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6 F
New York
September 20, 2024
hinykorea
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11회          안동일 작

센트럴 파크 에서의 고백 이후 윌리는 승혜를 리드해 나가기 시작했다. 복장이며 헤어스타일도 승혜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선에서 비평을 했고 만나는 데이트 장소를 가끔쯤은 고급 레스토랑으로 옮기기도 했다. 주머니를 털어 고급 브랜드의 옷도 선사했다. 물론 학생이 청바지에 티셔츠면 됐지만 파티드레스도 입을 줄 알아야 한다는게 당시 윌리의 생각이었다.
둘만이 있을때는 될 수 있으면 영어로 이야기 했다. 그것도 가장 고상한 표현과 고상한 단어를 사용했고 승혜의 어법이 틀렸을때 반복해서 이를 고쳐 줬고 적절치 못한 단어를 사용했을때도 즉각 고쳐줬다.
처음에 승혜는 계면쩍어 하면서 부끄러워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 했고 그런 변화를 윌리는 기쁜 마음으로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공략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리 윌리가 애원하고 협박을 해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승혜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워낙 윌리가 완강하게 나오자, 여자 친구 문제며 결혼 문제는 변호사가 된 다음에 다퉈도 다툴 수 있을테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모든 것을 공부에 갔다 붙혔다.
로우스쿨에 진학하는 일은 그당시 윌리에게 있어서도 승혜문제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아침 레이놀드를 엘리베이터 에서 만나다니 영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굿모낭 젠틀맨”
엘리베이터에 마지막으로 올라타면서 호탕하게 인사를 던지는 장년의 신사가 시니어 파트너인 레이놀드 모오건소 였다.
“굿모닝 써”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변호사들이 합창 하듯 소리를 지르며 레이놀드에게 생글생글 웃음을 보냈다.
한사람 한사람씩을 위아래로 훑던 그의 시선이 빌리에게서 멎었다.
“윌리 뉴욕에 그렇게 이발소가 없나?”
이발소에 갈 틈도 없게 일주일 내내 뺑뺑 돌리면서 빌리의 머리가 부스스한것을 트집 잡는 것이었다. 지난 일요일도 오전에는 아버지 집에 다녀와야 했고 오후엔 사무실에 나와야 했었다.
다른 파트너들도 그랬지만 이 레이놀드는 변호사들의 용모에 유달리 신경을 썼다.
애들도 아니고 어엿한 성년 변호사들의 두발이며 넥타이 그리고 구두까지 시시콜콜 신경쓰고 따지는 그의 좀스러움에 신물이 난다. 하지만 그에게 찍히면 괴로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에 초년 변호사들은 전전긍긍 해야 했다.
스티븐 스티브 엔드 모어건소 법률 회사는 미국내 탑 10에 드는 큰 법률 회사였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었지만 워싱턴과 마이아미에 있는 사무실도 각각 헤드 쿼터라 불렀다.
몇번의 위기는 있었지만 변호사가 된다는 것이 윌리에게 있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겠다는 것은 어려서 부터 확고하게 정해 놓은 일이기 때문에 흔들릴 이유가 없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법과 대학원을 선택해야 했을때 윌리에게도 잠깐의 망설임이 있기는 했다.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고 한국 사람들이 우러르는 하버드로 진학 할까 생각도 했지만 학부시절 그 싸움을 문제 삼아 입학허가를 취소했던 그 편협한 소행이 괘씸해 윌리는 예일 대학을 택했다.
법과 대학원 입학 전형 시험인 LSAT 성적으로는 하바드에 원서를 냈어도 충분 했지만 윌리는 코네티컷의 분위기가 좋아 예일 대학을 택했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도 그러라고 했다.
어쩌면 변호사는 윌리 보다 오히려 아버지의 초지 일관한 꿈이기도 했다. 자신이 공학도 였기에 미국사회 에서 더 크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윌리에게 어려서 부터 법과 대학원에 진학 해야 한다고 되뇌이곤 했었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 있어 변호사 자격은 일단 출세의 필수 조건이었다. 변호사의 나라 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국은 변호사 들이 각 부문을 움직이고 있는 사회였다.
워낙 변호사가 많기도 했지만 미국 연방 의회 의원들의 3분의 2가 변호사 출신이었고 역대 대통령의 반수 이상이 변호사 출신이었다. 사법부야 물론이고 행정부인 정부기관의 고위직 역시 변호사 자격을 지닌 법과대학원 출신들이 장악 하고 있었다.
남들은 피를 말린다는 법과 대학원의 공부가 윌리에게는 크게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적당히 따라 가기만 했는데도 그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3년 코스를 마치고 변호사 시험 준비를 위한 특수 학원에서 두달 쯤 준비한 끝에 첫번 도전에서 세과목 모두 패스 할 수 있었다. 이미 S.S & M에 취직하고 있던 때 였다. 그러나 윌리는 예일대 대학원에서 배운 것 보다 특수 학원인 베블리 스쿨에서 배운 법률 지식이 더 많다고 생각 할 정도로 학교에는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승혜의 일이 한동안 그를 학교에 전념하지 못하게 했던 큰 요인이었다.
승혜 아버지의 그런 소식을 들은 것은 대학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 사람좋던 승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사인은 음주운전에 의한 교통사고 였다지만 윌리에게나 가족 들에게는 자살로 여겨지는 일이었다.
당시 승혜아버지 한씨는 인생 최악의 나락에 빠져 세상을 저주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 하고 있었던 때였다. 엄청난 사기극에 휘말려 그처럼 알토란처럼 키웠던 재산을 하루 아침에 날리고 오히려 빗더미에 앉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경기가 계속 됐다지만 승혜네 가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플러싱의 가게는 계속 번창 했고 승혜 아버지는 자신을 얻어 더 큰 가게를 구입 하겠다고 나섰다. 따지고 보면 윌리와도 무관한 일이 아니었다. 승혜의 아버지는 진작 부터 윌리를 사위감으로 점찍고 있었는데 승혜를 윌리네 집에서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다. 그래서 윌리네에 꿀리지 않으려면 더 큰 성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 던 모양이었다. 때문에 큰 무리가 따라야 했던 대형 수퍼마켓 인수에 나섰던 것이다. 플러싱 최대의 수퍼마켓이 매물로 나와 있었다. 싯가보다 싼 가격이었다. 여기서 부터 의심해 들어갔어야 했는데 소개업자의 말대로 그저 불황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여겼을 뿐이었다. 아무리 싯가에 비해 싸다고는 해도 매장 크기만 2만 스퀘어 피트가 넘고 종업원만 해도 1백명 가까이 있어야 하는 백만불 가까운 비지니스였다. 승혜 아버지는 먼저 가게를 처분하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 이 수퍼마켓을 인수 했다.다 치루지 못한 액수는 먼저 주인이 차용해 주는 형식을 빌어 다달이 얼마씩 갚기로 했다. 그런데 인수해서 보니 처음의 말과는 너무 달랐다. 매상이 먼저 업주가 말한 것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상의 개런티 조항은 계약서에 명시 되지 않은 구두의 약속 사항이었기에 이를 법적으로 따지고 가려면 너무도 복잡했다. 셀러 몰게지에서 어떻게 해보겠다고 생각 했지만 유태인 전 주인에게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승혜 아버지가 고용한 변호사가 너무 무른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정도가 아니었다. 간신히 6개월 정도 그야말로 뼈가 바지고 허리가 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가게를 정상궤도에 올려 놓았을 무렵이었다. 승혜네 수퍼마켓 건물이 헐리게 된다는 청천 벽력과 같은 통보가 날아 들어왔던 것이다. 전세권은 건물주가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구입했던 것이기에 설마 그럴리가 싶어 자세히 알아 보았더니 모든 조항이 승혜네가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유태인 부동산 재벌이 시 정부 관리를 구어 삶아 블락 전체를 재개발 하는 일이었다.형식상 수퍼마켓 인수인계 시에는 건물주도 먼저 주인도 이 건물이 헐리게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시 당국의 도시 재계획이 최근에 확정 된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로 몰아 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계약서에는 천재지변이나 당국의 도시 계획 변경 방침 때문에 일어나는 손해는 판매자가 책임 질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승혜네 변호사는 이런조항이야 어디나 들어 있는 일반적인 것이었기에 그냥 넘겼다고 했다. 어디가서 하소연 할 때가 없었다. 시정부 건물주 먼저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했지만 변호사 수임료만 날릴 일이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소송이었다. 지역사회에서도 낡은 건물을 헐고 대형 쇼핑몰과 경관 좋은 콘도를 짓겠다는 업자의 계획을 적극 찬성하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나왔기에 아무도 승혜네 편이 될 곳이 없는 지경이었다.
술렁거리는 가운데 철거 기한이 다가왔고 옆건물을 철거 하는 먼지가 풀풀 날리기 시작 했다.승혜네는 악착 같이 버티면서 문은 열고 있지만 수퍼마켓에는 손님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한술 더떠 먼저 주인은 다달이 받기로 한 차용금을 내야 한다고 나왔다.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채 건물은 헐리기 시작 했고 승혜 아버지는 애가 타다 못해 속이 썩어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이 돼어 갔다.이런 사정을 윌리도 승혜를 통해 듣기는 했지만 법과 대학원생에 불과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전화를 붙잡고 승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는 일 밖에… 그랬는데 어느날 승혜가 전화해 와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전하는 것이었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때문에 이틀 뒤 열린 승혜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 할 수가 없었다. 시험지를 마주 대하고 앉아 있기는 했지만 답안이 써질리 만무였다. 아예 팽게치고 뉴욕으로 차를 몰아 갈까 생각 하기도 했지만 억지로 참기로 했다. 어차피 돌아가신 분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연속극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되뇌면서 윌리는 머리를 쥐어 짰었다.
며칠 뒤 승혜가 학교로 찾아 왔다. 식구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 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서산에 있는 외삼촌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고 엄마도 미국에 덧정 없기에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승혜는 의외로 침착해 있엇다. 윌리로서는 어떻게 만류해 볼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돌아 간다고 해서 아주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자신이 자리잡으면 승헤가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일이엇기 때문이엇다. 승혜는 그날 뉴욕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윌리는 그 말이 무엇을 뜻 하는지 알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센트럴 파크에서의 날카로운 첫 키스 이후 두사람은 가끔 입맞춤을 나누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로 입맞춤에 불과 했다. 빌리는 자신이 청교도적인 금욕 주의자라고 생각 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에게는 아껴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는 건전한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뉴욕가는 막차 시간에 대어 윌리는 승혜를 뉴 헤이븐 버스 정류장 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런데 승혜는 버스에 올라 타면서 엉뚱한 말을 했다.
“잘있어, 갈께, 너무 걱정 하지마, 오빤 잘 해낼꺼야, 안녕.”
승혜는 그렇게 떠나갔다.
한국에 가서 편지 하겠다고 하더니만 연락이 없었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65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 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19회

안동일 기자

<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29)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