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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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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44회

안동일 작

 

/ 미국인 들도 정확한 뜻은 모르면서 한인들 보다 더 크게 박수와 환호를 올렸다. 빌리는 가슴이 뭉클해 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말뚝이가 자신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양반이란 놈들이 가식과 허세에 가득차 있는 이땅의 백인들 이라면 말뚝이는 소수민족 이민자의 상징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이놈 말뚝아, 말뚝아, 이리오너라.’
‘말뚝이란 놈은 제 의붓아비 때부터 오만한 놈이라 한두번 불러서는 아니 오는 놈이니 한번더 불러 봄이 어떤고.’
‘그놈을 다시 불러 그러다 양반 체면에 봉욕을 당하면 어쩔려고?’
‘내가 전 책임을 지고 욕사발을 다 먹을 것이니 다시 부름세.’
양반은 이처럼 말뚝이에게 은근히 겁을 먹고 있다.
말뚝이는 저만치서 혼자 떠들고 있었다.
‘양반 나오신다. 재갈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 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 나오신단 말이요.’
‘야야 이놈 뭐야아!’
‘삼정승 육판서 다지내고 톼로재상으로 계신 이생원네 삼형제 나온다고 그리하였소.’
‘이생원이라네’
양반들이 춤을 추며 돈다.
‘이 지에미를 붙을 양반인지 좆반인지 허리꺽어 절반인지, 개다리 소반인지 꾸러미전에 백반인지…’
‘이놈 말뚝아 이게 무슨 냄새냐?’
‘마나님 혼자 계시기에 벙거지를 쓴 채, 이 채찍을 찬 채, 감감을 한채 두 무릎을 꿇고 하고 하고 또 했더니 그만…’
‘이놈의 모가지를 뽑아서 밑구녕에다 박던지 해야지 원…’
관객들의 폭소와 박수가 터졌다.
빌리와 친구들은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아시안 민속 페스티벌서 한국의 탈춤 놀이를 관람 하고 있었다. 관객은 미국 사람들이 대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관객들의 손에는 영문으로 된 대사와 줄거리가 적힌 프로그램이 들려져 있었다.

‘여보게 시 짓기나 하세, 내가 운자를 넣지 산자 영자.’
낑낑 매던 양반 하나가 목청을 돋군다.
‘울룩줄룩 작대산 하니 황천 풍산에 동선령이라’
아무런 뜻도 없는 지명의 나열이다.
‘거 형님 잘 지었소.’
밸이 꼴린 말뚝이가 나섰다.
‘샌님, 저도 한수 지을 테니 운자를 하나 불러 주시오.’
‘재구삼년에 능풍월 이라더니 네가 양반의 집에서 몇해를 있더니 기특한 말을 다하는 구나. 우리는 두자씩 불러 지었다만 너는 단자로 불러 줄 터이니 지어 보아라, 운자는 강자다.’
‘썩정 비자 구녕엔 개대강이요, 헌바지 구녕엔 좃대강이라.’

미국인 들도 정확한 뜻은 모르면서 한인들 보다 더 크게 박수와 환호를 올렸다. 빌리는 가슴이 뭉클해 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말뚝이가 자신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양반이란 놈들이 가식과 허세에 가득차 있는 이땅의 백인들 이라면 말뚝이는 소수민족 이민자의 상징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다음 양주별산대 취발이 과장은 더 걸작이었다.
취발이는 양반과 싸워 여자 하나를 차지 한다.그여자가 소무였다. 일생을 두고 이렇게 기쁜 날이 없었다. 오늘날 까지 마누라란 문구를 써본적이 없는지라, 불시에 나오는 말이 할머니 아니면 어머니 였으니 이렇게 망신스러운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취발이는 신이 났다.
‘내 여지껏 살았어도 여자 내정 구경은 못했다. 어디 구경을 해보자.’
취발이가 소무의 치마 자락을 들쳐 고개를 들이 민다.
‘그속이 넓어서 대단히 좋구나, 우글 우글 우글.’
치마속이 울렁울렁거린다.
‘이년이 어찌나 뒷물을 아니 하였는지,오뉴월 삼복지경에 조기젓 썩는 냄새가 나는 구나, 이것보게 여기 대단 하구나! 터럭은 왜이리 기냐? 해금줄도 하겠구나, 아 이것 보게 무엇을 씹는지 짝짝 줄쌈지 소리가 나는 구나.’
취발이는 치마속에서 무언가 뽑아들고는 악사를 쳐다본다.
‘깡끼쟁이 이것 가져 가시요, 이 말총으로 깡끼줄 만들어 보시요.’
‘이때 까지 살아도 자식새끼 하나 없으니 자식하나 만들어 보자.’
취발이와 소무가 춤을 춘다.
‘동네 신개 홀래 하오.’
춤이 계속되고, 조명이 바뀐다.
취발이의 걸찍한 입심은 속을 후련하게 하는 페이소스를 담고 있었다. 위선과 허세에 가득차 있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하나의 절규 였고 당찬 시위 였다.
‘해산모야 해산모야, 어서와서 배를 문질러 주고 머리도 만져 주어라, 빨리 순산을 시켜다오.’
해산모 뛰어 나와 춤을 춘다.
‘무엇을 낳았어? 아들인가 딸인가, 어서 말을 해.’
‘옳지 그렇지 아들을 낳았구나, 애그 이놈아 너 아니면 절손을 할 뻔 하였다.’
‘은자동아 금자 동아
만첩청산 옥폭동아
금을 준들 너를 사리
은을 준들 너를 사리.’
조명이 현란하게 바뀐다.
마당이가 꺼이꺼이 울고 있다.
‘이놈아 왜 우느냐? 배고파 우느냐? 어미가 젖을 안 먹여 주니 난들 어쩌 겠냐?’
‘춘삼월 보리고개에 먹은게 있어야 젖인들 탱탱하지, 동짓달 팟죽 구경 하고 곡기란 끝었으니 언제 입신양명 한단 말이냐?’
“에이 썩어질 세상, 냉수 먹고 춤이나 추자. 덩덩 덩더쿵.’
삼현의 가락이 높아지고 취발이 마당이 소무 함께 춤을 춘다.
‘쳐라, 이년아, 어서 자라춤을 추어라. 이춤이 끝나면 쌀 비 내릴란다.’
탈춤 놀이는 샌님 과장, 포도부장 과장을 거쳐 신할아비, 미얄할미 과장으로 이어져 막이 내렸다.
빌리의 망막에는 아버지 승혜 카니 왕노인 그리고 존 젠마노의 얼굴이 차례로 떠 올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영일만의 파도, 덕수궁의 근정전, 비원의 잔디밭이 떠올랐다 사라져 갔다.

놀이가 끝나고 광대들과 관객들은 공연장 지하에 마련된 다과장에서 뒷풀이 만남을 가졌다. 미국인 들은 광대들이 뒤로 제껴 쓴 탈들을 만져 보기도 하고 더러는 자신이 써보면서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표시 했다.
빌리등은 김화백의 소개로 서울서 온 광대들과 인사를 나눴다. 모두들 대학 탈춤반 출신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공연 아주 잘 봤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윤호가 풍각패의 상쇠인 이학수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최 선생님 같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협조 해 주신 덕분이지요, 먼저 찾아 뵙고 인사 들였어야 하는데…”
“별 말씀을 저희가 한게 뭐 있다고…”
빌리네 회사에서 이들 탈춤 패의 왕복 비행기표 일부를 협찬 했었다. 김화백의 주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 대외적인 일에는 윤호가 대표로 나섰다.
“문제는 대사 전달에 있지요, 사실은 한국 사람들도 익숙하지 않으면 대사가 잘 들리지 않고 이해 되지 않지요, 워낙 상소리에 음담 패설이 섞여 있으니…”
말뚝이가 상미에게 들려주고 잇는 말이었다.
“대사를 조금 더 현대화 하면 안되겠습니까?”
“그런 논의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탈춤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생각 할때 너무 또 시대에 영합 하다 보면 그 본래의 의미를 훼손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심 하고 있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잘만 다듬으면 세계 무대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데, 그동안 우리에게는 일종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 있었죠.”
“양극화 현상이라뇨?”
“한때는 우리 것을 천히 여겨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면 또 근래에 들어서는 너무 우리것 만 찾아 우리 것만이 제일이다,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찾는 놈은 매국노다 이런 현상들 말이죠.”
“알만 합니다.”
빌리는 주변에 서서 이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탈춤이 진행 되는 동안 격렬하게 자신을 진동했던 뭉클한 감동들이 진한 카타르시스로 마무리 되지 못했다는 무언가 미진한 느낌을 가져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막힌듯 했던 속이 탁 뚫린 느낌만큼은 계속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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