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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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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82회

안동일 작

 인생 최대의 위기

변호사 선임을 위한 연락을 하게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를 끌고 가던 뚱뚱한 체구의 제복의 간수가 유치장 입구에 매달린 공중전화를 턱으로 가리켰다. 주머니엔 동전이 없었다. 빌리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동전 한개를 내밀었다.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수갑찬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려니 몹씨도 불편했다. 그것 보다는 기가 막혔다. 크리스의 방으로 했는데도 교환양이 받았다. 물론 회사는 난리가 나 있었다. 윤호도 조금전 수사관들에 의해 끌려 갔다고 했다. 헤리와 크리스는 샥스틴 영감을 만나러 달려 갔다고 했다. 상미가 전화를 받았다. 상미는 울먹이고 있어 제대로 말을 못했다. 빌리는 샥스틴도 샥스틴이지만 폴에게도 연락을 하라고 했다. 일단 샥스틴 영감이 이리로 달려 올 모양이니까 다소 안심은 됐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었고 앞쪽으로만 철창문이 있는 작은 방 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으면서 별로 아프지도 않았지만 수갑이 채워져 있엇던 손목의 자국을 어루만졌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방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메트리스와 변기가 양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벽은 새로 칠 했는지 깨끗했다.
아까부터 요의를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 변기를 보니까 그제야 생각이 났다. 저만치 책상에 앉아 있는 간수가 빤히 보는 곳이었다.
변기 앞에 서서도 빌리는 자신이 왜 그곳에 섰는지 잠깐 깜빡 해야 했다. 변기가 내려다 보였다. 변기의 동그란 물살이 보로이의 안경 너머 작은눈 처럼 보여 졌다. 보로이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의 뭉툭한 코가 생각 났다. 그리고 왕노사의 유독 콧망울만 두툼한 납작코가 떠 올랐다. 왕노사와의 인연 그리고 그동안의 만남들은 한편의 드라마 였다. 호랑이처럼 애기만 하면 나타나거나 전화를 해왔던 왕노사, 북경의 인민 대회당에서 주영장의 인사에 환호하던 그 순진 무구했던 모습, 백두산 천지 물가에서 호랑이 처럼 포효하던 그 노인의 함성. ‘그렇다, 여기서 물러 설 수는 없다.’ 빌리는 투지를 끌어 올렸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살 수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왕노사는 호랑이였다. 그러나 빌리 자신은 왕노사가 군왕이라고 햇던 만큼 더 젊고 힘센 호랑이 였다. 자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을 포효 할 호랑이였다.

빌리는 세차게 변기를 때리는 자신의 오줌줄기를 내려 보면서 변기 안쪽 주변에 지저분하게 붙어 있는 오물 찌꺼기를 씻어 내기로 했다. 이 찌꺼기들을 씻어 낸다면 이번의 위기를 여유잇게 벗어 날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된통 걸려 자신의 인생이 여기서 좌절하게 될 것이라는 비장한 생각을 가졌다.
말라 붙어 있는 오물 찌꺼기는 꽤나 강인 했다.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빌리의 집념과 물줄기는 더욱 강했다. 빌리가 진저리를 쳤을때 오물 찌꺼기는 물위에 둥둥 떠 있었다. 변기는 깨끗 했다. 빌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윌리엄 청, 이리 나오시요.”
얼마가 지났을까 빌리 한사람 밖에 없는 유치장에 대고 담당 간수가 소리를 쳤다. 그는 철창문을 따고 있었다. 언제 와 있었는지 아까의 수사관 두사람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청이 아니라 정이요.”
빌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문을 나섰다.
한 수사관이 수갑을 손에 들고서는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사내가 빌리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 했다. 수갑이 다시 허리춤으로 돌아갔다.
옆에 바짝 붙어선 두 사내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전화 벨이 연방 울려 대고 컴퓨터 프린터 소리가 들리는 수선스런 사무실 한쪽의 방앞에 섰다.
연방 검사 알프레드 클락이란 명패가 붙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문이 열렸다. 머리에 무스를 발라 가운데 가름마를 탄 갸름한 얼굴에 동그란 금테 안경을 낀 30대 중반의 사내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사내는 빌리의 자유로운 두손에 가장 먼저 눈길을 두는 것 같앗다. 사내의 표정이 변했다.
“누가 규정을 바꾸라고 했지.”
알프레드의 목소리는 신경질적 이었다.
수사관들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을때 빌리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빌리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수사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고맙소, 수사관.”
빌리가 낮은 목소리로 그의 귀에 대고 한마디 했다.
연방검사 녀석은 자리에 앉은 채 빌리를 향해 녹슨 쇠파이프를 타고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윌리엄 쳉, 그동안 잘도 법망을 빠져 나갔었는데 이번에는 뜻대로 안될걸…”
빌리는 녀석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벌써 녀석은 빌리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녀석이 서류를 뒤적이는 듯 하더니 의자를 뒤로 제끼면서 저쪽을 쳐다 보면서 말했다.
“ 당신 미합중국의 법 제도와 검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빌리는 계속 검사를 노려 보기만 했다.
“미합중국이 당신의 생각과 같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시요?”
빌리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당신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나 있소, 그리고 충분한 증거와 증언도 확보 돼 있소, 조금있으면 당신의 그 잘난 변호사들이 몰려올 모양이지만 이번에는 어림도 없소, 이렇게 확실한 기록들이 있단 말이요.”
검사는 책상 위의 기록들을 주먹으로 탕탕 쳤다.
“수사에 협조하고 또 법정에서 유죄를 시인 한다면 나도 배려 할 사항이 있소, 그러나 당신이 나의 권위와 노력에 도전 한다면 나도 인정을 두지 않을 것이오.”
“법정에서 봅시다.”
빌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 프랭키 크레인의 진술이 있소. 명백하고 합리적인 진술이오, 그리고 여기 당신 옛 동료들의 진술이 있소, 당신의 모든것을 폭로한 결정적인 증거요, 공연히 헛수고 말고 이번에는 솔직히 털어 놓고 법의 자비와 선처를 구하는게 좋을 것이오, 이상이요.”
빌리는 법의 자비와 선처라는 말 보다는 법정신의 기본 원리라는 말을 해야 한다고 고쳐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무식한 자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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