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2016년 대선에서 정치 무경험의 트럼프 후보는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를 진행하면서 갈고 닦은 입담으로 공화당 예비선거에 참여하는 쟁쟁한 경력의 후보들을 조롱하고 희화화 하면서 공화당의 예비후보가 되었다. 이어서 11월 본선거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고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의 언어를 쏟아내고, 중국은 물론 동맹국들과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심각한 경제침탈을 당하고 있다고 선동하여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그리고 백악관은 연일 반이민 행정명령안을 선포하고 이민 문호를 축소하고, 밖으로는 중국에 대한 대대적인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한국, 일본, 유럽에 대하여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 하라는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반이민 이슈는 전세계로 번졌고, 각 나라들이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한 난민들의 입국을 봉쇄하기 시작하였다. 이와중에 중국의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더니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 수천만명이 사망하고 수개월 동안 인류는 집밖에 나가지 못하는 펜데믹을 겪게 되었다. 이때 트럼프는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하면서 중국의 책임을 내세웠다. 이말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아시아계는 인종혐오 범죄의 대상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공격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면서 세상은 이성을 잃고 적절한 분별이나 판단을 못하는 맹목(盲目)적인 증오와 편가르기가 일상화 되고 있다.
포루투칼 출신의 ‘주제 사라마구(Jose Samarago)’는 1995년 ‘눈먼 자들의 도시’ 라는 소설을 통해서 이성을 잃은 맹목은 옳고 그름,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아 안과를 찾았는데 그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된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는 ‘백색 실명’으로, 정부는 이를 전염병으로 선포하고 백색 실명자들을 모두 격리 병동에 강제 수용한다. 그러나 눈먼 남편과 접촉을 해도 눈이 멀지않은 그의 아내는 가짜 환자로 잠입하여 남편을 돌보면서, 자신도 전염이 될까 봐 두려움에 떨던 경비병들이 수용자들을 증오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아비규환의 수용소 모습을 직접 목격한다.
뿐만 아니라 수용자들 끼리도 억압과 폭력의 구조가 형성되면서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는 무리가 나타나고, 그의 아내는 두목을 살해하고 수용소에 불을 지르고 병원 밖으로 빠져 나갔다. 그런데 지키던 군인들도 이미 눈이 멀어 다 사라지고 시내에는 눈먼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쓰레기 더미가 그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과 몇 사람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고 어느 날 기적처럼 맨 처음 눈이 보이지 않게 된 남자 부터 시력이 회복되고,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점차 시력을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맹목은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한고 증오의 힘은 항상 파괴적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역사소설 ‘프라하의 묘지’에 유대인, 여성, 예수회, 프리메이슨 등 모든 것을 증오하는 살인마 시모네 시모니니가 등장한다. 그는 극단적인 증오심에서 힘을 얻고 증오를 핑계로 모든 위선과 거짓과 악행을 정당화 한다. 증오는 분노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분노는 분출 되면서 약화되지만 증오는 지속이 된다. 그래서 맹목과 증오가 만나면 광적인 파괴가 일어난다. 인종과 종교분쟁 그리고 진영 대결이 노골화 되고 있는 이시대 소외되고 인문학적 사색이 빈약한 현대인의 삶에 증오의 씨앗들이 자라고 있는데, 여기에 맹목이 결합되는 순간 인류는 또다시 엄청난 광기의
시대를 맞게 될수도 있다.
사실을 왜곡하고 선동하여 혐오를 부추기는 자와 옳고 그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친분에 따라서 맹목적으로 준동하는 자가 만나면 공동체와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결국 자신들도 망가진다. 우리는 나찌와, 일본군국주의, 그리고 홍위병의 광기가 어떻게 나라를 파괴하고 자신들도 파괴 하였는 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늘 증오와 맹목이 만나는 것을 경계하면서 자기 공동체와 나라의 일꾼을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 나라,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사리분별력이있는 유권자의 의식이 중요하다. (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