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 스테파니, 상미의 얘기를 빌면 파 5인 4번 홀에서 헤리의 드라이버가 너무도 멋지게 날아 티에서 2백 70야드 되는 지점에 떨어 졌다고 했다. 남은 거리가 2백 5야드 였기에 상미는 걱정이 됐다는 것이다. 그 거리가 헤리로서 스푼을 잡기에는 좀 짧았고 그렇다고 롱아이언을 잡기에는 좀 무리인 거리였기 때문이다. 헤리는 버피나 클리커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조마조마하게 페어웨이를 지켜 보는데 헤리가 스푼을 잡더라는 것이었다. 상미는 웬일인가 싶었단다. 헤리가 몇번 스푼을 흔들어 보더니 침착하게 공 앞에 섰고 그 다음엔 정말 나비같이 사뿐한 폼으로 가볍게 클럽을 흔들었는데 공이 평소보다는 높이 떠 그린을 향해 날아갔고 잠시후 우뢰와 같은 함성이 그린에서 울려 퍼졌다./
헤리가 프로골퍼가 된 이후 워낙 전국을 싸 돌아 다녀야 했기에 이들 친구들은 자주 볼 기회는 없었고 가끔씩 전화 연락이나 해야 했지만 빌리며 유진의 마음속엔 늘 헤리의 행운과 선전을 비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었다.
헤리가 미 프로에 입문했을 때 떠들석하게 관심을 보냈던 한국의 언론이며 동포사회의 언론들도 중하위권에서 맴도는 그의 성적때문에 관심이 시들해 졌고 어느틈엔가는 그에 대한 언급도 별로 없게 된 것이 친구들에게도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랬던 헤리가 마이아미 하바스트로 도랄 컨트리 클럽서 열린 US 오픈 대회에서 첫날 부터 돌풍을 몰고 왔던 것이다. 대회는 목요일 부터 치러 졌고 화요일에 마이아미에 왔던 빌리와 유진은 오랫만에 헤리와 대회 개막 전에 만났다.
헤리의 얼굴은 검게 그을어 있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어떤 서광이 비치고 있었고 굳게 다문 그의 입술은 결의에 가득차 있었다. 헤리는 지난 두달 동안 대회에 출전 하지 않고 뉴욕 캣츠킬 마운틴의 산사에서 정신 수양 훈련을 하고 왔다고 했다.
대회가 시작된 날 빌리와 유진은 통관 문제 때문에 헤리의 티타임인 오전에 대회장에 갈 수 없었다.
“잘해, 너무 욕심내지 말고, 네 게임만해, 괞히 남의 스코어 신경쓰지 말고, 미안하다 공자앞에서 문자 써서.”
아침에 호텔을 나서면서 빌리와 윤호가 헤리의 등을 두들기며 한 말이었다.
빌리는 헤리의 캐디인 흑인 토미를 조용히 불러 헤리가 어떤 클럽을 잡을까 망설일때는 꼭 긴클럽을 권유하라고 일러주고 나왔다. 녀석은 어릴때부터 자신의 비거리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작은 클럽을 택해 샷에 힘이 들어가는 버릇이 있었고 꼭 그것 때문에 경기를 망치곤 했었다.
통관사 사무실이며 항구를 돌아 다녀야 하면서도 온통 신경이 골프장에 가 있었다. 텔리비젼은 생중계를 했는데도 망할 놈의 라디오는 뉴스 시간에 조차도 대회가 개막 됐다는 소식만 반복해서 전할 뿐, 오전 출전자들의 스코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하긴 텔레비젼도 헤리는 생전 비춰 주지 않았다. 다른 유명선수의 모습만 비춰 줬을뿐…
그래도 통관사 사무실을 나설 11시 무렵 까지 헤리는 잘 나가고 있었다. 그때 7홀을 끝내고 있었는데 2언더 였다. 버디를 두개나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빌리와 유진의 노심 초사 만큼 헤리도 노심초사 했을 터였다. 첫날 헤리는 4언더의 좋은 성적으로 라운드를 마쳤다. 하버스트로가 악마가 천국의 문턱에 만든 지옥의 코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워낙 까다로운 코스여서 상위 20위 안에 드는 성적이었다.
헤리의 날은 둘째 날이었다. 그날도 물건이 나오는 날이어서 빌리와 유진은 트럭 회사와 오전 부터 씨름을 해야 했는데 엄청난 소식을 트럭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통해 들었다.
오후 1시 뉴스 첫머리에 US 오픈 사상 두번째로 더블 이글이 나왔다는 얘기를 아나운서가 전할 때만 해도 어떤 녀석이 그런 행운을 잡았나 했다.그랬더니 곧이어 헤리 오라는 동양 선수가 그 주인공 이라는 것 아닌가. 빌리는 옆의 트럭운전사에게 차를 세우라도 했고 차에서 뛰어 내렸다. 뒤따르던 트럭 에서 유진이 뛰어 내렸다.
“야 너 들었니?”
“응, 들었어 혜성이 녀석이 알바트로스 잡았다고 하잖아.”
둘은 얼싸안고 뒹굴었다.
급하게 물건을 내려 놓고 하바스트로우로 달려 갔을때, 헤리는 14번홀을 돌고 있었다. 그의 스코어는 11언더 였다. 오늘 라운드에서만 7언더를 기록 하고 있었고 남은 4홀 가운데 버디 하나만 잡아내면 코스 레코드를 세우게 되는 것이었다. 아직 초반 라운드에 있기는 했지만 2위를 마크하고 있는 선수들과는 무려 5타 정도로 앞서 있었다.
헤리의 여자 친구인 상미가 겔러리 가운데 얼굴이 붉게 상기된 흥분된 모습으로 빌리등을 맞았다. 상미는 의상 디자이너 였다.
세사람은 남들이 이상하게 보건 말건 손을 마주 잡고 겅중겅중 뛰었다.
페어웨이의 헤리는 아주 침착한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어 든든했다.
스테파니, 상미의 얘기를 빌면 파 5인 4번 홀에서 헤리의 드라이버가 너무도 멋지게 날아 티에서 2백 70야드 되는 지점에 떨어 졌다고 했다. 남은 거리가 2백 5야드 였기에 상미는 걱정이 됐다는 것이다. 그 거리가 헤리로서 스푼을 잡기에는 좀 짧았고 그렇다고 롱아이언을 잡기에는 좀 무리인 거리였기 때문이다. 헤리는 버피나 클리커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조마조마하게 페어웨이를 지켜 보는데 헤리가 스푼을 잡더라는 것이었다. 상미는 웬일인가 싶었단다. 헤리가 몇번 스푼을 흔들어 보더니 침착하게 공 앞에 섰고 그 다음엔 정말 나비같이 사뿐한 폼으로 가볍게 클럽을 흔들었는데 공이 평소보다는 높이 떠 그린을 향해 날아갔고 잠시후 우뢰와 같은 함성이 그린에서 울려 퍼졌다. 상미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됐었다는 것이었다. 그 공이 핀 정면 20피트 쯤 되는 그린 전면을 때리더니 스핀으로 바운드가 죽더니 사뿐이 굴러 그대로 홀컵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 광경은 빌리와 윤호도 클럽 하우스에 뛰어 들어 왔을때 재방영 해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 4 인 14번 홀을 침착하게 파로 끝낸 헤리는 15번 홀로 옮겨 가고 있었다. 파 3인 15번홀 티잉 그라운드 주변에는 겔러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빌리등은 헤리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아일랜드 그린인 이홀에는 홀인원 부상으로 걸려있는 캐딜락 신형차가 호수가에 근사하게 세워져 있었다.
헤리는 다른 프로 두명을 한조로 해서 함께 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12번홀의 버디로 계속 오너를 지키고 있었다. 헤리가 티잉 그라운드 아래쪽서 연습스윙을 한번 할때 캐디 토미가 아래쪽에서 손을 흔드는 유진을 발견 했고 이어 헤리가 이쪽을 쳐다 봤다. 헤리의 얼굴에 싱끗 미소가 흘렀고 이쪽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헤리가 티 그라운드에 서자 겔러리들이 환호를 질렀다. 더블이글의 주인공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205야드 파 3. 다운힐 아일랜드 그린. 결코 만만한 홀이 아니었다.
빌리는 제발 헤리가 3번 아이언을 잡아 주기를 빌었다. 욕심을 내서 4번을 잡으면 힘이 들어가기 마련 이다. 그래도 소리를 칠 수는 없었다. 중계를 위해서 티박스 가까이에 올라 있는 여자 리포터가 손가락 세개를 펴보이는 것을 보고 빌리는 안심을 했다.
조용히 하라는 경기 마샬의 두팔이 올라갔다.
꽤 먼 거리였지만 공을 노려보는 헤리의 눈에 불꽃이 일고 있다고 빌리가 여기는 순간, 헤리의 어깨가 천천히 그리고 힘차게 돌았고 허리가 용수철 처럼 반동을 시작 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백구가 하늘로 솓았다. 그리고 딱 소리가 났다. 숨을 죽이며 공의 궤적을 따라 수천의 눈길이 쏠렸다. 멋진 포물선을 그으며 검푸른 인공호수 물위를 지나 날아가던 공은 핀을 조금 넘긴 지점, 그린에 꽂히는 듯 했다. 그랬는데 공이 잠시 요동을 하는듯 하더니 아래로 구르기 시작 했다. 바로 홀컵을 향해 구르는 것 이었다. 다운힐 이었기에 위쪽의 사람들도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저절로 탄성이 나오기 시작 했고 탄성은 함성으로 변해 갔다. 빌리는 오늘이 드디어 헤리의 날이구나 싶었다. 틀림없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옆의 상미가 빌리의 손을 꽉 쥐었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런데 공이 홀컵으로 굴러 가던 공이 핀을 때리고 홀컵을 한바퀴 돌아 바로 앞에 멈추는 것이 아닌가. 1밀리도 안되는 것 같았다. 탄성과 함성이 어우러 졌다.안타까운 숨을 몰아 쉬며 빌리와 윤호는 서로의 어깨를 흔들었다. 캐딜락은 일밀리 미터의 차이로 날아 갔지만 어쨌든 버디는 잡은 것이었고 코스 레코드는 수립 된 셈이었다.
헤리는 그린으로 향하면서 빌리등의 옆을 지나쳤고 씽긋 웃었다.
“헤리 화이팅, 최고다 최고.”
빌리와 유진이 갤러리 줄 밖에서 그를 따르며 작게 소리쳤다.
나머지 세홀 에서 헤리는 한차례의 거의 확실한 버디 찬스를 잡았는데 그만 짧은 퍼팅하나가 이번에도 홀컵을 돌고 나오는 바람에 파로 만족 해야 했다.
18번홀 마의 파 4 홀을 깔끔하게 파로 마치고 겔러리들의 환호속에 대회 본부로 향하는 헤리를 친구들은 너무도 자랑스럽게 둘러쌌고 그들의 그런 모습은 중계시간 뿐 아니라 뉴스시간 마다에도 첫머리로 등장해 미전역이며 전세계에 비쳐 졌다.
유에스 오픈에서 더블이글, 알바트로스가 나온 것은 84년 대회에서 대만의 티씨 첸 선수가 기록한 이래 15년 만의 일로 사상 두번째 였다. 그때 더블이글을 기록한 첸 선수가 마지막 날 어이없이 무너져 2위로 떨어 져야 했을때 헤리 등은 너무도 안타까와 했었다. 그가 무너진 데는 너무도 교묘한 백인들의 심술과 방해가 작용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