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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78회

안동일 작

보로이 저택의 패션쇼

페트리샤와 베티는 1시간도 안돼서 보로이의 저택에 도착 했다.
그녀들은 차를 타고 오면서 이집이 누구의 집인지 또 이집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낸 모양이었다.
그녀들을 맞이하는 보로이는 마치 소년 처럼 수줍어하면서 부끄러워 하기 조차 했다.
보로이의 그런 순박한 태도가 그녀들을 더 편안하게 했고 미국 여인들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그대로 드러내게 했다.
그녀들 덕에 빌리도 집안을 샅샅이 구경 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이곳서 보로이가 파티를 열었을 때도 파티룸과 2층의 보로이 서재, 그리고 거실만 둘러 보았을 뿐이었다. 보로이의 모스크바 저택에는 진귀한 골동품이 즐비 했다. 제정러시아 때의 왕관에서 부터 중국의 도자기, 인도의 상아 조각, 페르시아의 칼, 프랑스의 모자이크 유리등 여자들은 그런 것들을 보면서 탄성을 질러 댔다.
보로이 저택의 압권은 마스터 베드룸 창가로 난 발코니 였다.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어 귀가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지만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모스크바의 그윽한 야경에 매료 되어 빌리등은 한참을 그곳에 서서 숨을 죽여야 했다. 모스크바강을 끼고 있는 크메믈린과 바실리 교회의 슬라브 도움은 눈덮인 백설공주의 성을 연상케 했다.
식당에는 정찬이 마련 돼 있었다. 프랑스 샴페인으로 건배를 했고 메이드들이 음식을 계속 날라왔다. 페트리샤와 베티는 아까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했기에 배가 부르다고 하면서도 날라져온 음식들을 잘 먹었고 연방 찬사를 했다. 아세트리나라는 이름의 감자를 넣은 생선요리가 담백 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는 일품이었다.
“모델들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조절 한다는데 당신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군요.”
보로이가 즐겁게 포크질을 하고 있는 두 미녀들을 쳐다보며 궁금 한듯 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들이야 언제나 음식을 잘 먹지요, 일단 체중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체질은 모델로써 낙제 입니다.”
“잘 먹지 않으면 모델 노릇도 할 수 없어요. 그게 얼마나 중노동인데…”
두 여인이 서로를 쳐다보며 교대로 말했다.
중노동이란 소리는 맞았다. 모델들은 모두 잘 먹어야 했다. 그래야 스테미너가 생겨 무대에서도 화사롭게 걸을 수 있었고 피부도 윤택있게 보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경이야 쓰죠,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을때는 우휴”
페트리샤가 진저리 까지 치면서 디저트로 나온 마로제노에(아이스크림)를 한입 쏙 집어 넣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는 보로이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오히려 보로이가 너무 들떠 있어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테이블의 화제는 자연 모델들 이야기로 흘렀다. 그녀들이 얼마나 스테이지에 서기 전에 긴장을 하는지 또 한커트의 마음에 드는 사진을 뽑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포즈를 취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필름을 사용해야 하는지 두 여인이 신이나서 재잘 댔다.
“그런데 나는 한번도 페션쇼라는 것을 직접 구경 한 적이 없어서…”
보로이가 의외의 말을 했다. 그렇게 예쁜 여자들 보는 것을 좋아 하는 그가 패션쇼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니…
“정말이세요?”
베티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어디서 하는지도 잘 모르고 초대해 주는 사람도 없으니 뭐…”
보로이가 쑥스럽다는 듯 대답했다.
하긴 모스크바에서야 패션쇼 라는게 알려지기 시작 한게 몇년 되지도 않았고 그 수준이란 것도 뻔했다.
식당 저쪽은 댄스 플로어가 꾸며져 있었다. 1백명이 춤을 춰도 좁지 않을 만큼 넓은 무도장이었다.
커텐에 살짝 가려져 있는 그곳을 쳐다보던 베티가 무언가 생각난 듯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페트리샤를 쳐다 봤다.
“페트리샤, 여기서 우리 한번 생전 패션쇼를 보지 못한 러시아 아저씨를 위해서 판을 벌려봐?”
자기들끼리의 은어를 섞은 빠른 영어 였기에 통역을 하는 이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터 였다. 보로이가 눈만 껌뻑 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페트리샤가 물었고 베티가 무도장을 턱으로 가르켰다.
“마침 의상도 차에 있잖아.”
페트리샤가 빌리를 쳐다 봤다.
“그래 어렵지 않다면 한번 해봐, 멋진 생각인데.”
빌리가 환영의 뜻을 표했다.
페트리샤가 눈을 반짝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세이, 우리 공주님들이 여기서 패션쇼를 열어주겠답니다. 러시아 촌 아저씨를 위해서.”
빌리의 설명에 보로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학예회를 준비하는 학생들 처럼 모두 신이 나서 간이 패션쇼 무대와 객석을 꾸몄다. 마침 오늘 촬영에 썼던 의상들을 리무진에 다 싣고 왔기에 제격이었다. 무도장 한구석에 커튼을 치고 탈의실을 만들었고 페트리샤와 베티는 조명을 조절하고 음악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을 때 빌리와 보로이도 자신들이 앉을 의자를 날라와 좋은 자리를 점령했다. 하인들이며 경호원 들도 신이 나서 열심히 거들었다.
그녀들은 역시 프로 였다. 순식간에 콘티를 짰는지 순서에 맞춰 틀어야 할 음악의 곡명을 종이에 적어 이반에게 건네 줬고 조명을 맡을 덩치 큰 총각에게는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 해달라고 설명을 했더니 총각 녀석은 마른침을 꿀꺽꿀꺽 삼켜 가며 연방 고개를 끄덕 였다.
슬라브 풍의 뮤직이 컴컴한 무도장을 가득 메웠고 커튼이 열리면서 붉은 바탕에 노란 레이스로 가득한 러시아 고유 의상을 입은 두여인이 조명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엇갈리듯 마주 보며 걷다가는 훽 몸을 돌려 각선미를 살짝 노출했고 서로 노려 보는듯한 표정을 지었다가는 생긋이 웃었다. 보로이를 바라보며 웃엇을대 그가 앉은 의자가 흔들렸다.
페트리샤가 혼자 스테이지에 남아 아다지오 스윙 스탭을 밟을때 배티는 커텐 뒤로 사라졌고 음악이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으로 바뀌었을때 베티는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 복장으로 나타 났다. 착 달라붙는 불루진은 빌리네가 만든 닥스 였다. 그녀는 장난감 총까지 차고 있었다. 씨억씨억 걸어 나오던 그녀가 총을 보로이에게 겨눴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녀의 탄알은 윙크였다. 빌리의 의자 모서리에 부츠신은 발을 올리고 총으로 카우보이 모자를 치켜 올리면서 또 한번의 윙크를 발사 했을때 보로이는 아예 숨을 멈추고 있었다.
페트리샤가 야회복으로 무대를 휘젔고 들어간 뒤 초 미니스커트 차림의 베티가 각선미를 한껏 뽐냈고 두사람이 함께 파티 드레스의 자태를 선 보이기도 했다. 어느 틈엔지 집안의 하인들과 경호원들이 무도장으로 다 몰려 들어와 뒷 쪽에서 기막힌 쇼를 구경하고 있었다. 보로이는 그녀들이 어떻게 저처럼 빨리 옷을 갈아 입느냐고 감탄을 연발 했다. 빌리가 보기에도 신기에 가까웠다. 조명을 맡은 총각녀석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관객들이 진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 이날 쑈의 하일 라이트 였다. 가슴의 노출이 강조된 야회복 맵시를 뽐내고 커튼 뒤로 들어가는 페트리샤를 뒤쫒던 조명에 커튼 안이 살짝 엿 보였다. 커튼이 열렸을때 옷을 든채 상반신을 완전히 벗고 잇는 베티의 모습이 조명 한가운데 그대로 포착 됐던 것이다. 얼른 베티가 자신의 가슴을 가렸지만 관객들은 볼것을 다 본 뒤였다. 키드득 웃음이 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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