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3. 동맹 제전
-그 나라 백성들은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 한다. 모든 촌락에는 밤만 되면 남녀들이 여럿이 모여 노래 하기를 즐긴다. 성격이 깨끗하고 맑으며 자기 집에서 술을 빚어 먹기를 좋아한다. (삼국지 권 30, 동이전 고구려)-
-해마다 정월이면 패수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왕이 요여를 타고 우의를 갖추고 이를 구경한다. 물놀이가 끝나면 왕은 옷을 물 속에 던지는데 이때 놀이꾼들은 좌우 두패로 나뉘어 그것에다 물과 돌을 던지며 떠들고 쫒아 가기를 두 세번 되풀이 한다.( 수서 권 81, 열전 46, 고려)-
성안이 온통 형형색색의 깃발이며 장식으로 뒤 덥혀 있었다. 여인네 남정네 할 것 없이 한껏 뽐을 낸 치장으로 아침부터 밤 까지 거리를 누볐고 성안 대로변 공터 마다에는 각 부족 부락들이 자신들의 문장을 높이 내건 차일과 천막을 세웠고 지나는 사람 들 모두에게 술과 음식을 권했다. 명망 있는 5부 대가 차일에서는 자신들 영지에서 올라온 특산품들을 산처럼 쌓아 놓고 나눠 주기도 했다. 그 어느 때 보다 흥청대는 영고 동맹 제전의 축제였다.
국내성 도성 뿐 아니라 전국의 성에서 규모만 다를 뿐 같은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올해는 닷새의 일정으로 제전이 펼쳐졌다.
첫날에는 호태왕이 직접 집전한 수신제(隧神祭)가 왕궁 동쪽 뒷편에 있는 묘당에서 펼쳐 졌고, 둣쨋날에는 등고신제 그리고 셋째날에는 부여신제 넷째날에는 굴신제가 펼쳐 졌으며 오늘이 마지막 날로 부족제가 펼쳐지는 날이었다.
수신제는 천신에게 감사의 제를 올리는 행사 였고 등고신제는 나라의 시조인 주몽 동명왕에게, 부여신제는 시조의 어머니 하백녀가 주인공이 되는 제사 였고 굴신제는 대혈신(大穴神)에게 바치는 제 였다. 제사 라고 했지만 저쪽 묘당에서 집전하는 대가들만 근엄한 표정속에 진지하게 임했을 뿐 주변의 구경꾼 들은 계속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곤 했다.
아진과 소년들도 매일 신새벽 같이 일어나 거리를 쏘다니며 구경을 했고 여기 저기서 진미들을 배불리 먹었다.
뿔고동이며 해금 중국 아쟁 그리고 피리 소리가 밤낮 없이 울려 퍼졌다. 저녁 마다엔 부족 차일 천막 주변과 공터를 중심으로 춤판이 벌어졌다. 처음 보는 남녀들도 스스럼 없이 손을 잡고 뱅글 뱅글 돌면서 높은 웃음을 쏟아 냈다. 날씨도 제전을 도왔다. 아침 저녁 으로만 얕은 서리가 내릴 정도로 쌀쌀 했지 한낮에는 팔을 들어내도 전혀 춥지 않을 정도로 온화한 날씨가 계속 됐다.
오늘의 부족제날이 바로 부족 부락간 장기자랑이 벌어지는 날이었다. 장기자랑이라기 보다도 자신들 부족 부락의 위세와 부, 그리고 인물들을 뽐내는 행사였다.
국내성에는 합쳐서 12 부족 부락이 있었다. 왕실인 계루부를 필두로 왕후의 가문인 연나부,국상(國相)가문인 비류부로 이어졌고 5부에는 들지 못하지만 욱일승천의 기세로 인물들을 배출하는 을파씨의 서압록부락 등 3부락이 있었고 고구려계 호민 부락인 양주부락 천민 부락인 청호골에 이어 아진의 읍루가산이 그 말석에 있었다.
올해의 부락제는 파격적으로 왕궁 마당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젊은 호태왕이 자신감을 맘껏 뽐낸 용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새벽 부터 왕궁의 문이 열려 있었고 제전이 시작 되는 오시 무렵엔 발 디딜 틈 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왕궁 담장에 까지 올라가 앉았다. 근위병들도 담장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 까지 올라가 앉는 것을 허락했다.
아진과 라운 등 읍루가산 아이들은 진작 입장해 맨 앞 돌계단 아래 바닥에 앉아 있었다. 출연진 임을 표시하는 금황색 머리띠들을 두르고 있었다. 다른 대가들의 부루(부락)는 작은 천막 하나라도 배정 받았지만 청호골과 읍루가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하긴 천막 터를 배정 받았다고 거기에 세울 천막차일과 내용품 마련은 언감생심 이었다.
드디어 왕궁 근위부대의 악사병이 푸른 깃털의 투구와 붉은 갑옷의 멋진 차림새로 나와 돌계단 위에 서서 뿔고동을 불었다.
‘뚜우우우’
고구려의 위세가 고동 소리로 하늘을 찌르는 순간이었다.
옥당의 문이 열리자 통 넓은 황색 바지에 붉은 테를 두른 금장식 찬란한 황색 두루마리, 그리고 옥구슬 달린 금관을 쓴 호태왕을 필두로 금빛 테두리에 붉은 두루마기를 입은 왕후와 5부의 대표 각 부족장이 차례로 나왔다.
군중들은 호태왕 만세를 연호 하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일어나도 좋다는 고동이 한번 더 울었고 일어난 사람들은 한참 동안이나 대왕마마 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다. 호태왕은 궁궐 마당을 가득 메우고 담장 위에 까지 앉아 연호하는 백성 들을 주욱 훑어 보더니 손을 번쩍들어 흔들었다. 만세 소리가 더 높아갔다. 태왕에 대한 백성들의 신망과 존경이 또 한번 하늘에 닿는 광경이었다.
계단 위에 제단이 마련돼 있었다. 나무로 조각된 신장들이 제단 뒤에 모셔져 잇었다. 천신인 수신이 가운데로 해서 주몽 동명왕, 부여신인 하백녀상이 있었고 그 외에 각부의 신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사는 퍽 지루하게 진행 됐다. 호태왕을 필두로 각 부족장 대가들이 저마다 축문을 읽고 절을 하고 또 하곤 했기 때문이다.
호태왕이 축문을 읽을 때를 제외하곤 지난번 제사들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근엄하게 참여 하지 못하고 웃고 떠들고 저마다 가져온 음식들을 먹었다. 군데군데 창을 들고 서있던 근위병들도 사람들이 나눠주는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압록부락의 을파 족장의 축문을 끝으로 마침내 제사가 끝났다.
궁중 악사들이 고동 소리와 함께 음악을 연주했다. 젯상이 치워지고 왕과 대가들의 자리가 계단 무대위 처마쪽으로 마련 되고 드디어 부족간 장기 자랑의 순서였다.
청호 부락이 가장 먼저 였다. 권위 있는 부루가 가장 나중에 하는 것이 관례였기에 순서로 따지자면 여진 읍루부락이 먼저 해야 했지만 무슨 뜻에서 인지 이 행사를 주관 하는 근위부와 궁중악부에서는 읍루가산을 두 번째로 배정 했던 것이다.
궁중악대 악장 왕과 대가들 쪽을 향해 뭐라고 말하면 두 계단 쯤 밑에 있던 거구의 병사가 크게 외쳤다.
‘충성 제일, 기술 제일 청호고올’
아리따운 소녀 예닐곱 명이 무대에 올라왔다. 청호골 처녀들의 미모와 씩씩함은 장안에 유명했다. 청호골은 왕궁의 외거 궁녀며 무용수 대가댁의 행사 등의 인력 공급처 였다. 그녀들이 노래와 춤을 선보일 모양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