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성 (철학박사, 전 뉴욕 포도원교회 목사. 고양시 자치연대 대표)
문재인 정권 5년이 꿈같이 흘렀고 윤석렬 새정권이 들어선지도 벌써 3개월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를 준비하고 참여하느라 동분서주하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이미 정권이 끝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때 필자는 최성후보 켐프의 좌장이었다.
지나간 5년을 돌이켜보면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대통령 공약을 지킨 것도 있고 못 지킨 것도 더러 있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은 훌륭한 업적들도 많지만 아쉬운 것도 없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방역은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만큼 참 잘 했고, 경제 운영도 누가 봐도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소득주도 성장을 주창해서 비록 중간에 많은 저항이 있었지만 소득이 우리 생활과 얼마나 큰 관련이 있는지를 전 국민적으로 생각하게 해 주는 기회를 준 것도 또 하나의 소득이기도 하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조금만 더 강하게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파이를 키워야 나눌 게 생기니 파이를 키우는 게 우선이라 말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나누지 않는 파이가 아무리 큰들 무슨 소용이냐고 반박한다. 나는 파이를 꾸준히 키우면서 동시에 커진 파이를 가급적이면 공평하게 나누는 게 가능하고, 그것이 바로 소득주도 성장의 요체라고 생각하기에 커진 파이를 나누고, 그 나눔을 통해 파이를 키우는 선순환의 역사를 남기기를 바랐었다.
욕심만큼 되지 않아 실망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저임금도 상당히 올렸고, 적어도 양극화가 더 진전되지 않게는 했다고 보기에 성과도 인정하고 싶다.
그러나 가장 실망한 것은 지방자치에 대한 공약이었다.
문재인 후보의 가장 큰 공약들 중의 하나가 바로 미국식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구현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공약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겨우 자치경찰제 하나 만들어 놓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유명무실하다.
미국식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란 일단 지방을 자치 단체 정도로 취급하지 않고, 아무리 작은 단위의 지방자치체라고 하더라도 정부로 인정해 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지방정부도 중앙정부, 즉 연방정부 못지않은 권리를 가지게 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불과 수 천 명의 작은 도시조차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헌법에 해당하는 헌장을 제정할 수 있고, 그 헌장에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가진 권한을 제외한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다. 자기 동네가 시장과 의원 후보의 정당 공천을 허용할지 말지도 결정할 수 있고, 어떤 공무원들을 얼마만큼 둘 지도 다 결정할 수 있다.
정치적 후보를 선출하는데 있어서 프라이머리 방식을 택할 것인지 코커스 방식을 택할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다.
미국식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자치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지만…
나아가 지방정부의 구성도 시장중심제로 할 것인지 의회 중심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중간의 어떤 복합적인 형태로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도 있어서, 어떤 도시는 시장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행정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어떤 도시는 의회 의장이 겸직하기도 하며, 어떤 도시는 시장은 형식적으로 시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만 기능하고, 의회가 행정전문가를 고용해서 시정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도시계획을 어떻게 할 것이며, 건축허가는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지도 100%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헌장과 그 헌장에 기초해서 선출한 의회에서 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시장은 그 결정대로 집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시라도 의회가 있고, 교육위원회가 있다. 정치도 교육도 완전히 지방정부의 몫이다. 연방과 주 정부는 그저 보조해 주고, 관할권이 지방정부를 넘어서는 경우에만 개입한다.
나는 그 공약을 보면서, 미국식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자치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고, 단 하나 이것만은 해 주기를 바라는 게 있었다. 상급 정부의 법률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례로 강제규정을 만들 수 있게 허용해 주는 것이었다.
지금은 조례로 주민에 대한 강제규정을 만들려면 상급 법률에서 명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즉, ‘주차위반 시에는 얼마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라는 법률 규정이 있어야 지자체는 그 범위 내에서 주차위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차위반의 정의도 중앙정부의 법률에서 정의한 범위 안에 들어야만 한다. 만약 중앙정부의 도로교통법에 주차위반 단속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으면 지자체는 과태료를 절대로 부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 지방자치법이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위임사무만 수행할 수 있게 제한해 놓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업무 범위를 법령으로 명백하게 규정하고, 이 범령에 규정된 것 외의 모든 사무는 지방정부의 사무로 일괄위임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위임한 사무만 지자체의 사무이고 나머지는 전부 중앙정부의 사무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과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의 권한이 대폭 약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 문제만 조금 풀어줘도 소원이 없겠다 생각했다. 즉,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법률에서 위임한 사무가 아니더라도 법률을 위반만 하지 않으면 의무사항을 규정할 수 있게 허용해 주기를 바란 것이다. 정 지자체를 믿지 못하겠으면 몇 가지 제한을 걸어서라도 부분적으로나마 허용해 주면 정말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것도 거의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지자체를 지자체라 하지 말고 지방정부라고 인정해주면 좋겠다. 고양시가 무슨 해병전우회와 같은 단체로 인정되고 있으니 이게 뭔가? 지방정부라고 불러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는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라고 부른다.
여튼, 문재인 대통령 임기 5년은 지나갔고,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될 것 같지 않아 속상하다. 박근혜의 뻘짓을 기회로 지방자치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당시에 주요 의제로 떠오를 수 있었는데 이제 언제 다시 지방자치 문제가 정치권의 주요 화두가 될 지 요원하기 때문에 더욱 그 실망감이 크다.
헌법 개정을 통한 대대적인 지방자치 강화까지는 못가더라도 지방자치법의 개정을 통한 확대만이라도 기대한다면 너무 큰 욕심인가? 지방선거까지 참패를 하고 나니 지방자치가 강화되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쉬움으로 떠오른다. 지방 분권을 대통령 공약대로 실천했다면, 지방선거에서 이렇게 무참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군분투하는 대통령 옆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낸 180석의 민주당이 못내 아쉽다. 새정부는 어떰 생각일까? (07-27-22 상성)
*컬럼의 논조는 본보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