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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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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19회

안 동일 지음

널바위 언덕의 위기

“그렇게 도리와 예법을 아는 여인이 그런 행색으로 그런 불량한 사당패와 어울린단 말이오? 더구나 한때는 정경부인의 대우도 받던 사람이…”생각보다 예의를 갖춘 말투였다. 금원에 대해 많은 것은 알고 있기도 했다.
“무슨 말씀 하는지 모르겠지만 엄연히 국법이 있는데 이렇게 사사로이 인신을 납치하고 겁박하는 것이야 말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 아닙니까?”
금원이 따지듯 대꾸했다.
“이곳이 어딘 줄 아시오?”
“공맹의 도리를 배우는 유명 서원의 한곳으로 알고 있소만…”
“역시 당신은 영리한 사람이오. 그런데 서원이 강상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계도하고 발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오?”
“그래도 이런 폭력적인 방법까지 용인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진짜 폭력이 어떤 것인지 알고 하는 소리요?” 금원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당신 어떻게 해서 부용사 불량한 중들과 어울리게 됐는지 말 좀해 보시오.”
“왜 내가 그걸 그 쪽에 말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불량한 중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마음에 들지 않아 대답이 그렇게 나왔다.

“허허 좋소. 그럼 함께 다니던 놀이패는 어디 패들이오. 엊그제 사단도 그렇고.”
“나를 이렇게 꼭 집어 끌고 온 것도 그렇고, 다 알고 계실 텐데 왜 힘을 또 쏟으려 하십니까?”
“허허 그렇긴 하군. 양주 부용사 연희패들 아니오? 부용사.”
금원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연유였는지는 몰라도 전국 각지의 연희패 사당패들이 대부분 사찰을 근거로 하고 있어서 무슨 사의 연희패 이렇게 부르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양주 별산대 패의 경우 남사당패도 아니고 민간 풍물패였고 굳이 소속으로 말하면 양수리 상두계 쪽 이었다.
그러니 총관이란 사내가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지 가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을 끌일 필요가 없었다.
금원이 대꾸를 않자 총관이 먼저 정리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일도 아닌 일 가지고 시간 끌 필요 없이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본론이라니 이 사내가 원하는 얘기는 따로 있다는 얘기다.

“당신이 그러고 다니는 것이 세상 떠난 부군의 집안에 얼마나 큰 체면손상을 가져오는지 알기나 하는거요?”
다소 안심이 됐다. 시아주버니 김도희 대감이나 남편의 맏아들인 상호 등이 개입된 경고와 겁박 수준의 일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쪽 집안은 내 행처며 행색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저들이 나를 어떻게 내쳤는지 알기나 하시오?” 그일 이라면 금원도 할 말이 많았다.
“앞으로는 좀 자중 하시오. 특히 능상과 음담패설을 자제하도록 하시오.”
“무슨 말씀인지…”
“ 당신이 탈놀이패들에게 해괴한 노래를 가르치고 있는 것 아니요.”.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별산대 놀이 가사는 몇몇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전승돼오는 것이오.”
“그건 내 잘 모르겠고 아무튼 어울리지 마시오.”
사내도 대강의 사정을 아는지 꼬리를 슬며시 내렸다.
“실은 우리로서는 더 신경 쓰는 것이 부용사 임만성이 하고 려말의 요승 신돈과의 관계요 신돈.”
“임만성 이라니요? 누굴 말하는지…“

정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법명을 태을 이라고 부른다지? 노비 만성이를.”
깜짝 놀랄 이야기였다. 은사 태을스님이 노비라니….
“풍석 서유구라고 들어 보았소?”
“이름은 들어 보았소. 몇 년 전에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풍석의 이름은 추사로부터 들은 바 있었다. “임만성이 바로 풍석의 가노이자 먹동이었소.”
금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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