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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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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제8회

안동일 작

3. 동맹 제전

화사한 물발울 꽃 무늬가 들어 잇는 옅은 하늘색 긴치마와 붉은 선이 강조된 짧은 노란 저고리가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았고 그녀들이 가운데로 모였다가 바깥 쪽으로 퍼져 나가며 긴소매의 팔을 하늘로 펼칠 때면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탄성을 올다.
가운데의 한 소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로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집중해서 숨을 죽였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워라 그리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구구대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아끼는데
외로워라 그리워라
짝을 잃은 이 내심정
저 꾀꼬리 알까보나

짝을 잃은 유리왕의 심정이 아니라 유리왕을 떠나는 치희(稚姬)의 심정을 읆은 노래 같이 들렸다.
정말 꾀꼬리 같은 목소리였다.
무용과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무대 저편에서는 나이 지긋한 남정네와 여성들이 진작부터 무언가 만들고 있었다. 수달피 가죽 같은 가죽을 들고 올라 왔었는데 칼질이 끝나 지금은 열심히 바느질들을 하고 있었다. 바느질 하는 노인들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 였다. 노래 가락에 맞춰 다디미질을 해서 가죽을 폈었는데 꼭 악기를 다루는 것 같았었고 바느질하는 노인들의 손은 무용수들을 지휘하는 동작 같이 느껴졌다.
여인들의 빠른 춤사위가 절정에 오르는가 싶더니 한 사람씩 앞에 나와 자태와 동작을 뽐내고 다시 원형으로 모였다 큰 동작의 손 뻗음으로 그녀들의 춤은 끝났다.
천상으로 비상하는 새의 날갯짓을 연상하게 했고 그 바람을 타고 떠오르는 활달한 기상이 온 궁궐 마당에 퍼져 나갔다.
우레와 같은 박수 와 함께 그녀들이 무대에서 내려갔고 무대위에는 바느질 하던 노인들만 남았는데 그들은 신발을 만들고 있던 것이었다. 어느새 가죽신이 완성 돼 있었다. 가운데 노인과 중년 여인이 가운데로 나와 자신들이 만든 두 켤레의 가죽신을 관중 들에게 들어 보이더니 뒤쪽 왕과 대가들의 자리쪽으로 갔다. 그러더니 왕과 왕비 앞에서 절을 하고는 신발을 올리는 것이었다. 왕과 왕비의 신발이었다. 흡족한 표정으로 신발을 들어 살피던 호태왕은 자신이 신고 있던 신을 벗었다. 신발을 신어 볼 모양이었다. 옆의 왕비도 긴치마를 올리고 신을 벗는데 하얀 종아리가 들어나자 사람들이 ‘와’ 하고 함성을 올렸다. 왕비는 빙그레 웃더니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구려 사람들은 그랬다.
이제 아진네의 차례였다.
근위 시위장은 태왕에게 새롭게 신민이 되어 국력을 강성하게 하면서 충성을 바치고 있는 읍루의 믿음직한 청년들의 재주가 선보여 진다고 고했으나 군중에게 이를 전하는 근위병은 그냥 ‘읍루족 물길 부락 순서요’라고 소리 치기만 했다.
아진네 물길가산이 준비한 재주는 수렵인들의 날렵함을 선보이는 쑤박춤이었다.
아진과 라운 보태등 소년 5명과 가산 제일의 거구 오구등 장정 5명이 무대에 올랐다.
왕과 대가들에게 두 줄로 서서 인사를 한 뒤 관중들 쪽으로 돌아서 모두 웃통을 벗었다. 다소 쌀쌀 하기는 했지만 흥분과 긴장 때문에 전혀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장정들의 우람한 근육이 드러나자 여인네들이 너무 좋아 하며 박수를 쳐 댔다. 제일 어린 열두살 박이 조태의 갸녀린 몸과 오구의 덩치가 크게 대비되고 있었다.
모두 머리는 뒤로 묶엇고 풍성한 검은 베옷 반바지에 가죽으로 된 삿바를 차고 있었다. 삿바야 천으로 만들어야 햇지만 재주를 더 쉽게 펼쳐 강하게 보이기 위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가죽 손잡이 부분은 벌써 반질반질 손때가 뭍어 잇엇다.
중국에서는 서루 맡붙어 힘을 겨루는 씨름을 상박이라고 했고 여진사람들은 쑤박, 예맥인들은 씨임이라고 했다.
기마자세로 나란히 서서 무릅을 두 번 치면서 쑤박 춤은 시작 됐다. 서로 빙글 빙글 돌면서 밀치기도하고 당기기도 했는데 가끔씩 일사 분란하게 터져 나오는 우렁찬 기합 소리가 사람들의 집중을 불러 모았고 다섯명 아이들이 공중제비를 돌때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압권은 또래에서도 체구 작은 꼬맹이 조태가 거구의 오구를 들어 올려 메치는 장면에서였다. 물론 서로 미리 약속된 동작이기는 햇지만 자신 몸의 4배쯤 되는 거구를 실제 기술과 힘으로 메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태는 자신이 용을 쓰고 있다는느듯 얼굴이 벌개져서 땀까지 흘리고 있었지만 오구는 싱글벙글 이었다.
아진도 자신의 두 배쯤 되는 장정을 세 번쯤 넘어 뜨려야 했고 장정이 자신을 번쩍들어 메치면 사뿐히 공중제비로 바닥에 서는 재주를 세 번쯤 펼쳤다.
재주의 마지막은 인간 성 쌓기였다. 열명의 물길 재주꾼들은 춤추듯 몸을 옆으로 흔들면서 대오를 정렬 하고는 장백산 산딸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햇다. 그러면서 장정 네명이 서로의 어깨를 마주대고 섰고 그 위에 세명 그리고 그 위에 두명 그리고 마지막에 한명이 올라서는 그리 어려운 재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맨 위에 올라서는 인간 망루가 한태가 아닌게 문제 였고 볼거리 였다. 무대 위 청년들이 장백산 산딸기 노래를 부를때 대기하고 있던 소녀 한명이 역시 노래를 부르며 인간탑 쪽으로 걸어 왔다. 물길가산 귀염둥이 도도 였다.
소녀가 정정들을 타고 올라가 두손을 번쩍 들면서 노래 후렴을 마치고는 차레로 위에서부터 공중제비로 내려서는 순서였는데 연습때 도도가 올라 설 때면 탑을 쌓고 잇던 청년들 가운데 누군가 꼭 간지럽다고 웃는 통에 탑이 허물어 지곤 했던 것이다. 오태가 가장 많이 간지럼을 탔다.
별 긴장한 표정 없이 도도가 한태의 무등을 타고 장정들을 오르기 시작햇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딛고 높은 곳 까지 오르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오태도 오늘은 간지럼을 타지 않는 모양이었다. 위기의 순간이 있기는 했다. 도도가 2층에 올라와 3층에 있는 아진과 라운을 딛고 올라서야 할 때 삿바를 잡아야 하는데 삿바가 돌아가 있었는지 바지춤을 잡았고 그러자 바지가 내려갔던 것이다.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는데 다행히 엉덩이가 반쯤 보이려는 순간에 아진이 라운의 어깨를 집고 있던 손을 빼내 도도의 손을 잡아 냉큼 어깨위로 올렸다. 아진은 도도가 일부러 그랬지 않나 싶었다. 손을 쥘 때 전혀 긴장하는 내색 없이 오히려 손가락에 힘을 꼭 주는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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