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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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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35회

안동일 작

천도, 그 험난한 여정

 

언젠가 왕이 평양에 와서 축성 인부들을 격려 했을 때 왕은 자신이 왜 평양성 건립을 그토록 중시 하는지 내심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가 왕의 깊은 생각을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 왕은 백제와 신라 그리고 아진의 물길을 한 민족으로 보고 있었다. 모두 백두산에 기반을 둔 천신의 자손이라는 것이었다. 흉노와 선비 그리고 굴안은 사촌쯤 되는 민족이었고 중원을 장악 하고 있는 한족에 대항해 더불어 평화를 구축해야 하고 나가서는 대륙을 경영해야 한다는 논지 였다.

“물론 성 건축은 전쟁, 싸움을 염두에 둔 큰일이다. 자네들은 어떤 싸움이 가장 윗길의 싸움이라고 생각 하는가? 바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싸움 그 싸움이 최고의 싸움인 것이다. 백잔과 신라의 형편을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특히 백잔은 고구려와 뿌리를 같이 하고 있는 형제국임에도 한족이며 심지어 왜와 붙어서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않은가, 그게 그곳 백성들의 뜻일까? 백잔 에서는 열다섯부터 군역의 의무를 진다하지 않던가. 반도에서는 가장 비옥한 땅이 백잔 아닌가. 그 비옥한 땅의 백성들이 주리고 있다는 사실은 무얼 말하는가. 또 서라벌 쪽이야 지금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해도 그쪽은 유난히 야심을 지닌 인물들이 태어나는 지역이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자네들이 평양성을 잘 건축해 위용을 과시하게 된다면 저들의 야심을 잠재우면서 싸우지 않고 이기면서 쥬신 반도 온 백성을 위해 큰 공훈을 세우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그때 건축 현장 선돌위에 올라 나지막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현장 간부들에게 행했던 연설이 지금도 아진의 뇌리에 남아있었다.

 

오늘따라 발굽 놀림이 경쾌한 것이 혈혈노의 상태가 유난히 좋았다. 혈혈노라면 아진에게도 익숙한 말이었다. 묘하게도 혈혈노 역시 유난히 아진을 따랐다. 아진과 장수왕은 종종 격구를 함께 즐기기도 했었다.

승리로를 거의 전속력으로 달려 동쪽 야트막한 언덕위에 있는 환나부 둥근 지붕이 보이기 시작 했을 때는 사위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환나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환하게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불야성 같았다. 환나부의 대문은 궁궐 대문 못지않게 우람하고 높았다.

대모달 한명이 먼저 달려가 왕의 행차를 고했을 텐데도 환나부의 염창 대가나 그의 아들들은 물론 나부 중신의 모습은 대문 앞에 없었다. 대문 앞에는 군사 수십명이 창검을 앞세우고 도열해 있었고 먼저 달려간 대모달이 씩씩대며 서 있었다.

“대왕 마마 행차시다”

도성패자가 말에서 급히 내리며 군사들에게 큰 소리로 이르곤 군사들을 헤치려는 손동작을 했다.

“아직 안으로부터 아무런 지침을 받지 못했소.”

장교인 듯한 수염 투성이가 나서 가로막으며 불손하게 대꾸했다.

“무엇이라고 감히 네놈이, 내가 누군줄 아느냐?”

도성 패자는 국내성의 치안을 책임지는 대모달 직위의 장군이었다. 그 위세에 눌렸는지 대뜸 말투가 다라진다.

“소장은 나부에 속해 있는지라 직분을 다할 뿐입니다.”

“나부는 고구려 백성이 아니더란 말이냐? 네 이놈들을…”

패자는 칼을 뽑을 태세였다.

왕은 마차에서 이미 내려 있었다.

이때 문이 열리더니 나부의 중신 인듯한 노년 한사람과 장군복의 중년 서너 사람이 나왔다.

노년의 관리는 왕을 발견 하더니 놀란 모습으로 무릎을 꿇기는 했다.

“정말 대왕께서 납시셨군요. 창졸간이라 예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염 대가는 무얼 하고 계시오?”

병부대로가 옆에서 한마디 했다.

“대로께서는 수침에 드셨습니다.”

“벌써? 아직 초저녁인데…”

“어쨌든 빨리 고하시오.”

병부대로와 도성패자가 군사들을 밀치듯 길을 열었고 왕과 아진은 문안에 들어섰다.

장원 마당은 왁짜지껄한 분위기 였다. 군막과 평상들이 즐비하게 쳐져 있었고 횃불이 군데 군데 환하게 켜져 있었다. 여기저기 병사들이 석식을 막 끝냈는지 무질서하게 웅성대고 있었다.

환나의 장원은 오히려 궁궐 보다 더 크고 호화로우면 호화로왔지 덜하지 않았다.

전각들의 추녀는 높았고 금빛 장식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추녀 옥기와는 아진에게 낯이 익은 것 들이었다. 당초는 이리 큰 규모가 아니었을 텐데 주변의 가옥들을 모두 흡수해서 담을 허물고 규모를 키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당의 군사들은 영문을 몰라 이쪽을 보면서도 계속 웅성대고 있었고 왕 일행은 휘척 휘척 가운데 전각을 향해 걸었다. 환나의 노가신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왕을 따라 가며 옆의 장교에게 안으로 빨리 들어가 고하라는 눈짓을 하는 듯 했지만 장교는 꿈쩍 않고 뒤에서 왕의 뒷모습을 노려 보면서 따라 걷기만 했다. 여차직하면 칼을 빼들 태세였다. 가끔씩 그의 손이 칼로 향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을 진작 아진은 눈치 채고 있었기에 긴장 한 채 그의 손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졸본 제일 환나부라는 현판이 걸여 있는 중앙 전각 앞에 도달 했을 때도 안에서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댓돌 위에 올라 선 왕이 몸을 돌려 마당을 둘러 보았다.

어느 틈엔지 병사들이 열을 형성하고 있었다. 모두들 병장기를 들고 있었다.

무슨 뜻에서인지 왕이 ‘흠’ 하는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가볍게 끄덕 였다.

앞줄에서 병사들을 손짓으로 지휘하면서도 왕의 모습을 놀란 듯 바라보는 한 장수의 모습이 아진의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위나라에 사신단의 무종관으로 함께 갔던 도혁만이었다.

도 대모달이라면 장수왕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사신단 일행을 위한 왕의 연회 때도 아진 옆에 앉아 왕에 대해 감복 하는 심경을 숨기지 않았던 그였다.

왕도 그를 기억 하는지 잠깐 이지만 유심히 그를 쳐다보더니 돌연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장들은 듣거라,”

순간 왁짜지껄 했던 장원에 정적이 흘렀다. 워낙 목소리가 컸고 위엄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진도 놀랐다. 왕에게 이런 큰 목소리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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