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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28회

안동일 작

 

 / 페워웨이 저편, 컨트리 클럽 오두막이란 말은 헤리가 화려한 아마 경력 없는 캐디 출신이라는 은유였다. 가난과 무지 속에 골프만으로 생존해 온 잡초라는 야유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프로에 입문 했을때 헤리가 어느 컨트리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가난한 캐디는 아니었다. 뉴욕서도 손꼽히는 큰 세탁소를 하고 있는 해리네 집이 결코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은 아니었다. 그리고 헤리가 대학 클럽 소속이 아니었던 것도 그가 다녔던 대학에 골프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거행된 3라운드 경기서도 헤리는 침착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고 있었다. 선두를 달리고 있었기에 맨마지막 조에 편성돼 티오프 시간이 오후 였고 이날은 빌리와 윤호도 처음부터 헤리를 따라 다녔다.
헤리는 12언더로 2위를 달리는 선수들을 5타 차의 여유로 따돌리고 있었다.
헤리는 자신의 게임을 해내고 있었으나 문제는 6언더로 공동 3위 였던 조지 니콜슨에 있었다. 조지 니콜슨은 제2의 잭 니클러스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미프로 골프계의 유망주 였고, 최근들어 발군의 기량을 보이고 있는 20대 후반의 백인 선수 였다.
헤리보다 3섬쯤 먼저 티오프한 니콜슨이 무서운 기세로 헤리를 추격하고 있었다. 특히 그날 그의 퍼팅은 신들린 듯 했다. 전반 9홀을 끝날때 까지 그는 11퍼팅을 마크 하면서 무려 5개의 버디를 잡아 냈다. 4번홀에서 보기를 범했기에 그의 스코어는 9언더 였다.
갤러리들은 열렬하게 그를 응원 하고 있었다. 그가 가는 곳 마다에 환호가 올랐고 갤러리들은 ‘조지 조지,를 연발 했다.
헤리는 전반을 끝낼 때까지 스코어를 줄이지 못하고 있었다. 더블이글을 기록했던 4번 홀에서 또 버디를 잡기는 했지만 다음홀에서 티샷이 벙커에 빠지고 세컨셧이 그린에 미치지 못해 아깝게 보기를 범했기 때문이었다.
경기는 니콜슨과 헤리의 각축으로 흥미를 더해가고 있었다.
헤리가 백나인 첫번째 홀인 10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섰을때 바로 옆의 12번 홀 그린에서 엄청난 함성이 울렸다. 니콜슨이 또 롱퍼팅을 성공 시켜 버디를 잡아낸 것이었다. 이제 헤리와의 차이는 두타로 좁혀져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5언더 주변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빌리는 티잉 그라운드에 서서 함성이 울린 저쪽 그린을 바라보는 헤리의 얼굴에 동요의 빛이 어린다고 느꼈다.
‘헤리 제발 녀석의 스코어에는 신경을 쓰지마, 네 게임만 해 제발..’
빌리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계속 혼자 중얼 거렸다.
헤리의 티샷이 잘 날라 가더니만 끝에서 휘었고 바운드가 나빠 깊은 러프에 빠지고 말았다. 헤리의 표정이 더 굳어 졌다.
“헤리 저쪽에 신경 쓰지마, 넌 잘하고 있어.”
옆을 지날때 빌리가 한마디 안할 수 없었다.
헤리는 싱끗 웃기는 했지만 어제의 그 여유 와는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러프에서 쳐낸 샷이 또 좋지 못했다. 그린 측면을 때리고 벙커로 굴러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헤리의 샷이 벙커에 빠지자 갤러리들이 박수를 쳤다.
사람 인심 조석변이 라더니 꼭 그랬다. 어제 까지만 해도 헤리에게 환호를 보내던 관중들이 자신들의 동족이며 영웅인 니콜슨이 따라 올라 오자 한결같이 그의 편으로 돌아 선 것이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유에스 오픈이며 마스터즈등 큰 대회는 초반에 선두에 나선 선수가 꼭 후반에 무너지는 징크스가 있었다. 헤리 만큼은 그 징크스에서 벗어 나기를 바랬는데…
벙커위에 서서 헤리는 잠시 눈을 감는 듯 했다. 지난 캣츠킬 산에서의 명상 훈련을 상기 하는 모양 이었다. 헤리는 그곳에서 법상스님으로 부터 참선 지도를 받았다고 했다. 엊 저녁 그때의 얘기를 간간히 들려 주면서 참선 훈련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잠시 그러고 있던 헤리가 모래로 내려가 발을 깊이 담갔다. 핀과의 거리는 40야드쯤. 공과 핀을 번갈아 쳐다보는 헤리의 눈에 섬광이 번쩍 였다. 헤리의 오른 손등이 하늘로 열리고 모래가 부서졌다. 꽃에 앉아 있던 나비가 뛰어 오르듯 사뿐히 그린으로 오른 하얀 공이 홀을 향해 구르기 시작했다. 빌리는 숨을 삼켜야 했다. 저도 모르게 눈이 질끈 감겨 졌다.
와 하는 함성이 올랐다. 빌리는 눈을 떴다. 그린위에 있어야 할 공이 보이지 않았다. 홀컵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옆에 있던 유진을 얼싸 안고 펄쩍 뛰었다.
10번 홀 위기에서의 버디 이후 헤리는 평정을 되찾아 차분한 경기를 운영해 갔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는 법, 니콜슨을 따라 다니는 갤러리들 에게서는 계속 안타 까운 탄성이 올랐다. 그 잘 들어 가던 롱 퍼팅이 조금씩 짧거나 길거나 해서 버디를 놓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헤리가 17번 홀에 섰을때 니콜슨은 18번 그린에 있었다. 헤리는 13언더, 니콜슨은 10언더 였다. 3위 그룹은 4언더로 한참 뒤쳐진 채 경기를 끝냈거나 페어웨이에 있었다.
17번 홀은 도그렉 레프트 385야드의 파 4 였다. 티샷만 페이드로 잘 쳐내면 크게 어려울게 없는 홀이었다. 그러나 드로우볼이 주무기인 헤리에게는 까다롭게 여겨 지는 홀이었다.
페어웨이의 먼저 조가 세컨셧들을 하고 물러 간뒤 헤리가 티 그라운드에 올랐다. 그는 스푼을 들고 있었다. 빌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빨래줄 처럼 헤리의 티샷이 날았고 갤러리들의 눈은 공을 쫒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약간 휘는가 했지만 페어 웨이 안착은 틀림 없었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공이 오른쪽으로 큰 바운드를 했다. 무언가 딱딱한 곳을 때린 모양이었다. 공은 오른쪽 러프 지역으로 굴러 들어 가서야 멎었다.
그쪽으로 급히 내려간 빌리는 안타까운 탄성을 질러야 했다. 나무둥치 사이에 시야가 가려지는 곳에 끼어 버린 것이었다. 한타를 잃어야 했다.
그러나 공을 쳐다 보는 헤리의 눈은 덤덤했다. 잔가지들을 조심스럽게 치우더니 뒷쪽에 서서 그린을 쳐다 보는 것이었다.
모험을 해볼 모양 이었다. 빌리의 가슴이 뛰기 시작 했다. 이리 재고 저리 재던 헤리가 클럽을 바꿨다. 처음에 잡았던 클럽보다 긴 클럽이었다. 그린 까지의 거리는 170야드 쯤 됐다. 그거리를 5번 아이언으로 잡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휘둥그래 졌다. 헤리가 요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둥치 끝을 향해 셋업을 한뒤 클럽 페이스를 열고 짧고 확고하게 쓸어 내듯 공을 가격 했다. 공은 요술에라도 걸린듯 둥치사이를 타원으로 빠져 나와 페어 웨이 끝으로 날더니 강한 드로우가 걸리면서 그린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공은 그린앞 30야드쯤에 떨어졌으나 계속 굴렀다. 그것도 벙커를 피해 구르고 있었다. 그린 앞에 입을 벌리고 있는 두개의 벙커 사이를 교묘히 빠져 굴러 가는 것이었다. 마치 자석에라도 끌린듯, 공은 핀 앞 5 피트 쯤에서 멎었다. 아무리 니콜슨을 응원하는 갤러리 들이라도 탄성과 환호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멋진 넉 다운 드로우 샷이었다.
침착한 자세로 헤리는 5피트 퍼팅을 성공 시켰다. 14언더. 니콜 슨 과는 4타 차이로 벌어졌다.
18번 홀에서도 헤리는 개울을 건너 벙커를 넘겨야 하는 세컨셧 에서 대담하게 핀하이로 공략, 멋진 백스핀으로 갤러리들을 즐겁게 하면서 파로 경기를 끝냈다.
6시간 가까이 걸린 라운드를 돌고 나니 헤리 보다 빌리와 유진 그리고 상미가 더 지쳐 있었다.
TV 중계 요원 들이 헤리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헤리는 평소 과묵한 자신의 성품 대로 차분하게 그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내일 경기를 어떻게 예상 하는가? 어제 오늘과 같은 좋은 컨디션을 유지 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오늘 17번 홀에서 의외의 묘기샷을 보여줬는데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평소 연습을 해본 샷인가?”
헤리의 인상이 찌푸려 졌다. 엄청난 실례의 질문이었다. 프로가 어떻게 그런샷을 행운에 의존 한단 말인가.
“마음대로 생각하라.”
헤리가 무뚝뚝하게 내뱉았다.
헤리와 인터뷰를 마친 백인 진행자의 다음말이 헤리는 물론 옆에서 이를 지켜 보던 빌리등을 더욱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이었다.자기깐에는 멋을 부린다고 한 크로징 멘트 였지만 지독한 편견과 야유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운의 여신의 미소에 몸을 던진 무명의 골퍼 헤리 오, 그의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 2천만 미국 골프 팬들은 궁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페어웨이 저편에서 나타난 헤리의 돌풍이 허리케인처럼 마이아미 비치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유에스 오픈 3라운드는 끝났습니다. 내일 마지막 라운드서 골프의 황태자 조지 니콜슨과 컨트리 클럽 저편 오두막에서 걸어온 헤리 오의 격돌이 기대 됩니다. 지금까지 마이아미 하버 스트로에서 전해 드렸습니다.”
그는 헤리의 선전이 순전히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헤리가 페워웨이 저편, 컨트리 클럽 오두막에서 나타났다는 말을 두번씩이나 강조 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편견에서 나온 말이었다. 페워웨이 저편, 컨트리 클럽 오두막이란 말은 헤리가 화려한 아마 경력 없는 캐디 출신이라는 은유였다. 가난과 무지 속에 골프만으로 생존해 온 잡초라는 야유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프로에 입문 했을때 헤리가 어느 컨트리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가난한 캐디는 아니었다. 뉴욕서도 손꼽히는 큰 세탁소를 하고 있는 해리네 집이 결코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은 아니었다. 그리고 헤리가 대학 클럽 소속이 아니었던 것도 그가 다녔던 대학에 골프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U.S 오픈 만큼은 미국 백인들이 독점하고 싶다는 저들의 차별의식과 오만은 기분나쁜 일이었지만 헤리의 오늘 선전으로 빌리며 친구들은 너무도 들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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