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시민참여센터 대표)
1637년 1월 3일부터 1637년 2월 24일까지 두 달이 안된 병자호란에서 조선은 항복을 하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선군이 10만여명, 청군이 4만7천여명이 참전했고 그중 조선군 3만명 이상,
청군은 6천명 이하로 전사 했다고 당시 주화파의 최명길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왕세자를
포함하여 60여만명(10만명 이하라고도 함)의 조선인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일은 권력자들이
벌이고 고통은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겨우 50만 인구로 대기근의 상황에서 청은 조선을 침략
했기에 장기전은 나라 자체의 몰락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지만 대규모 전쟁을 경험한 우수한 병력과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인구도
4백만 이상이었다. 그러나 시대흐름을 파악한 실리외교 보다는 극단적 성리학 근본주의에
바탕을 둔 명 사대주의와 무능외교 그리고 쿠테타 세력들의 무능한 국정 운영과 군지휘관 임명이
문제였다.
1597년 8월 26일 이순신을 고발하고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100척이 훨씬 넘는 판옥선(군함)과
거북선 그리고 1만여명의 수군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그러나 왜군에게 야습을 당하여 원균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휘관들과 수군들 그리고 3척의 거북선과 모든 판옥선을 잃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혁혁한 공으로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이순신에 대한 선조의 두려운
질투심이, 수군통제사라는 자리가 목표일뿐 전쟁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무지하고 지도력이 없는
원균을 임명한 임금의 무지한 선택의 결과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1920년대 초 독일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학문, 과학, 예술,
문화에서 눈부신 발전을 했다. 당시 세계물리학 학술지 저자의1/3이 독일인이었을 정도로
아인슈타인, 블레히트 등 최고의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이 배출되는 민주공화국 이였다. 그러나
10여년만인 1934년 8월 총리 및 대통령의 자리에 아돌프 히틀러를 독일국민들은 선출하였다.
1차대전 패전에 따른 막대한 전쟁배상금에 대한 불만, 카톨릭과 신교도 대립, 대기업, 중산층과
노동자, 농민의 격렬한 대립 그리고 변화를 시도하는 사회주의에 대응하기 위하여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성 보수 정치인들의 자기 이익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 히틀러였다.
극단적 성리학 근본주의자들이 쿠테타로 권력을 잡고 국정에 대한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선택한 정책은 조선 백성들을 사지로 몰았고 왕조는 굴욕 항복을 하였다.
분출하는 사회적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대기업과 중산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또한 보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냉혈 독재자 히틀러라는
극단주의자를 총통으로 뽑았다. 그리고 위대한 독일인들에 의한 제3제국 건설론은 2차대전을
일으켜 수많은 학살을 자행 하였고 결국은 스스로도 참혹한 멸망의 길로 갔다. 나라는 분단이
되었고 패전의 책임과 고통은 독일국민들의 몫이 되었다.
중간선거가 끝났다. 하원은 공화당이,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시민들은 펜데믹,
인플레이션, 긴장의 격화, 전쟁이 세상을 엄습하고 극단주의자들이 준동하고 있는 이 혼란의
시기에 일단 현상 유지와 균형을 택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극단주의자들이SNS를 통하여 수많은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퍼트려 유권자들의 판단을
왜곡시키고 있다. 그래서 선거때마다 유권자들은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으로
나라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고, 그 선택의 책임은 결국 시민들의 고통으로 돌아온다는
역사의 교훈을 명심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줄 아는 현명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11/14 동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