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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76회

빌리의 저택과 러시아

10월 초순의 모스크바 세레메티에보 공항의 새벽은 살을 에일 정도로 추웠다. 그래도 예전에는 무척 까다로왔다는 입국 심사가 많이 간편 해진 때문인지 여행자들의 얼굴은 밝았다.
보로이와 함께 뉴욕을 방문했던 이반이 손을 흔들고 다가와 빌리의 가방을 받아 들면서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으로 빌리 일행을 안내 했다. 미국에서도 타보지 못햇던 캐딜락 최신형 리무진 이었다. 막 차에 오르려는데 페트리샤가 이쪽으로 달려 왔다.
“미스터 첸, 우리가 묵을 호텔은 벨그라드 호텔이래요.”
그걸 일러 주기위해 달려 온 모양이다.
“알았어요, 추운데 어서 가봐요. 내 시간 봐서 연락 할께.”
이반이 더 눈이 똥그래져 있었다. 왜 같이 온 일행 같은데 태우지 않는냐는 눈치였다.
“미스터 쳉은 어디로 가죠?”
페트리샤가 이반에게 물었다. 이반이 빌리를 쳐다봤다. 빌리가 알려줘도 괞찬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 였다.
“일단 메지두나로드나야 호텔로 가기는 하는데 얼마나 그곳에 계실지는 잘모릅니다.”
이반이 독특한 억양의 영어로 말했다. 빌리가 듣기에도 호텔 이름이 복잡 했는데 페트리샤가 확인하듯 재차 물었으나 여의치 않자 연필을 꺼내 적어달라고 하는 통에 차의 출발이 지연 돼야 했다. 페트리샤의 손은 그새 얼어 붙은듯 손을 호호 불며 자신들을 마중 나온 차 쪽으로 뛰어 갔다. 보로이측은 빌리가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모스크바 저택을 사용 하라고 했었으나 이쪽이 극구 사양 했었다.
페트리샤는 모스크바에서 빌리를 꼭 만날 생각인 모양이었다.

보로이측에서 예약을 해 놓았다는 메지두나 호텔까지는 꽤 멀었다. 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해가 떠오를 무렵이었다.
호텔에는 뜻 밖에도 보로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로이는 10년지기를 만난 듯 빌리를 포옹하면서 반겼다.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데 왜 그리 고집을 부리냐 면서 아침을 같이 하기 위해 달려 왔다고 했다. 로비는 마치 파티라도 열린 듯 북적이고 있었다. 모두 빌리를 환영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었다. 보로이가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왔던 것이다. 러시아 공화국 경제부처 차관급 인사도 있었고 재계 인사라는 사람들이며 우락 부락한 레슬링 선수 같은 인물, 거기다 군 장성 까지도 있었다.
조찬회라도 열린듯 큰 식당에서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보로이는 빌리를 여러사람에게 소개를 했고 빌리는 마이크 까지 잡고 인사를 해야 했다.
첫날 부터 빌리는 모스크바에서 마치 국빈으로 초청 받은 것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보로이는 빌리의 일정을 꽉 잡아 놓고 있었다. 자신이 비지네스맨이라고 강조하는 마피아 두목들도 있었지만 중앙정부의 고위 관료, 그리고 의회 지도자들, 군장성들 까지도 줄을 이어 빌리와의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하기 시간을 비워 놓고 있었다. 빌리와 보로이가 움직일 때는 리무진 다섯대가 동원 됐다. 언뜻 보기에도 오버코트 사이로 머신건이 비쭉비쭉 보이는 중무장한 청년들이 그를 삼엄하게 경호 했고 만남이 있는 식당 안에서도 멀찌감치 서서 사방을 주시하는 그들의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다.
보로이는 빌리에게 특별히 요구 하는게 없었다. 자신이 긴히 상의 하겠다는 새로운 사업 건에 대해서도 아직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냥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같이 만나 보자고 하는 것이었고 만나서 하는 대화도 대개는 잡담 수준에 불과 했다. 빌리가 만난 러시아인들은 미국과의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더 증강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구체적인 제안은 없었다. 보로이는 사람들에게 빌리를 소개 할때면 미국에서 사귄 자신의 동생이라고 소개 했고 꼭 빌리가 예일대 법대 출신의 변호사이며 미국 최고의 저택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최고의 미녀를 애인으로 가진 사내라는 얘기를 반드시 덧붙혔다.
사흘이 후딱 지나 갔다. 그사이 빌리는 ‘쓰빨시바’(고맙습니다) ‘도브라에 우뜨라’(굿모닝) ‘다 스비다니야’(또 봅시다) 란 말들을 무수히 사용해야 했다. 이반이 제깐에는 열심히 통역을 했지만 썩 만족할 수준이 아니었다.
별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러시아와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황금어장 이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감지 할 수 있었다. 생필품이 모자른다,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해지고 있다고들 난리였지만 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의 복장은 두툼하고 풍성해 보였고, 실제 쇼윈도우에는 물건이 별로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시장이며 백화점이며 식당들에는 사람들이 넘쳐 났다. 모스크바 근교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육중한 트럭 들은 철강재며 기계류들을 연방 실어 나르고 있었다. 러시아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기술과 공업 생산력을 지닌 무한한 잠재력의 나라였다.
보로이의 초대에 따라 빌리를 태운 리무진이 레닌 언덕위에 육중하게 세워져 있는 보로이의 모스크바 저택에 멈췄을때 보로이는 현관에 까지 나와 있었다. 그는 두툼한 실내 까운 차림이었다. 낮에 점심을 함께 했음에도 팔을 번쩍 들어 빌리를 안고는 코를 비비는 러시아식 인사를 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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