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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74회

안동일 작

빌리의 저택과 러시아

“가끔씩은요.”
빌리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소리야? 가끔씩이라니, 이 바람둥이 친구야…”
젠마노가 주먹으로 빌리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가끔씩이라도 나는 좋아요, 할래요.”
비키가 그러는 바람에 젠마노가 더 크게 웃으며 ‘너는 좋겠다’하며 빌리의 어깨를 더 쳤고, 보로이는 영문을 몰랐을테지만 따라 웃었다.
“오픈 더 라이트 프린스.”
비키가 명료한 발음을 마이크에 대고 속삭였다. 기계가 알았다는 듯 녹색 불을 반짝 였다.
“비키도 이제 뉴욕 사람 다됐는데, 오픈 더 라이트라, 난 처음 뉴욕에 왔을때 오픈 더 라이트라고 해서 전등 자체를 열려고 했었는데 말이야…”
젠마노가 한마디 했다. 오픈 더 라이트는 일종의 사투리였다.불을 켜라는 말을 뉴요커들은 턴 온 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오픈이라고 했다.
비키는 불을 끄라는 명령어는 ‘굿나잇 프린세스’로 입력했다.
마침 날이 어둑어둑 해 져가고 있었다.
“자 이제 불을 켜야지.”
존이 비키와 빌리를 번갈아 쳐다 보면서 재촉 했다.
사람들이 죽 둘러서 카운트 다운을 헤아려 내려 가기 시작 했다.
‘셋 둘 하나’
“오픈 더 라이트 프린스.”
비키가 속삭이듯 작게 말했는데도 실내는 환하게 밝아 졌다.
영롱한 보석들이 빌리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올릴 때 존이 빌리에게 귓속 말을 했다.
“명령어는 언제든지 자네 맘대로 바꿀 수 있으니까…이 바람둥이 친구야”
두사람이 씩하고 웃자, 옆에 있던 보로이도 영문도 모르면서 같이 웃었다.

*****

빌리는 상쾌한 기분으로 에어로 프로트 비지니스 클라스 좌석에 앉아 신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빌리는 지금 모스크바로 날아 가는 길이었다.
일들이 아직 완결 되지 않았지만 며칠 사이에 폭풍 몰아 닥치듯 한꺼번에 해결되어 매끄럽게 끝나는 길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기에 러시아로 오르는 장도가 한결 가뿐 했다. 빌리가 들고 있는 오늘 아침 신문에만 해도 뉴왁 엘리자베스 포트의 스캔들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빌리의 눈에 난 친구들은 꼭 벌을 받았다. 전의 라루시가 그랬고 이번에 곤잘레스도 그랬다. 지금 곤잘레스는 콜럼비아로 도망가 종적을 감추고 있다고 했다. 그가 장악 했던 뉴왁 항구 노조는 다시 이탈리안 마피아들이 차지 했으나 거기까지는 아직 신문에 나지 않고 있었다.
뉴저지 포트 오소리티의 간부들이 줄줄이 기소 위기에 몰려 있었다. 녀석들은 째째하게 2천 달러에서 2만 달러 까지의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었다.
“비지니스 에이전트 선거가 언제 있다고 하지요? 내일 입니까?”
빌리가 옆에 앉은 김종우에게 물었다. 이번 여행에 빌리는 김종우와 이현우만을 대동하고 있었다. 유진이 함께 갔으면 좋았으련만 트럭회사 설립 때문에 유진은 도무지 틈을 낼 수가 없었다.
“에이전트라니요?”
“뉴왁 포트 노조 위원장 말입니다.”
‘아 참 이사람들 위원장을 그렇게 부르지요. 내일 오후에 한다고 하는데 별다른 일 있겠습니까? 계획 대로 로드리게즈가 지명되겠지요. 참 어제 그 친구 회장님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네 페트릭 하고 함께 왔더군요.”
“어떻습디까?”
“뭐 젠마노 페밀리 외곽에 있는 친구니까, 앞으론 어려움 없을것 같기는 합니다.”
뉴왁 항만은 젠마노 페밀리의 치밀한 공작으로 곤잘레스의 손에서 다시 젠마노네 손으로 넘어 갔다. 합법과 폭력을 함께 동원한 치밀한 작전 이었다. 페트릭이 빌리를 찾아왔던 것도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 페트릭은 그동안의 곤잘레스의 비행을 낱낱이 조사했고 그 기록들을 검찰과 언론에 제보 했고 암암리에 노조원 개인들에 대한 공작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곤잘레스는 콜럼비아 마약 밀매 단체와도 끈을 대고 있었다. 최근 동부지방으로 흘러 들어온 콜럼비아산 마약의 대부분이 곤잘레스의 뉴왁 항을 통해 밀수된 것이었다. 검찰 수사관들이 영장을 가지고 곤잘레스의 사무실을 덮쳤을때 곤잘레스는 이미 배를 타고 바다로 빠져 나간 뒤였다. 수사관들의 뒤를 이어 젠마노네 청년들이 노조 사무실로 들이 닥쳤고 아직 잡혀 가지 않은 곤잘레스 패들은 겁에 질려 백기를 들었고 노조는 간단히 접수 됐던 것이다. 노조 사무실로 들이 닥쳤던 청년들 가운데는 플라잉 드래곤의 청년들도 있었고 김광호의 24K 오비 청년들도 몇몇 있었다. 페트릭이 세를 과시 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직의 청년들이 반드시 필요 하다고 했기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가영과 김광호에게 연락을 했었다. 가영은 백부 이전구가 베트남 갱단에 의해 살해된이래 플라잉 드래곤을 실질적 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보스 노릇을 하고 있었다. 중화공소의 임원들이며 몇몇 장로급 인사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전적으로 가영의 편이었다. 가영을 옥죄어 오던 경찰의 삼엄했던 경계도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느슨해져 갔고 이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어차피 차이나 타운과 중국인 사회는 뉴욕의 공권력이 온전하게 미치는 곳이 아니었다.
김광호는 한인 밀집지역인 플러싱에 청년 교회를 열어 운영하고 있었다.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자신의 교회를 청소년들의 합숙소 처럼 개방하고 있었다. 집안에 불만이 있어, 아니면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가 하기 싫다며 집을 뛰쳐 나온 청소년들을 윽박 지르기만 해서는 절대로 바른길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10대의 청소년들과 함께 담배를 물고 그들의 고민, 그들의 불만을 세세히 들어 주면서 가장 현실적인 충고를 해주곤 하는 그의 모습은 빌리가 보기에 성스럽기까지 했다. 빌리는 그런 김광호를 적극 후원했다. 김광호는 언제나 큰 요구를 해오지 않았다. 청소년들이 일한 만큼의 보수를 달라고 했다.
김광호와 그의 청소년들은 지난 여름 헌츠포인트 야채 도매시장과 풀턴 어시장 대청소를 했다. 한인 청과 상조회며, 한인 수산인협회와 연계되어 몇십년 묶은 냄새나는 쓰레기들을 치우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교포 언론에 대서 특필 됐었다. 매일같이 산더미 같은 야채며 청과물 그리고 생선과 어패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도매시장을 청소 한다고 해서 다시 어질러 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과시 이기도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도매상인들이 한인 소매상을 대하는 태도들이 현격하게 달라졌다. 빌리네 회사가 이 행사의 최대 후원자 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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