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ykorea
연재소설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제24회

안동일 작

배움의 길

노인은 아진에게 창봉을 건네 달라는 손짓을 했다. 아진은 두손을 모은 공손한 자세로 노인에게 봉을 건냈다.
순식간 일어난 일이었다. 아진의 눈을 크게 뜨게 하는 전무후무한 경험이었다.
창을 건네받은 용노인은 전광석화 같이 기장 볏짚을 향해 봉을 뿌렸다. 볏짚과는 한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창끝이 번쩍였는데 볏짚이 푸르르 날리며 볏단이 베어졌던 것이다.
노인은 창을 다시 놀라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 아진에게 건네면서 입을 열었다.
“두께가 있는 것에 두께가 없는 것을 밀어 넣으면 세상에 자르지 못할 것이 없다,”
말을 멈추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노인은 다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또 세상에 틈이 없는 자세는 없는 법. 그러므로 깨뜨릴 수 없는 자세 또한 없는 것이지.”

노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사실 창이야 말로 만 무기의 아버지 일세, 예전에 무슨 청동기나 철기가 있었겠는가 그저 나무 몽둥이였지, 창이야 말로 날 달린 몽둥이 아닌가 , 후일 곤은 할아버지고, 도는 스승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장병(長兵)은 곤으로부터, 단병(短兵)은 도로부터 수련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이다. 곤에 날을 달면 바로 창 아닌가. 창은 찌르기, 곤은 때리기 이렇게도 말들 하지만 창에도 많은 때리기 기법이 있지. 그런 때리기 기법을 소홀히 하게 되면 창의 무궁무진한 효용 중에서 일부분 밖에 쓰지 못한다는 말이란다. 창의 때리기 기법을 수련하면 곤, 즉 몽둥이 에서 파생된 모든 병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창을 비롯 해서 모(矛), 극(戟), 과(戈), 봉(棒), 장(杖), 간(竿) , 기(旗), 저(杵),까지”
노인은 양피지로 된 책 한권을 아진에게 건넸다. ‘경당 현천 창봉 중심 요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는데 글자는 많지 않았고 그림을 주로 해서 창봉술을 설명하고 있었다.
‘무릇 모든 무공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빠르고 경쾌함을 위주로 하는 것과 또 하나는 장중하고 무거운 것이다. 빠르고 경쾌함은 쾌(快)를 위주로 하기에 현란한 기술이 필요하다. 반면 장중한 것은 느려 보이지만 힘을 위주로 한다. 어느 것이나 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누구의 무기가 먼저 상대방에게 도달하느냐이다. ’

‘경당 현천 창법은 쾌를 위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창법을 빠르게만 사용하지 않고 느리게도 사용할 줄 알게 된다면 그대는 무공의 궁극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원래 창봉술은 육중한 무게감을 주는 것이 기본이다. 경쾌함은 곧 가벼움을 말하며 무게감은 모든 가벼움을 제압하는 것이다.
작은 나뭇가지는 싱긋한 푸르름이 우러나지만 산들바람에도 나부끼어 싱그러움이 한껏 우러난다. 그러나 천백년 이상 살아온 거목들은 그런 싱그러움은 없지만 아무리 강한 태풍에도 의연히 버티는 것과 같다. 모든 무공의 연원이 자연의 섭리나 그 이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도 모든 무공의 이치 또한 대자연의 이치와 같은 것이

다.’
‘현천창법은 빠름을 위주로 했기에 초식은 화려하지 않고 불필요한 동작을 배제했다. 초식은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상황에 따라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대는 이 창봉법을 먼저 충분히 숙달한 다음 최대한 빠르게 펼칠 수 있도록 중점을 두고 훈련하라. 각 초식은 7가지로 각자 다른 초식이지만 연환해서 사용할 수 있고 이어질 수 있다. 초식이 뒤로 갈수록 난해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라 어느 초식이나 비중은 같다. 따라서 연환식으로 어떤 것을 먼저 시작하든 또는 어떤 초식에서 다른 초식으로 이어지든 항상 연계되어 펼칠 수 있다.‘

아진은 요해서의 창법 7가지 초식에 대한 설명을 한자 한자 놓칠세라 골똘히 읽었고 한 그림 한 그림 잊을세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런 뒤 따라했으며 다시 용노사의 설명과 가르침을 들었다.
주역의 팔괘를 원용한 초식의 18가지 변화 동작은 마치 이어지는 춤동작과 같았다.
궁내 연무장에서 익힌 경당 창봉법과 크게 다름이 없었기에 기본 동작들은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다. 다만 초식 속에 숨겨진 뜻을 읽을 수 없어 각 초식마다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몰랐었는데 다시 펼쳐보니 다른 느낌을 주었다. 각 동작 속에서 창의 끝 혹은 중단 봉 부분이 상대의 어디를 노리는 것인지, 위력은 어떻게 발휘되는 것인지, 또한 일관되게 무조건 바르게만 펼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강하고 약하게 반복하면서 길고 짧음을 복합하여 혼용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펼쳐지는 창봉법의 운영을 도저히 가늠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설명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는 그저 단순히 흉내 내기만 해서 그런가?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는군. 그저 그런 동작이거니 했었는데 지금 와서 그 의미를 깨닫고 펼쳐보니 확실히 그 속에 숨겨진 변화가 많구나. 이런 변화라면 그 누구라도 쉽게 대응할 수 없겠는 걸.’
아진은 새삼스러워 보이는 창봉술법 초식 7가지를 다시 동작해 보면서 점 점 더 깊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진은 경당 창봉비급을 촛불 삼고 용 노사의 자상하지만 준열한 호령을 벗 삼아 보름을 용노인의 초막에서 지냈다.
전에는 흉내만 낸 것에 불과 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경탄 속에 새록새록 하나하나 동작의 요체와 근원 까지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그려지니까 그대로 동작으로 재현됐고, 그 동작에는 힘이 넘쳐 있었다. 기 정 신이 그대로 함축돼 있었기에 아진도 보름이 지나서는 용노사 만큼은 되지 않았지만 날을 벼르지 않은 창봉으로 짚단을 벨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월에 대한 소양을 넓힐 수 있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하루 반나절 쯤을 도끼로 나무 하는 일에 할애 했던 것이다. 부월이야 말로 무기로 쓰는 도끼 아닌가. 부월도 창과 마찬 가지였다. 정 기 신을 요해한 마음으로 펼치는 도끼질은 단순한 나무패기가 아니었다. 바로 무공 훈련이기도 했던 것이다.
용산 용학 노인의 오두막은 아진에게 또 하나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었고 후일 아진은 용노인이 세상을 떠 난 뒤 이곳에 무열사라는 사당을 지어 사부를 기렸다. 아진은 기회 있을 때 마다 용산 우거에 들어 무예 연마를 했었다.
그리고 인근 마다산에서 야생마들을 상대로 독특한 기마술을 익혀 후일 아진 마술이라는 기마용어 까지 만들게 했다. 용노사는 말 다루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스승이었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54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84회

안동일 기자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87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