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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52회

안동일 작

레인코트, 트렌치코트의 원단을 공급하고 있는 휴스톤 방직회사에서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카튼 원단의 구매를 제안해 왔다. 레인코트의 그것과는 다른 중질의 원단이었는데 원매자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 이라고 했다.
워낙 실력이 있는 회사여서 염색이며 마무리가 잘 돼있는 천이었다.그런데 칼라 종류가 너무 많았다. 세라가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가격을 더 다운 시켜 구매 하자고 했다.
“왜? 무얼 만들려고? 티셔츠 만들기도 그렇고 스웨트 셔츠 만들기도 그런데?”
빌리가 물었다.
“맨날 비싼것만 만든다고 불만이라면서? 이번엔 대중적인것 한번 내보자.”
사실이 그랬다. 너무 고급 고급만 추구 하기 때문에 빌리가 그토록 오매불망 입에 달고 사는 비 백인 서민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선뜻 구입하기 어려 웠기 때문이다.
“카튼 저지 팬츠 셋트를 만들어 내는 거야, 그동안 탈 브랜드를 애용한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도 겸해서.”
“팬츠 셋트, 그게 뭔데?”
윤호가 물었다.
“집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도 있고 또 가까운 동네일 볼때 입을 수 있는 일종의 스웨트 셔츠지.”
“그래?
“바지와 셔츠를 합쳐 50달러 선에 사 입을 수 있게 한다면 큰 서비스 아니겠어?”
“그렇겠는데, 좋아 한번 해보자.”
“세라가 이제 아기 엄마가 되려 하니까 사람이 좀 달라지기는 하는구나.”
너무도 쉽게 패턴이 나왔고 재봉도 엄청나게 쉬운 제품이었다. 특별한 악세사리도 필요 없었고 바지에는 지퍼도 필요 없었고 허리는 끈으로 묶게 돼 있었다. 사이즈도 대중소 세가지면 끝이었다. 라운드로 되어 있는 목부분의 마무리, 그리고 롱슬립 상의와 바지의 끝부분 일레스틱 밴드에 신경만 조금 쓰면 됐다. 그것 만큼은 최고급 이탈리아산 일레스틱을 구해 달았다.
그리고는 탈 로고를 꽝꽝 찍어 냈다. 상의 오른쪽 가슴, 하의 옆 재봉선 그리고 일레스틱 밴드부분에 말뚝이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선풍적인 인기였다. 웬만한 백화점과 의류점에서는 아예 10만장 단위로 주문을 해왔다. 서비스로 내놓은 물건이 아니라 주력 상품이 돼야 했을 정도로 매출에서 레인코트를 능가 했다. 백화점 마다 의류점 마다 한사람이 한번에 열벌씩 색깔별로 들고서 캐쉬어 들을 바쁘게 하고 있었다.
휴스톤의 공장 라이스사는 먼지 쌓여 있던 천덕꾸러기 3 포인트 카튼 기계에 다시 기름칠을 해야 했고 단박에 그 기계는 그회사의 최고 귀염둥이로 탈바꿈 하고 있었다. 사람이며 기계가 모두 정신없이 돌아가야 했다. 원단 공급 가격은 더 떨어져 있었다. 라이스사는 빌리네가 아예 원단 공장까지 차릴까 봐 전전 긍긍이었다.
일레스틱 노하우 때문에 그리고 라이스사의 권유도 있고 해서 시험삼아 시도한 양말도 엄청난 히트 상품이었다. 종래의 면 양말이 너무 투박하거나 아니면 너무 얇고 약해 소비자들의 불만을 샀었는데 ‘탈’ 브랜드의 양말은 그런 소비자들의 불만을 확실하게 해결해 주고 있었다. 물론 양말은 기계가 만들어 냈다. 휴스턴 라이스사의 소개로 엉겁결에 인수한 양말 공장이 효자 노릇을 했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신사들이 다리를 꼬느라 바지가 슬쩍 발목위로 올라갈때면 앙증스런 취발이가 고개를 내밀고 웃고 있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장관들도 양말은 ‘탈’만 신었다.
흰색 단색을 고집하는 틴에이저를 위해서는 흰색의 하회탈이 준비돼 있었다. 도톰한 하회탈은 테니스를 치다가 또 골프를 치다가 발목을 만질때면 플레이어들의 손끝을 기분좋게 자극하는 행운의 심벌이었다.

‘탈’의 대중화에 일등 공신이기도 했던 디자이너 세라 오의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린시절 부터의 꿈이었던 제한 생산품 파티 드레스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섰다. 그래야만 명실상부한 탑클래스 디자이너로 또 토탈 패션의 여왕으로 등극 할 수 있었기에 말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니 유명 모델들과 자주 접촉해야 했고 또 패션쇼도 준비해야 했다. 빌리등은 한달 앞으로 계획된 세라의 첫번 개인 패션쇼를 최고의 것으로 만들어 주기로 이심전심 작정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사무처리며 계획등을 검토하고 늦은 시각 빌리와 유진이 사무실에서 내려와 타임즈 스퀘어 쪽으로 걷고 있었다. 메리옷 호텔에 홍콩서 조지와 스텔라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임즈 스퀘어 네온 광장에는 빌리네 탈 레인코트의 맵씨를 한껏 뽐내고 있는 비키 트레이스의 대형 입간판이 주위를 압도 하고 있었다.
언제나 보아도 비키의 앙칼진 눈과 도도한 입술은 보는 이들 특히 남자들의 입을 마르게 하고 있었다.
“이제 저거 바꿀때 되지 않았어? 벌써 10개월 짼데…”
“왜 보기 좋은데…”
“그래도 모델 좀 바꿔보지, 저 여자 너무 잘난것 같아서…”
“그래? 스텔라로 바꿔 볼까?”
“자식 놀리긴…”
“농담이 아니라 다음번에 과감하게 넌코케이젼으로 가보면 어떨까?”
“글쎄 장사에는 아무래도 별로 겠지만 다른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
“장사에는 별로일까?”
“그럼 레인코트 시장이 완전 백인시장이니까…”
둘이 이런 애기를 나누며 44번가에 있는 메리옷 호텔 정문에 거의 다다렀을 즈음이었다.
메리옷 호텔은 46번가 쪽으로 정문이 있기도 했지만 지하 주차장 입구쪽을 통하면 44번가에서도 정문 로비로 들어갈 수 있었다.그러나 그쪽은 으슥해서 밤이면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았다.
그때 빌리등을 치기라도 빠른 속도로 리무진 한대가 훽 지나치면서 호텔 입구로 오르는 계단 앞에 멎었다.
“저 자식 저거…”
윤호가 차를 노려 보면서 혼자말 처럼 중얼 거렸다.
그때 차문이 급히 열리더니 웬 금발 여인이 튕기듯 뛰어 나와 이쪽으로 달려 왔다. 남자 세사람이 차에서 급히 내려 그녀를 쫒고 있었다. 여자는 스타킹만 신은 맨발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기 서”
남자들이 고함치고 있었다.
여자와 빌리네와의 거리가 대여섯 발자욱 쯤으로 좁혀 졌고 곧 남자들에게 잡힐 순간 이었다.
빌리와 유진이 여자쪽으로 걸음을 움직였고 머리와 옷매무시가 헝클어 지기는 했지만 꽤 잘차려 입은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다음는 순간 깜짝 놀라야 했다. 금발 여인이 바로 빌리네 모델 비키였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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