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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제32회

 안동일 작

격구와 사신단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종족을 스스로가 선택 했다고 보시오?”
“꽤 어려운 질문이군요. 스스로 선택 하지는 않았지만 운명 같은 것 아니겠소?”
“운명이라. 운명이란 것도 사람들이 붙인 해석 아닌가 싶은 게 소장의 생각이오.”
“그래서 니르 장군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 했소? 아무리 장군이 고구려 왕의 신임을 받고 있다한들 고구려 제 사람들만 하겠소? ”
위충량이 이러는 데는 나름대로의 뜻이 있었다.
이제 후연을 복속 시켰기에 중원 북부 요동 지역은 평정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고구려가 남아 있었다. 지금은 친선 관계가 돈독 하다 하지만 언제 그 밀월이 깨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숙신을 키워 고구려를 견제 하려는 의도가 다분 했다.

또 예전에 북연을 멸망 시킬 때도 한족인 풍씨 일종을 동원해 북연에 소개를 해 요직을 맡게 한뒤 풍씨가 모용씨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르게 했고 종국에는 그 풍씨의 나라를 복속 시켰던 전례가 있었다. 모용씨는 선비족 이었다. 초기에는 탁발씨 보다 더 강성한 부족이었는데 동족인 탁발 가의 계책에 시직을 잃게 됐던 것이다.
“같은 형제들과 뜻을 도모하는게 더 장래성이 있을 것 같은데. 운명을 개척할 요량이시라면 호영과 내가 주선할 용의도 있소.”
마침내 위충량은 본론을 꺼내는 것이었다.
“위 장군이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듯 한데 나는 고구려인이오 우리 대왕께서는 고구려엔 종족의 차별이 없다고 언제나 강조하고 계시오.”
아진이 못을 박고 나섰다.
“장군께서 뜻이 있다면 내가 사라문 쪽에 소개를 하고 싶었는데…그곳이야 말로 장군의 고향 아니오?”
“소개야 마다 할 일이 없죠, 고향은 무슨 고향 우리 숙신인들은 고향을 따로 두고 있지 않소. 따지자면 장백산 일대가 다 우리 고향인 것을. 말했다시피 그러지 않아도 그쪽에 한번 가보고는 싶었소, 우리 대왕의 도량과 담력을 알려 앞으로 소란의 소지를 없애는 차원 에서라도 한번 가볼 생각이었소.”

위충량으로서는 혹 떼려다 혹 붙힌 격이었다.
“호영 자네는 이제 나가 있지.”
충량이 호영에게 눈짓을 했다.
호영이 아진에게 목례를 올리고 나갔다.
그녀의 뒷 자태를 보면서 위충량이 한마디 했다.
“어떻소? 장군이 좋다 하시면 귀국길에 동행으로 붙여 드리려 하는데”
“무슨 말 씀인지 도통 영문을 모르겠소이다. 난데 없이 여인네를 동행하라니…”“내 장군을 사귄지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대장부의 기상과 출중한 용력을 익히 알 수 있엇소. 그래서 장군과 함께 큰일을 한번 해보고 싶어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려는 것이오.”“큰일이라니 장군은 내가 우리 대왕의 뜻을 거스리고 숙신 구룬이라도 세워 주길 바란단 말이오. 그런 말씀이라면 당치도 않소. 나는 이미 말했지만 고구려 사람으로 주군께 충성하면서 종족을 포함한 백성들을 살찌우는 일에 매진 하겠다고 다짐한 사람이오.”
“좋소 장군의 뜻은 잘알겠소. 나 또한 더 욕심은 내지 않으리다. 실은 우리 위 황제 께서 장군을 잘 대해주고 위무 하라는 분부가 계시었소. 황제가 장군을 아주 잘 보신 모양이오.”“그 뜻은 고맙게 여기겠소만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는 법 나는 어디까지나 언제 까지나 고구려 국왕의 신하일 뿐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해두고 싶소.”
“알겠소이다 장군의 높은 절개 오늘 또 한수 배웠소. 참 내가 선물하나 준비한게 있었는데 깜빡 잊을 뻔 했소이다.”

위충량은 허라춤에서 책자 한권을 꺼내 아진에게 건냈다.
‘중원 변천 정세 요해’ 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 필사 본 책이었다.
“역사 책 올시다. 지난 백년간의 중원에서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일어나고 스러졌소이까? 지금은 모두 우리 위 에 의해 일통이 되어 가고 있지만 그간의 계보를 적은 글이오. 한림원의 사가들이 황제의 명으로 집필한 책이올 소이다.”“너무도 감사하오 정말 귀한 책 이구료. 고맙게 받겠소이다. ”책장을 넘겨보며 아진이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다음 말은 위충량을 아차 하게 만들었다.“우리 대왕 께서도 너무나 좋아 하실 것이오, 워낙에 책을 좋아 하시는 데다가 정세를 종합한 역사서라니 우리 대왕이 흡족해 하는 표정이 눈에 선한 듯 싶소이다.”

위충량은 한참을 더 아진의 객사에서 고금 영웅담을 나누다 돌아 갔다.
‘정세 요해’에는 지난 백년간 일어섰다 스러진 이른바 5호 16국의 역사를 일목 요연 하면서도 냉정한 필치로 서술하고 있었다. 특히 왕조를 일으킨 인물들의 단평이 촌철 살인이었다.
한왕을 칭한 흉노의 유연은 담대하기는 했지만 성격이 급했고, 성도왕을 칭한 파만의 이웅은 힘은 장사 였지만 지략이 없었고, 후조의 석륵은 잔학했고, 전연의 모용수는 재상의 재목이었을 뿐이라는 식으로 각 인물의 장단점을 한줄의 표현으로 담고 있었다.

위나라의 유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앗다. 그 날밤 아진의 침소로 호영이 찾아든 것이엇다.
호영은 아진을 모시겠다고 했다. 꼭 위충량의 지시가 아니라 하더라도 종족의 부흥을 위해 니르 장군 같은 이의 가세가 필요 하다는 호소를 해왔다. 아진은 호영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종족관을 차분히 설명해 줬다.
이날밤의 두사람의 대화는 후일 발해제국의 최고 시가로 꼽히는 ‘호영낭 미인곡’의 원전이 된다.
아진은 ‘왜 한 종족이 한 구룬을 만들어야만 하는지, 그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그 과정에서 일반 백성들의 고초는 얼마나 심한 것인지 종족간에 서로 화합하고 공동의 발전을 도모 할 수는 없는 것인지 여러 사안을 정리해서 차분히 설명해 줬다. 호영은 진심으로 감복을 했고 아진과 침소를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아진의 부하 되기를 자처했고 위충량의 허락 아래 고구려로 따라 들어와 아진에게 큰 힘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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