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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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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제22회

안동일 작

배움의 길

정(精)ㆍ기(氣)ㆍ신(神)이 유난히 장조 되었다.
“이미 말했지만 사람은 몸ㆍ마음ㆍ정신으로 이뤄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셋을 함께 닦는 수련법이 바로 밝기 배우기 라 할 수 있지. 몸을 살리고 움직이는 생명력을 정(精)이라 부른다. 정신활동을 가능케 하는 힘 은 기(氣)라고 일컫는다. 또, 마음(성품, 심성)의 기운을 신(神)이라고 한다. 무예 수련은 곧, 정(精)ㆍ기(氣)ㆍ신(神)을 다 같이 밝고 충만하게 만드는 수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기신 수련법이 설명됐다.
“ 정(精)은 하복부에 뿌리를 두고 온몸에 퍼져 있다. 기(氣)는 머리를 중심으로 온몸에 퍼져 있다. 신(神)은 가슴을 중심으로 온몸에 퍼져 있다. 정(精)의 뿌리가 되는 하복부를 하단전이라 부른다. 가슴은 중단전, 머리는 상단전이 되는 것이지. 정ㆍ기ㆍ신, 상ㆍ중ㆍ하 삼단전을 함께 닦아 심신(心身)을 지극히 밝게 만드는 것이 수련의 기본원리이다.”

흑치 사범은 유난히 내공과 심법을 중시했으며 아진에게 하루 두시진 이상의 명상을 요구 했다.
“무릇 내공 연마에 있어서는 평상심을 유지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무공은 부동심, 평정심을 근간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다스린 이후에야 자연의 조화에 따라 신체의 혈을 열어 기를 느끼고 나아가 그것을 축적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력이 높은 자가 무적의 철탑과 같이 굳세고 강하여 부서지지 않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커다란 힘을 다루기에 그 근간이 되는 마음의 관리가 허술하여 폭주하게 되면 그 피해역시 그에 비례하여 커지기 마련인 것이다. ”
내공 수련은 수련대로 진행 됐고 아진은 스승에게 검술 창봉술 그리고 부월 등 18반 무예를 배웠다. 흑치의 도장에는 차별이 없었다. 출신을 따지지 않았다. 사실 내궁 훈련원 뿐 아니라 일단 구려인들 속에 섞이게 되니까 이전의 출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진은 웬지 검과 도 보다는 창과 부월이 마음에 들었다. 돌을 다룰 때 사용했던 도구들이 부월과 창에 가까웠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흑치 사범은 자신의 특장이 검과 도에 있는 것이 아쉽다면서 기회가 닿으면 창봉술의 달인인 용노사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해 주겠다고 했다. 용노사는 흑치 사범의 스승이었고 장수왕도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모든 공부는 깊고, 긴 강(江)이나 산천(山川)혹은 물에 비유된다. 물은 흐른다. 물의 시작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물의 마지막을 알 수 있겠는가. 학문(學文)과 무도(武道)는 시작과 끝이 없다. 물의 시작을 찾기 어렵듯이 모든 학문의 시작 또한 찾기 어려우며, 물줄기의 마지막을 찾을 수 없듯이 무도와 학문의 마지막 또한 찾기 어렵다. 수행자는 단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학문이나 무도(武道) 혹은 선자(先子)들의 가르침을 세월과 함께 배우고 닦아서 후학(後學)들에게 대물림 할뿐이다. 그러므로 공부(功夫)란 선대(先代)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익히고 개정(改正)하고 또, 덧붙여 다음 대(代)에 이어 전하는 하나의 과정이니 이러한 것이 저 쉬지 않고 흐르는 물줄기와 무엇이 다른가! 자네도 이같은 물줄기의 가르침을 잊지 말고 재주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네”

압강 에서의 수련이 끝났던 어느 날 흑치사범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이렇게 말을 했었다. 이 한마디는 아진의 일생에 많은 영향을 준 정문의 일침이 되기도 한다.
“무도의 길은 승자가 되는 길이다. 승자는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패자는 말로서 행위를 증명한다. 승자는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 고 말하고 패자는 실수했을 때 너 때문이라고 말한다. 승자의 입에는 솔직함이 가득하고 패자의 입에는 차별이 있다는 출신이 다르다는 핑계가 가득하다.”
아진은 좁은 소견에도 순간 역시 스승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폐부를 찌르는 그의 승자의 길은 계속 이어졌다.
“승자는 어린아이에게도 사과 할 수 있고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 승자는 패자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고 패자는 승자보다 더 게으르지만 늘 바쁘다고 말하는 법이다. 자네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진은 그런 승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진이 노령산의 용학노인을 찾아 갔을 때 노인은 산정의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래, 무공은 배울 만한가?”
용노인은 대뜸 아진에게 물었다.
”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수면위로 비친 구름자락을 살피며 아진이 대답했다.
“어째서 무공을 배우는가?”
아진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간단하게 생각하기 엔 너무 무거운 주제였다.
“강하게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강하게 되고 싶다? 무공을 익히게 되면 강하게 되는가?”
아진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럼 지금껏 최선을 다했다는 자네에게 무공은 무엇인가?”
“무공은 나 스스로를 시험하게 만듭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사이 낚싯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끊어질 듯 휘어지는 대를 보니 큰놈의 입질이 분명하였다. 이런 호수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노인은 낚싯대를 거두지 않았다.
아예 낚시에는 관심도 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지켜보던 아진이 오히려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 뭐가 그리 급한가?”
” 애써 잡은 고기를 놓칠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휘어진 낚싯대로 시선을 옮겼다.
“모든 일은 때가 있기 마련일세. 보이는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그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작스레 낚시 대를 강하게 당겼다. 팽팽하게 휘어지던 낚시 대는 순간적인 힘에 그만 뚝하고 부러져버렸다.
” 진실과 대의를 잃어버리기 마련일세.”
낚시 대가 부러졌건만 노인의 음성은 여전히 무심하기만 했다.
노인의 말이 가슴에 찌르르 울렸다.
‘ 눈앞의 환상에 진실을 잃어버린다. 눈앞의 환상에 대의를 잃어버린다.’
아진은 문득 자신이 급하게만 달려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부러진 낚시 대는 개의치 않은 채 호수 뒤편 초막으로 향했다. 아진도 노인의 뒤를 따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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