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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여성생활

‘서지은과 함께 영화 한 잔, 술 한 편’ <만추>

서지은 (수필가, SNS 인플루언서)

삶이란 고량주처럼 독하고 쓴 것,  영화 <만추>

 

계절마다 연례행사처럼 챙겨보는 영화가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러브 액추얼리>를, 봄엔 ‘신카이 마코토’의 벚꽃 향기 물씬한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너>가, 여름엔 갓 딴 복숭아 같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꺼낸다. 그리고 가을, 가을이 한 복판쯤 무르익으면 ‘김태용’ 감독의 2011년작 <만추>를 플레이 시키고는 한다. 영화제목부터가 <만추 晩秋>, 즉 늦은 가을을 뜻하니 어쩌면 당연한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수인번호 2537번으로 불리는 애나는 남편을 살해한 죄로 미국 형무소에 7년째 수감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부고로 3일간의 외출을 허락 받는다.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탄 시애틀 행 버스가 출발하기 전 급히 버스에 오른 한 남자, 동양인인 그는 홀로 앉아있던 애나에게 버스요금을 빌린다. 그리고 남자 훈은 빌린 버스요금을 갚겠다며 애나의 손목에 억지로 자신의 시계를 채워준다.

사랑이란 믿었던 존재에게 배반 당한 애나의 삶은 스산하다. 그녀는 외국 땅이었지만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화롭던 삶의 온기와 사랑했던 연인의 기억을 과거에 묻은 채 남편을 죽인 살인범의 신분으로 작은 형무소 방 한 켠에 마음까지 가둔 채 살고 있다. 남편의 죽음은 그녀의 죄가 아니었음에도 인생에서 자유를 스스로 소거하는 일이야말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 치러야 할 당연한 대가라 여긴다. 그녀에게 사랑은 깊은 침묵과 이음동의가 되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 팔 수 있는 것이 제 몸과 시간뿐인 남자 훈, 그의 꿈은 거창하지 않았으나 낯선 타국에서 그저 몸뚱이 하나가 전부인 불법체류자에게 미국은 결코 기회로 찬란한 곳은 아니었다. 훈은 팔 수 있는 몸과 시간을 를 팔며 위태롭게 살아간다. 싱긋 미소 진 얼굴로 ‘다 잘 될 거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훈은 그간 마구 팔아온 몸과 시간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쉽게 팔아온 몸과 시간은 이제 그의 목을 조여오는 차가운 쇠사슬이다.

계절 탓일까? 아니, 계절 덕분일지도. 애나와 훈이 만난 계절이 늦가을이 아닌 이른 봄이었다면 둘의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사랑을 묻은 여자와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의 조우는 만추라는 계절로 인해 특별한 사건이 되고 만다. 미래가 불투명한 훈과 주어진 시간이 72시간밖에 없는 애나가 조금씩 주고받는 서사는 시애틀을 잠식한 축축하고 짙은 안개를 닮아 구석구석 쓸쓸히 스민다.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마침내 가장 비극적은 명제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이룰 수 없는 약속만큼 안타까운 것이 있을까? 훈이 돌려달라 했던 시간(시계)와 애나가 돌려주겠다 약속한 시간이 서로에게 호의로운 결과를 선사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훈은 과거의 애나처럼 낯선 나라가 그에게 구형한 가혹한 응징으로 이름 대신 수인번호로 불리는 존재가 되었거나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나는 그런 그의 사정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기다린다, 하염없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만추 뒤에 오는 계절은 혹독한 겨울이라는 불변의 섭리를. 언젠가 그 둘이 만나 시애틀 거리를 함께 걷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영화 <만추>의 엔딩 장면에서 나는 매번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내가 이 영화를 애정 하는 이유는 영화적으로 뛰어난 작품이어서는 아니다.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마음에 드는 장면과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의 낙차가 커 감각적 피로를 느끼게 되는 영화기도 하다. 그럼에도 <만추>는 아름다운 영화다. 배우 ‘현빈’을 다시 보게 했고, 김태용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애나 역할을 맡았던 배우 ‘탕웨이’와 사랑에 빠져 세기의 커플이 되었다. 갓 내린 커피의 크레마처럼 영상에 녹아 든 가을을 닮은 OS,T도 이 영화를 아끼는 이유다. 아마도 이변이 없는 한 내년 가을에도 또 그 다음 가을에도, 나는 <만추>를 찾을 테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어떤 계절이 당도할 때마다 매번 떠오르는 영화로 기억된다는 건 감독으로서 가장 영예로운 일이 아니려나.

영화 속 애나의 국적은 중국으로, 그녀에겐 중국식 식당을 열고픈 꿈이 있었다. 외국을 돌아다녀 보면 쉽게 차이나타운을 발견할 수 있는데, 중국은 크고 넓은 대륙의 스케일 만큼이나 음식 종류가 다채롭고 요리와 차, 술을 곁들여 가족, 이웃, 친구들과 밤새 마작을 하는 등 먹고 마시는 일로 관계를 다지는 그들 특유의 문화 때문인지 세계 어딜 가도 그들만의 타운을 형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나긴 타국 생활에서 그리운 건 모국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먹어온 음식이 간절했던 기억이 내게도 있으니.
기름을 듬뿍 사용하는 호쾌한 중국음식에는 뭐니 뭐니 해도 중국 술 백주가 가장 어울린다. 백주는 조그마한 잔에 따라 마시는 술로, 잔의 크기와 맑은 물을 닮은 자태에 안심하고 홀딱 비웠다가는 비강으로 사정없이 밀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향과 독한 맛으로 호되게 당하기 십상이다.

백주는 전분 혹은 당분을 지닌 곡물로 밑술을 빚어 이를 발효 증류한 만들어지는데, 담그는 방식에 따라 술에 남아있는 에스테르의 종류와 알코올도수에 차이가 있으며 보통 32도에서 40도 내외지만 최대 72도의 것도 있을 정도로 알코올도수가 높다. 그러나 느리게 마시는 백주만의 음용 방식과 불순물이 적은 덕분에 다음날 숙취가 없는 깔끔한 술이기도 하다. 우리가 중국집에서 흔히 접하는 빼갈, 즉 고량주는 백주 중에서도 수수로 만드는 증류주로 또렷한 맛과 향이 중국요리와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데다 가격도 합리적이라 한국인들도 즐겨 마신다.

아무리 독한 술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나를 괴롭히던 숙취가 옅어지듯, 입에 쓴 술은 대체적으로 숙취에서 벗어나는 시간도 빠른 편이고 입에 단 술은 달콤한 여운만큼이나 숙취가 오래 가는 경우가 많다. 술은 긴장을 풀어주는 친구도 돼주지만, 삶의 명과 암을 배우게 하는 선생이 돼주기도 한다. 특히 백주의 경우, 거대한 대륙에서 만든 술의 잔이 아주 작다는 것에서 삶의 철학이 엿보이는 듯 하다.

만추의 싸늘한 밤 기운을 달래주는 뜨거운 중국요리와 작은 잔에 담긴 백주를 홀짝이며 생각한다. 삶이 아무리 백주처럼 독하고 써도 삶의 거대함까지 잠식할 수는 없다고, 독하고 쓴맛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날도 있다고.  (1102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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