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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제28회

안동일 작

-축제의 수렵경연

“괜찮다, 일어나라”
그래도 왕이 위엄을 차리면서 자신을 포옹하고 있는 아진의 등을 두드렸고 아진이 일어섰다. 무미와 궁녀 그리고 호위병 한사람이 왕을 부축 해 일으켰고 일어선 아진은 급히 멧돼지 쪽으로 갔다. 사람들의 단발마 비명이 울렸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 했던 멧돼지가 돌연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멧돼지는 이내 옆으로 다시 쓰러졌다. 또 한번 집채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멀리서 보기에는 아진이 틀림없이 산짐승에 깔렸어야 했다. 그러나 아진은 어느 틈엔가 단창을 부여잡고 더 쑤셔 박고 있었다. 수박춤 추는 동장으로 몸을 피하면서 반사적으로 취한 공격 동작이었다. 아진의 오른팔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넘어지면 짐승의 앞발이 쿵하고 오른팔 어깨죽지 아래를 덮쳤던 것이다. 아진은 쇠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옷이 찟겨 나갔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왼손으로 창을 더 깊이 넣자 산짐승은 마지막 숨을 거뒀다. 왕을 부축하고 있던 무미가 달려 나왔다. 거의 왕을 팽게치는 듯 한 동작이었다.
“괜찬아? 아진”
아진의 다친 팔을 잡고는 울먹이는 듯한 음성을 쏟았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진이 그녀의 팔을 뿌리치려 했으나 그녀는 아랑곳 않고 얼른 자신의 머리띠를 풀더니 아진의 팔뚝에 묶어 줬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들었다.
“괞찬으십니까? 대왕 마마”
“그럼 괜찮지 않고 말고 사냥터에서 이런 일 쯤이야….”
왕이 옷매무시를 고치며 사람들을 안심 시켰다.
“큰일 날 뻔 하셨습니다.”
“아진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었지….”
어떤 사람은 아진을 장군이라고 까지 불렀다.
“살다 살다 이렇게 큰 멧돼지 처음 보네”
“그래 말이야 황소 보다 더 크잖아.”
“어떻게 한 창에 저런 큰짐승을 눞히지, 대단해”
“그래서 사냥은 말갈족 아니야”
수군대는 소리를 뒤로 하면서 이번에는 왕이 멧돼지 쪽으로 갔다.
“대단한 짐승이로다.”
그러면서 아직 멧돼지 앞에 있는 아진에게 물었다.
“팔은 어떤가 ?”
“아무 일도 아닙니다. 조금 긁혔을 뿐입니다. 공연히 무미님이…”
아진이 팔을 만지면서 무미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미는 자신이 얼마나 창졸간에 왕과 사람들 앞에서 경망했는지 깨달은 듯 그녀답지 않게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무미야 말로 일등공신이구나.”
왕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무미를 보면서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네? 마마 무슨 말씀이신지? 이 짐승을 잡은 건 아진님입니다”
“아진이야 나 혼자서 충분히 피할 수 있었는데 공연히 수벽치기를 해 와서 대왕의 체통만 구긴 놈 아닌가? 벌을 줘야지, 아까 단창의 날 세운게 누구더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왕은 아진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었다.

왕 일행은 개선장군처럼 멧돼지를 앞세우고 금상천막으로 귀환 했고 사냥터에 나와 있던 백성들은 산짐승의 크기에 놀라 감탄의 환호를 올렸다. 장정 여섯이 달라 붙어서야 짐승을 들 수 있었다. 사냥에서 더 이상 큰 짐승이 나올 가능성은 전무 했다.
크다면 큰 소동이었지만 장수왕은 놀람을 삭이고 유쾌하게 사냥대회를 지휘했다.
그날 사냥의 대미에서도 왕은 총신들을 매료 시켰다. 이날 마지막 제물은 공교롭게도 흰노루 였는데 왕은 자신이 실수 하는 듯 하면서 첫 번 화살을 뒷 넙적 다리에 쏘았고 두 번째 화살을 앞 발에 쏘아 노루를 땅에 뒹굴게는 했지만 노루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흰 노루는 예로부터 길수(吉獸)였다.
아진이 큰 사발의 어사주를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왕은 굳이 무미도 함께 술잔을 받으라 했고 무미는 아까의 부끄러워 하던 기색은 어디 갔는지 아진이 남긴 독한 곡아주를 넙죽 받아 훌쩍 마셨다.
사람들이 막 손을 흔들면서 웃었는데 그 사람들이 잔을 주면서 장수왕이 무미와 나눈 말을 들었으면 더 놀라 더 크게 웃었을 것이다.

장수왕은 아진에게는 궁에 돌아가면 선왕 호태왕이 돌궐 전투에서 노획한 백년 선철에 보석 장식이 있는 보물 단창을 부상으로 주마고 했고 무미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어 하던 상을 주겠다고 했다.
“마마께서 어떻게 제가 갖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왜 모르겠는냐. 진작부터 궁 안에 온통 소문이 파다한 것을, 게다가 오늘, 중인환시리에 직접 네 마음을 보였지 않느냐?”
“ 이왕 이렇게 된 것 마마께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걱정이옵니다.”
“무엇이 걱정이란 말이냐?”
“아비는 괜찮은데 어미가 크게 반대 할 겁니다.”
“그건 내가 나서도록 하마.”
무미의 모친은 왕의 처가 쪽인 연나부 인척이었다.
“황감할 따름 이옵니다 마마. 만수무강 장수 하십시오 대대손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구려의 왕을 매파로 만드는 버릇없는 신하들이 대대손손 나오면 어쩌라고?”
그러면서 왕은 껄걸 웃었다.
그때까지 아진은 영문을 몰랐다.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왕에게는 벌써부터 여진인의 사기를 진작하고 또 그들을 포용하면서 그들도 요동과 쥬신 반도의 또 하나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심어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을 떨쳐 보이는데 크게 활용하면서 동행으로 삼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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