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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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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여성생활

<기자 노트북> 진정한 용서와 평화에 대한 유감

안지영 기자 

진정한 용서란 과연 어떤것일까?     갑작스런 복부 수술로 집에 머물며 몸을 추스리는 동안 기자를 간호 하는 틈틈이 한국의 역대 대통령에 대한 글을 구상하고 있다는 남편이 옛 드라마 몰아보기를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고 있었기에  한국 M TV에서 90년대 방영했던 ‘제 5공화국’ 을 어깨너머로 보게됐다.

다시 보니 전두환, 노태우 장세동 등 5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의 싱크로율은 가히 놀라웠다. 특히 이덕화 배우가 가발을 벗어가며 까지 열연한 전두환역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왜 나만 갖고 그래.’
‘아주 ~~ 좋아.’ 와 같이 종종 코미디언들에 의해 성대모사 및 패러디 됐던 그의 ‘말’들을  얼마나 찰지게(?) 구현해냈던지 웃음이 저절로 터졌다. 웃느라 그 즉시 수술 자리가 아파오긴 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인 신분에서 대통령이 되기 까지 그  연대기를 오며가며 보는 가운데 누군가에겐 현재 진행형의 고통이고 누군가에겐 한때의 승리였을 현대사의 줄기를 바꾼 여러 장면들은 내게 각각의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물음표, 지금 까지는 스스로 이의 제기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부분에 들러붙은 물음표가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왜, 무슨 생각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용서했을까.

극 중 전두환이 사면돼 출소하는 장면에서 그가 취재 온 기자들에게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는 부분이 머릿속 종을 울리며 ‘대체 왜…?’ 라는 물음표가 나를 때렸다.

“여러분 감옥 가지 마세요. 여긴 절대 들어갈 곳이 못됩니다 하하하!! “
같은 시각, 취재진들의 그 어떤 질문에도 말을 아끼며 조용히 차에 오르는 노태우의 장면과는 너무나 대비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갔던 그들을 대통령 당선 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합의해  사면했다.  당선자의 뜻이 더 크게 반영된 조치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학 새내기였던 기자에게도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사형집행 중지 조치(이 역시 조금은 못 마땅하지만)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게 된 부분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도 아버지 하느님께 자신을 못박는 이들에 대한 용서를 구하셨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김 대통령은 그들을 사면 하므로써 ‘용서’ 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실천한 것은 아닐까 -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의 용단에 박수를 보냈더랬다.

하지만 내 주변엔 평생을 ‘슨상님 (선생님의 전라도 사투리표현)’ 이라 하면서 영혼을 다해 그를 지지했다가 그 ‘슨상님’을 입에 담지 못할 쌍욕과 함께 ‘역사의 반역자’로 갈아엎어버린 이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이가 지인 H다.
3년전 친정에 일이 있어 홀로 서울에 나가 지낸 적이 있었다. 기자가 관여하고 있는 재외동포방송 편집인 협회 사무국 멤버들과 한달에 두어 번 갖는 막걸리 모임에는 가끔 H씨가 함께하곤 했다. 걸쭉한 호남 사투리에 스스로 ‘친미주의자’라며 죽기 전에 미국 한번 가보는게 소원이라며 농반 진반으로 이야기 하는 유머 가득한 H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성난 표범이 되버리곤 했다. 그럴 때 마다 기자는 그를 향해 ‘그래도 그렇지, 슨상님이 부모를 죽인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까지 말할 수 있나요? 슨상님을 향했던 H씨의 사랑이 진정했는지 오히려 묻고 싶어요.’ 라며 불편함을 드러내곤 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의 그러한 조치에 대해선 현재에도 생존해 있는 당시의 최측근 부터 보수진영 인사들에 이르기 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며칠전  우연히 접한 유튜브에서 전두환이 출소하며 껄껄 웃는 그 장면에 이어 작년에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떠들썩 하게 했던 최근의 사건들을 다룬 뉴스 모음(실제 모습)을 다시 보니 ‘슨상님’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버린 H의 울분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두환은 너무도 당당했다. 끝까지 조금이라도 사죄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사실 그동안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 갔는데 이런  뻔뻔한 모습을 이번에 생생하게 확인했고 그러다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기자는 갑자기 수술 자리에 통증이 밀려와 배를 움켜잡고 침대로 돌아와 누워 생각했다.

진정한 용서란 과연 무엇인가. 상대방은 사과 할 생각도, 용서 받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그 앞에 떡하니 용서라는 면죄부를 주는게 온당한가. 과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용서를 한 것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용서란 적어도 상대가 그의 잘못을 인정했을 때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기소등 온갖 악재에도 불구한 인기 상승이 큰 잇슈였고 서울쪽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장청구 기각이 기장 큰 잇슈로 등장해 있었다. 진영의 대립, 좌우의 갈등은 이곳이나 저곳이나 비등점을 향하고 있다.  이 또한 용서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용량 초과로 더 이상 생각은 진전 되지 않았고 그런채로 며칠이 지난 어제, 우리의 추수 감사절인 한가위 날  오후, 누워서 핸드폰 서핑을 하던 중 알고리즘이 이끌었는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2주 전 주일 복음에 대한 강론을 읽게됐다.
“용서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며 증오로 오염된 공기를 감사의 마음으로 정화해야 합니다.”
강론 제목이었다. ‘헉, 소오름…’ 이 정도면 알렐루야가 아니라 알고리즘렐루야 라고 해야되는 건가 싶다.

머릿속을 맴돌던 ‘용서’라는 화두에 알고리즘이 ‘여기 답 가져왔어’’ 라고 말을 걸어 오는 듯한 순간이었다.
이 날의 복음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에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용서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마태 18,21-35 ).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21절)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2절).

할 말이 없었다. 이 정도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용서하라는 뜻인게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용서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우리 모두 용서 받은 존재이고 용서 없이는 희망도 평화도 없으며 용서는 사회를 오염시키는 수많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교황은 강론에서 말했다. 결국 정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없으니 용서하라는 뜻. ‘오, 바로 이거야’ 라는 환호성은 나오진 않았지만 용서와 관련해 뿌옇게 끼어있던 무언가가 아주 조금은 걷어지는 듯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온갖 욕을 먹어 가면서라도 ‘용서’를 통해 이 땅에 복수의 연결고리를 끊고 ‘평화’ 의 고리를 새롭게 내걸고자 했을 것이다. 상대가 그 용서의 가치를 이해하든 안 하든.  후대의 평화를 위해…

용서란 증오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세상의 모든 분규 다툼 그리고 전쟁 까지 모두 용서하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살인범도 무조건 용서하고 악질 친일파도 용서하고 의사당에 난입한 국기문란범도 용서하고, 권력형 비리도 용서하고, 잘못된 기소를 남발하는 검사들도 용서하고, 누구에게는 당대표 잡아가라고 한 의원들도 용서하고  다 용서하란 말인가.  그래서 나로선  용량 초과다.

그래서 내린 타협안.   현재 우리는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 부터 사회의 큰 아젠다에 이르기 까지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정의’와 ‘공정’ ‘평등’ 이라는 이름으로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여러 형태로 하고 있다. 그 노력의 과정 중, 우리가 가장 빠지기 쉬운 오류는 정의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상대방을 ‘악마화’ 하는 것이다. 양의 동서 시간의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최악의  대립과 분쟁이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제발 악마화만은 하지말자.  역지사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름을 인정하는 것 , 일단 거기서 출발해보자는 것이 한가위, 감사의 날에 내린 평화주의자 예비역 여군,  내가 내린 상념의 세속적 결론이다.  (9/30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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