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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안동일 컬럼> “재미 독립운동가 황기환 지사를 아시나요”

안동일 ( 본보 대표 기자)

3.1절 104주년 기념일에 생각하는 “미스터 선샤인”

오늘 3월1일은 104 주년을 맞는 3.1 독립운동 기념일이다.  이곳 미국이나 고국 한국에서도 이번 3.1절은 워낙 이런저런 일로 다사다난 해서 인지 예년에 비해 쓸쓸하고 스산하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서울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렸다는 한국 정부의 공식 기념식도 예년에 비해 조촐했고 대통령 기념사 마저도 역대 가장 짦았다고 한다. 윤석렬 대통령이 천자가 조금 넘는 1022자의 기념사에서 일본이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가 되었다고 선언했다고 해서 야당이며 재야 진보진영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비난의 언사를 쏟아내는 모양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위안부 피해자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언급이 빠졌고 일본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과거사 문제가 완결된 것처럼 묘사한 것이 매우 부적절했다.” 고 하는데 언제까지 과거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냐는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매우 나쁜 일은 아니다. 물론 그 부분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계속 있어야 겠지만 오히려 위안부 문제, 징용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일본과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소아병적인 논리야 말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3.1정신의 훼손이 아닐까 싶다. 3.1 정신의 요체는 민족 자결과 자주, 그리고 세계 평화. 그리고 적극적 참여 정신으로 요약되는 것 아닌가.

뉴욕 퀸즈 메스패스는 우리 뉴욕 동포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서니사이드 우드사이드 만 해도 친숙하지만 메스페스는 그 두 동네를 지나 퀸즈에서 브루클린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작은 동리다.
뉴욕 왠만한 동리마다 묘지가 있는데 이 동리에도 마운트 올리벳 세메터리 라는 작은 시립 공동 묘지가 있다. 이 작은 묘지에서도 서쪽 끝인 웨스트 윙에 있는 한 묘역 앞에서 올해 뉴욕의 3.1절 행사가 열린다.
한인회장도 총영사도 참여하는 것으로 예고돼 있다. 실은 지난해에도 규모는 작았지만 이곳에서 뉴욕의 가장 오래된 동포 교회의 하나인 뉴욕한인교회 신도 등이 모여 기념식을 가졌다.

이곳은 바로 뉴욕에서 잠든 황기환 애국지사의 묘역이다.
높이 50㎝도 안 되는 자그마한 비석에는 ‘대한인’ ‘황긔환지묘’ ‘민국오년사월십팔일영면’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이름 가운데 글자인 ‘기’는 당시 표기를 따라 ‘긔’로 표시됐고, ‘민국오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5년인 1923년을 나타낸 것이다. ‘민국오년’이라는 연도 표기는 비석을 세운 동포들의 독립 염원을 담은 느낌이다. 오는 4월, 이곳에 잠들어 있는 황지사의 유해가 마침내 모국 대전의 현충원으로 이장 된다고 하니 이날 기념식은 황 지사에 대한 뉴욕 동포들의 송별연이기도 하다.

지난 1995년 한국 보훈처에 의해 뒤늦게 ‘애국장’에 추서돼 독립운동을 인정받은 황 지사는 그동안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었다.
마흔 살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데다가 젊은 나이 탓에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김규식, 서재필, 이승만 등 당대 지도자급 독립운동가들을 보좌하는 역할을 주로 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황기환 지사는 최근들어 미스터 선샤인의 주인공이라고 알려지면서 갑자기 친숙한 이름이 됐는데 엄밀히 따져 보면 이는 어불성설이고 견강부회다. 미스터 선샤인을 쓴 작가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극중의 유진 초이와 황지사의 미국이름 얼 황은 전혀 다른 일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같은 것이 있다면 조선 말기에 태어나 어린시절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것 하나뿐. 그리고 미군에 복무한 것이 같을 수는 있는데 황지사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유진은 미-스페인 전쟁에 참전했던 것으로 나온다.

황 지사는 평안남도 순천 출신으로 10대 중,후반인 1900년대 초반 도미해 미국에 거주하던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설립한 주파리위원회의 서기장을 맡아 김규식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후 주 파리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장 대리를 차례로 맡아 유럽 국가들에 조선 독립을 호소했으며 1921년에는 미국으로 돌아와 외교활동을 전개했다.
황 지사의 출생연도와 날짜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마운트 올리벳 묘지의 사망자 인적사항을 보면 사망 당시 나이가 ’40’으로 돼 있어 1882년 또는 1883년에 태어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황 지사는 미국에 건너온 뒤 미군에 자원 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역시 자세한 사항은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 근대사 전반이 그렇듯이 그의 일생을 뒤흔든 사건이 바로 기미년 3월1일 만세운동 사건이었다. 3.1 운동의 여파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황지사는 뷴연히 이 대열에 합류한다.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기에 외교 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1919년 6월 프랑스로 이동해 베르사유 평화회의에 참석하러 파리로 온 김규식을 도와 대표단의 사무를 협조하는 한편 임시정부의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임명돼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그해 10월에는 러시아 무르만스크에 있던 노동자 200여명이 일본에 강제 송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교 노력을 펼쳐 35명을 극적으로 구출했다. 이듬해 1월 파리에 주재하는 한국선전단 선전국장으로 프랑스어 잡지를 창간하고 일제의 압박을 알리는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을 호소했다. 1921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주차 영국런던위원으로 임명돼 <영일동맹과 한국>이란 책을 편집해,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분할정책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황 지사는 임시정부 통신부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친우회를 조직해 외교사업을 후원하고 임시정부 외교부 런던주재 외교위원 및 구미위원회에서 활약하다 1923년 이승만 박사의 요구에 의해 미국으로 돌아와 분주히 활동하던 중 4월17일 뉴욕에서  돌연 심장질환으로 젊은 나이에 숨져 현지 묘지에 안장됐다.
그리고는 세인들의 관심에서 잊혀져 갔다.

쓸쓸하게 잊혀져 가던 한 애국지사의 작은 묘역이 발견된 것은 이번에 3,1운동 시집을 펴낸 뉴욕한인교회 은퇴 원로 목사인 장철우 목사의 공이다. 그리고 모국 현충원 이장의 어려운 작업이 성사 된것은 역설적으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덕분이다.

장철우 목사는 당시 ‘뉴욕한인교회 70년사’에서 교회 초창기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문구를 본 뒤 교회 청년들과 함께 물어물어 이곳을 찾았다.
“2008년 가을이었습니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는 구역의 비석을 일일이 확인하다 한글로 된 황 지사의 비석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이후 장 목사는 1년에 두 번씩 황 지사의 무덤을 찾았다. 뉴욕 일원에서 오래 생활한 동포들도 황 지사가 누구인지, 황 지사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때문에 장 목사를 포함한 몇몇 뜻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무덤을 찾는 동포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 장목사 등은 황지사의 묘역이 너무도 초라하기에 한국으로의 봉환을 각 방으로 추진했다.
이런저런 노력 끝에 2013년 대한민국 정부가 애국지사의 무덤을 확인 했지만 지사는 계속 공동묘지의 한구석에 방치돼야 했다. 묘지를 직접 찾았던 국가보훈처는 황 지사의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 현충원에 안장하겠다는 방침은 세웠다지만, 유족이 없어 다른 애국지사의 송환과는 달리 절차가 복잡하기만 했다. 유족이 없으면 한국 정부가 유해 송환을 위한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법원의 승인을 받아 송환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꼭 한달 전인 올해 2월 1일, 한국 국가보훈처는 마운트 올리벳 묘지 측과 황기환 지사 유해 파묘(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하여 무덤을 파냄)에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보훈처는 2013년부터 황 지사 유해 봉환을 추진했으나 올리벳 묘지 쪽이 “법원의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기에 늦어졌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미스터 선샤인이 인기를 모으면서 황기환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2019년과 2022년 에야 두차레 미국 법원에 유해 봉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두차례 모두 지사의 유족이 없음을 확인할 공식 자료가 없어 법원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스터 선샤인을 연호하는 한인들의 열화 같은 요구에 묘지측이 손을 들어 양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훈처는 뉴욕 총영사관과 함께 “순국 100주년인 올해 황 지사 유해를 봉환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염원에 호응해 달라”고 묘지 쪽을 간곡히 설득한 끝에 최근 전격적으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지사의 유해는 4월 중 정부 주관 봉환식을 거쳐 국립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다고 발표 됐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은 비극적 결말 이었던 것으로 기억 되지만 황기환 지사 유해 봉환은 해피엔딩인 셈이다.

역사는 이처럼 정의와 진실이 끝내는 이기는 쪽으로 발전한다. 물론 그 과정에 엉뚱한 기연과 사건이 개입 되도 하지만…
우리 역사의 발전에 있어, 자주와 평화 그리고 적극적 참여의 3.1 정신은 언제나 그 원천이 아니었을까. 이를 잊을 때 우리는 헤매곤 했다.

1921년 2월 말에 발표된, 무장독립군 결성의 모체가 된 혈성단의 3.1절 결의문의 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아! 경사로다! 건국의 기념일이여! 반도강산 이천만 민족의 생명은 이 날부터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 날이 다시 돌아오니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지 않을 수 없다. 굽히지 않는 열성과 꺾이지 않는 충정으로 원수의 엄혹한 단속에도 굴하지 않고 찬란하고 위대한 활동을 위하여 축하해야 할 것이다. 아는가? 3월 1일이 무슨 날인지? ‘   (03/01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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