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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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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제23회

안동일 작

배움의 길

“무릇 무공을 익힌다 함은 정기신(精氣神)을 단련한다는 말과 일맥상통이지. 자네는 정기신이 무얼 뜻하는지 알고 있는가?”
용노인이 물어왔다. 두 사람은 별이 초롱초롱 내리 비춰 떨어질 것 같은 산정의 초막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아진은 고개를 숙인 후 대답했다.
” 정(精)은 신체를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 육체를 뜻하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기(氣)는 세상의 근본이며 본질 입니다. 보이지 않는 생명의 기운이라고 들었습니다.”
노인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적당한 표현인 듯 하구나. 그러면 신은?”
” 신(神)은 정신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정과 기가 이미 이루어진 토대를 일컫는 것이라면, 신은 사람의 의지에 의해 끊임없이 창조되고, 소멸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 흠”
아랫입술 밑을 쓰다듬으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던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그 말은 틀리면서도 맞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샌가 노인의 말투가 엄한 반말로 변해 있었다. 제자로 받아 들이겟다는 표식이 아닌가.
아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곰곰 머리 속을 뒤져봐도 분명 흑치 사범에게 들은 설명은 그것이 전부였다. 또 무엇이 있는 것 일까? 아진은 반짝이는 눈을 사부에게로 돌렸다.
”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는 유동적인 힘, 곧 의지라 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신(神)을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지 않느냐?.”
이야기에 박자를 맞추듯 노인은 상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 내가 뜻한 신은 정신력보다 조금 더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을 의미 한단다. 무릇 세상의 껍데기가 정이요. 그 정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기라면, 신은 바로 부여된 생명력에 활력을 부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
노인은 백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하더니 정색을 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까 네가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무술을 연마 한다고 했을 때 내가 토를 달기는 했다만 사실은 네 말이 틀린 게 아니다. 세상은 강한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고 또 무술이야 말로 사내를 강하게 만드는 첩경이요 원동력인 게 틀림없다. 그런데 정 기 신 가운데 신이 중요한 까닭은 그 강한 힘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신 좁혀 말해 강한 사람의 의지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이세상이 평온해 질 수도 있고 싸움과 분규의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는 까닭에 애써 묻고 있는 것이다.”

“아.”
한 마디 짧은 탄식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동시에 아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노사의 말씀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무리 형태가 갖춰지고 생명력이 주어져 있어도 결국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요 의지, 곧 신(神)이라는 말씀 이로군요. 무예도 세상을 위해 그것도 활력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 돼야만 한다는 말씀 아닙니까?”
답을 하는 동안에 아진은 세상의 활력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출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진의 답변에 노인은 속으로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 총명한 청년로고.’
타고난 무골(武骨)인 둘째 제자 사목이나 생각이 깊은 첫째 흑치조차 세 마디 문답 끝에 이리 정확한 대답을 하지는 못했었다.

“그렇구나. 무학(武學)으로 말하자면 형(形: 모양)를 이루 는 신체와 초식이 곧 정(精)이요, 힘을 실어주는 내력이 곧 기니라.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힘의 크기와 경중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니 이루어진 형태 를 부리고 사용하는 것은 모두 뜻이요, 행함인 신(神)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바른 신 세상에 유익한 신을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무예의 길이 열리고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니라.” 노사의 설명은 게속 이어졌다.
“엄밀히 따질 때 정, 기, 신은 서로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상호 변환하지. 정(精) 이 기(氣)로 화하고, 기가 신(神)으로 화하기도 한다는 얘기란다. 또 신(神)이 기로, 기가 정(精)으로 화하기도 하지. 이들의 관계를 촛불로 비유해 볼 수 있다. 정이 초라면, 기는 불꽃이지. 또 신은 불꽃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라 할 수 있다. 초가 크면 불꽃도 당연히 커지게 마련 아니냐? 불꽃이 크면 빛도 더 밝아지겠지. 이처럼, 정이 충만하면, 기가 장(壯)해지고, 기가 장(壯)하면 신은 더욱 밝아지는 법이다. 정을 충만하게 만들고, 기를 장 하게 만들어서, 신을 더욱 밝히는 것이 수련의 기본원리란다. 몸에 생명력이 충만하면, 정신도 맑아지게 마련이다. 정신이 맑아지면, 마음도 따라서 밝아진지. 정신이 맑으면, 몸에 생기가 돌고, 마음 또한 환해지는 법. 마음이 맑아지면, 정신이 맑아지며 생명력도 충만해진다. 그래서 몸ㆍ마음ㆍ정신을 함께 닦을 때 심신(心身) 건강을 제대로 얻게 되고 온전한 깨달음도 이룰 수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배움의 즐거움이련가. 노인의 설명에 아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노인 역시 잔잔한 미소로 청년의 환한 웃음에 답했다.
“오늘은 이쯤 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얘기 나누자 꾸나 며칠은 나와 함께 있을 수 있겠지?”
“예 흑치 스승께서 다 안배 해 주셨습니다.”
어전 사냥대회가 열리는 3월 그믐 까지만 돌아가면 되기에 보름의 여유가 있었다.
용노인은 다음날 아침 아진에게 창봉을 던져 주면서 지금까지 배운 바를 보여 보라고 했다.
아진은 떨리는 가슴으로 창봉을 단단히 쥐고는 흑치 사범으로부터 베운 경당 창법 7괘 변화를 끝 까지 시연 했다.
가쁜 숨을 수습하기도 전에 노인은 마당에 세워져 있는 짚단을 베어 보라고 했다.
어떻게 날 없는 봉으로 짚단을 벤단 말인가 싶어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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