분위기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왕은 평소와는 달리 염태온에게 하대를 했다.
“우리라니? 누가 우리란 말이냐? 그럼 여기 모여 있는 병사들이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단독 행동이라도 하기 위해 모였단 말이냐? 반역이라도 할 생각이란 말이냐?”
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찌렁찌렁 전각을 울렸다.
“고정 하시지요, 마마, 태온 너는 잠자코 있거라.”
염대가가 다시 나섰다. 하지만 염태온도 지지 않고 한마디 더 대꾸했다.
“떠나시려거든 대왕과 따르는 무리들만 떠나십시오, 우린 여기 남겠소.”
“무리 라니 염 장군, 그게 무슨 망발이냐? ”
도성패자가 고함치듯 한마디 했다.
“서황 이 간신 같은 놈 한번 해 볼테냐?”
기다렸다는 듯 염태온이 성을 버럭 내더니 허리춤의 칼로 손을 가져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으나 옆의 아비가 그를 잡아 앉혔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67회

안동일 기자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73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 현장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103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