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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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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54회

안동일 작

 

라루시 부하 녀석들은 아직도 저만큼에서 빌리등을 지켜보고 있었다. 흘끗 보니 한녀석은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택시를 불러 트레이스를 혼자 보낼까 싶기도 했지만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를 그냥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스텔라의 방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상황을 하나도 모르는 스텔라는 난데 없는 비키의 출현에 깜짝 놀라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비키가 누군지 알았기에 금새 환영의 제스쳐를 취했다. 스텔라는 비키가 빌리와 짝을 이룬것으로 여기는 눈치로 두사람을 교대로 훑어 보았다. 그녀의 뇌리에는 카니가 떠올랐음이 분명했다. 비키의 표정이 너무 창백 했다.
“잠깐 일이 있어 함께 올라 왔는데 따뜻한 차나 시키지?”
유진이 스텔라에게 말했다.
“그보다 브랜디 있으면 한잔 주세요.”
냉장고에 작은 병의 헤네시가 있었다. 비키는 단숨에 한잔을 비웠다.
그제서야 스텔라는 무슨 심각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스텔라가 유진을 쳐다 보며 어깨를 움찔 했다. 이밤에 뉴욕서 자신에게 걸려올 전화가 없다는 뜻일게다. 유진이 수화기를 들었다.
“그렇소”
한마디만 했을뿐 유진은 굳은 표정으로 상대방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져 갔다.
굳은 표정인 채 수화기를 내려 놓은 유진이 비키와 빌리를 번갈아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우리말로 했다.
“생각보다 심각한데, 지금 하퍼라고 라루시 직속 부관쯤 되는 녀석이야, 라루시가 지금 몹씨 취했데, 웃층에 시칠리에서 온 사람과 함께 있나봐, 걔들도 우리에 대해서 벌써 알아 봤나봐, 그러니까 아주 정중하게 나오는데, 아무리 자기들이 사정을 해도 비키 데려 오라고 라루시가 생난리 라니까, 우리보고 한번만 양보해 달라고 사정하는데…”
빌리는 생각에 잠겼다. 체면상으로도 인정상으로도 비키를 보낼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것은 라루시파와의 전면전을 의미했다.
비키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무릎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빌리는 이럴때 담배라도 태울 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 정면으로 비키의 빌보드가 빤히 보이고 있었다. 저 도도한 표정의 여인이 지금 자신 앞에서 떨고 있는 것이었다.
라루시도 저 빌보드를 보고 비키를 생각해 냈고 이밤에 불러 오라고 했지 않았나 싶었다. 부하들이 데리고 오다가 뺐겼다고 하니까 취한 정신에 생난리를 부렸을 것도 짐작이 갔다. 라루시쯤 되는 인물이 맨정신에야 그렇게 까지 했겠나 싶었지만 문제는 윤호의 말대로 심각했다.
시간이 없었다. 언제 녀석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미스터 쳉, 정말 미안해요, 제가 나갈까요? 나가시라면 나가겠어요. 하지만… ”
비키가 빌리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 눈에는 엄청난 애소의 그림자가 드리워 져 있었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떨궜다.
“윤호야, 우리도 나가자. 스텔라도 데리고.”
빌리가 다짐하듯 굳센 어조로 말했다.
“그래야 겠지.”
윤호가 대답하면서 코트를 들었다. 스텔라에게도 눈짓을 했다. 영문도 모르면서 스텔라는 옷장을 열어 자신의 코트를 꺼냈다.
“경찰 부르면 안돼?”
스텔라가 무슨 생각에서 였는지 빌리에게 물었다.
“경찰을 부르나 안부르나 결과는 마찬가지야.”
빌리가 자리에서 일어 섰고 비키도 주척주척 따라 일어 섰다.
문 앞이며 복도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여기 엘리베이터가 한곳 밖에 없나?”
복도를 걸으며 빌리가 윤호에게 물었다.
“저쪽에 비상계단이 있어요.”
비키가 재빨리 대답했다.
갑자기 웬지 빌리는 피씩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정말 라루시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비키의 말대로 그쪽에 비상계단이 있기는 했지만 겨우 두층을 내려왔을때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객실이 거기서 끝났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엘리베이터를 이용 하기로 했다. 복도에서 투숙객 두사람을 만났지만 라루시 녀석들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순간 네사람은 깜짝 놀라야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아까 시비가 붙었던 녀석중의 하나와 또 다른 사내 둘이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안으로 올라 탔다. 아까 유진에게 한방 맞았던 녀석만 휘둥그래져 있었고 다른 사내들은 침착했다.
“이렇게 꼭 도망쳐야 겠소?”
커다란 눈망울의 사내가 빌리에게 말했다.
“이럴 수 밖에 없지 않겠소?”
빌리의 말에 사내는 대꾸가 없었다.
“내가 하퍼 다마토요, 빌리 쳉.”
커다란 눈망울의 사내가 정면을 쳐다보며 무심한듯 말했다.
“그런줄 알았소.”
빌리도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키가 빌리 당신의 목숨을 걸만큼 그렇게 소중하오?”
그때 비키는 빌리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경황중에 너무도 겁이나 그랬던 모양이다.
“비키는 우리의 마스코트요. 보이지 않소?”
빌리가 유리로 되어 있는 엘리베이터 벽 정면으로 보이는 비키의 빌보드를 턱으로 가르켰다.
하퍼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로비에 멎었다. 로비 밑으로도 단추는 4층이나 더 있었다. 모두 눌러져 있엇다.
“빌리, 난 당신을 보지 못했소.”
하퍼가 멈칫 거리고 있는 두 사내들에게 눈짓과 어깨짓을 했고 그들은 로비에서 내렸다. 비키가 이번에는 빌리의 어깨에 무너지듯 머리를 기대왔다.
스텔라가 울먹이고 있었다.
“아까 내옆에 있던 그 사람 총 갖고 있었어, 주머니 속에서 만지고 있었어…”
겁에 질려 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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