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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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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제26회

안동일 작

축제의 수렵경연

그랬는데 무미가 떡하니 성큼 앞으로 서는 것이 아닌가.
“아진, 기다리고 있었어.”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손이라도 덥석 잡을 기세였다.
“무미님이시군요.”
아진도 응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사이에 많이 달라졌는데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 힘들지는 않았고?”무미는 아진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 투석기 쏘아대듯 말을 이었다.
“아진 지금 잠깐 나하고 이야기 할 수 있지?”“숙소로 가봐야 하는데…”
“아니야 숙소에는 내가 벌써 가봤어, 오늘 안에만 들어가면 될 것 같던데,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을 텐데, 그렇지?”사실 그랬다.
지금 석식시간이 끝나 있었기에 굳이 찾아 먹자면 못 할 일도 아니겠지만 아진은 용노사 초막에서 나올 때 들고 나와 길에서 먹은 삶은 감자 세알로 저녁을 때우기로 작정했었다.

무미가 서 있던 나무 밑에는 무슨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아진 잠깐 저쪽으로 같이 가, 누이가 준비해 놓은 게 있어.”
무미가 아진의 손목을 잡으며 저쪽으로 끌었다.
여성에게 손목을 잡힌 것도 또 누이라는 말도 아진에게는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게 무미가 이끄는 대로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무미는 아진의 손을 그대로 잡은 채 몇 걸음 옮겨 검은 보자기 꾸러미를 들더니 정원 뒤쪽의 으슥한 곳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저 이손을 좀…”
아진이 더듬거리며 한마디 했다.
그제서야 무미는 꽉 잡고 있던 손목을 놔주는데 그녀도 얼굴이 발게졌다.
“여기가 좋겠다. 더 좋은 곳을 찾았으면 좋겠지만 더 어두워 지면 안되니까, 오늘은 그냥 여기서 지내자.”
무미는 검은 보자기 꾸러미를 풀러 바닥에 깔더니 아진더러 앉으라 했다. 구수한 냄새가 풍겨 왔다.
“누이가 아진님 주려고 오골계를 삶아 왔어. 그동안 수련하느라 힘들었을테니까…”
무미는 아직 서 있는 아진의 손목을 다시 잡아 끌어 앉혔다.
“누가 오면 어떻게 해요.”
“오긴 누가와. 그리고 우리가 뭐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오면 어때, 자 이리 손 줘봐.”
무미는 아진의 손을 끌어 물에 적셔 있는 흰 명주 수건으로 닦아 주는 것이었다. 준비도 꽤 신경써서 한 모양이었다. 아진은 그녀의 다정한 손길을 손에 느끼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 이제 빨리 먹어봐.”
무미는 닭 다리 하나를 쭉 찢어 아진에게 건넸다.
아진은 받아 들기는 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어 입으로 가져갈 생각을 못하고 멍하니 있어야 했다.
“왜 그래? 닭 싫어해 지난번에는 아주 맛있게 먹던데?”
“네? 언제?”
지난 봄에 내가 내군 식당에 갔을 때 그때 봤어 아주 씩씩하게 먹고 있었잖아.“
“아 그때요.”
지난 초봄에 훈련 대회가 끝나고 특식으로 닭 한 마리씩 장정들에게 지급 돼 신나게들 먹고 있을 때 무미가 무슨 일이었는지 내군 식당막사로 온 적이 있었었다. 다른 궁녀 두사람도 함께 였었는데 장병들은 먹다 말고 와 하면서 그쪽을 쳐다 봤었다. 특별히 아는 척도 않았을 뿐더러 아진이 생각하기에는 눈도 마주 치지 않았었는데 무미는 그때도 유심히 아진을 찾아 쳐다봤던 모양이었다.
아진은 닭다리를 입에 가져가 한입 베어 물었다. 사르르 입에서 녹는게 맛이 그만이었다.
온도도 적당히 식어 있어 먹는데 아무 불편이 없었다. 사실 며칠 동안 거친 음식만을 먹어야 했었기에 이런 정성이 담긴 음식에 혀가 놀랄 만 했다.
한번 돌기 시작한 입맛은 염치고 눈치고 없게 만들었고 닭 한마리를 헤치우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질그릇 안에는 검은 닭 뼈만 깨끗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무미는 다시 아진의 손을 무명 수건을 닦아 주고 자신의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
“어쩌면 한번 먹어 보라 소리도 않 하고 다 혼자 먹어 치워? 아진님은 정말 돼지야 돼지.”
“그랫어요? 쉬지 않고 주기만 하니까 그랬지요.”
아진은 다시 얼굴이 빨게 져야 했다. 어스름 어둠이 더 짙어 졌기에 그것을 눈치 못 채겠구나 싶은게 다행이었다.
“자 이거 마셔.”
무미는 작은 호리병에서 생강 물을 따라 건넸다.
아진은 이번에도 넙죽 받아 단숨에 마셨다. 달콤하며 매콤한 맛이 그만이었다.
한 사발 더 따라 주기에 이번엔 체면을 차려 반쯤만 마시고 내려 놓았다.
“맛 있었어?”
무미가 아진이 남긴 생강물을 홀짝 마시더니 물었다.
“네 무미님은 음식 솜씨도 대단하세요.”
“내가 이거 주려고 아침부터 얼마나 가슴 졸였는데, 찬광에서 데우느라고 눈치는 좀 봐야 했었고.”
그럴 법 했다. 아무리 너그럽고 분망하다지만 지엄한 법도가 있는 곳인데 이처럼 사사로운 일에 화로를 이용하려면 어려움이 뒤 따랐을 것이기에 그랬다.
“처음엔 술도 한병 가져 오려 했지만 아진님이 숙소로 들어걸 것을 생각해서 생강물로 바꾸었지. 섭섭해?”

“당치도 않습니다. 술이라니…”사실 아진은 아직 술맛을 몰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웬일인지 무미가 부끄러워 하는 테를 내면서 그릇과 꾸러미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제서야 아진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가슴이 쿵당대기 시작 했다.
“저 무미님 물어 볼게 있는데…”
이런 어색한 침묵은 남자가 깨야 된다 싶어 아진이 입을 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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