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문턱에 선 젊은 엄마와 그녀의 두 살배기 딸
<신간소개> ‘빛의 영역’(光の領分) 쓰시마 유코 작, 서지은 역.
본보에 컬럼을 연재하고 있는 서지은 작가가 일본 소설을 번역해 그 책이 출간됐다.
햇살 가득한 장면으로 ‘빛의 영역’(光の領分)이 열린다. 젊은 엄마와 그녀의 두 살배기 딸이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서 있다. 도쿄의 오래된 건물이지만 가장 높은 층(4층)에 있고 사방에 창문이 있어서 내부로 햇빛이 쏟아진다.
‘빛의 영역’에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여성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일본 문학에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는 페미니즘적인 캐릭터가 창출된 것이다.
소설 속에서 남편이 그녀를 떠난 후 주인공은 홀로 남겨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혼모의 삶은 만만하지 않다. 딸아이는 밤마다 울고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점점 더 고립된다.
젊은 엄마는 빛의 질감과 음영, 사물에 비추는 빛에 끊임없이 매료된다. “나 자신이 빛의 입자가 되기 전까지는 나를 녹이고 싶게 만든 이 장소에 대해 아무도 몰랐어야 했다. 빛이 한 곳에 모이는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한 번도 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그 고요함을 바라보았다.”
매혹적인 빛 때문에 그녀는 새 아파트에서 곧바로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 빛은 순전히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느 날 그녀는 졸린 딸을 데리고 공원 밖으로 나갔을 때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내 뒤에서 집요하게 나를 쫓는 것 같은 우울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빛은 모든 것을 피사체로 드러나게 한다. 그것은 추함과 장엄함, 부드러움과 무자비함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빛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축복이기도 하면서 저주이기도 하다. 사물을 명확하게 보고 싶지 않을 때조차도 빛은 모든 것을 비춘다.
그녀가 빛이 가득한 아파트에 사는 일 년의 기간은 일종의 통과 의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삶으로의 어려운 전환을 나타낸다. 그녀가 선택하지 않은 삶은 많은 도전을 안겨주지만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간다. 작가는 젊은 엄마의 삶의 가장 숨겨진 균열에 빛을 비춘다.
이 연작 소설은 작가가 문예잡지(群像)에 1978년부터 1979년 사이에 일 년 동안 연재한 작품을 모은 것으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쓰시마 유코(津島 佑子, 1947-2016)는 가부장적 구조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주제를 파고든다.
작가 자신이 미혼모의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코가 한 살이었을 때 바람난 여인과 함께 강에 뛰어들어 동반자살한 소설가였다.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09-1948)가 바로 그녀의 아버지이다.
작가가 삼십대 초반에 이 연작 소설을 썼는데 삶과 사랑과 가족과 사물과 일상의 사각거림을 놀라우리만큼 정교하게 그려낸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그녀는 울부짖지 않고 체념과 미련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둡고 세심하게 조각된 챕터는 반짝이는 것을 보기 위해 빛에 닿아야 하는 작은 다이아몬드와 같다. 빛이 방의 분위기를 바꾸는 방식이나 잠을 자고 나올 때 물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것을 설명하는 대목은 사뭇 인상적이다. 새빨간 주방 바닥, 눈부신 빛을 반사하는 은색 지붕, 윙윙거리는 네온사인과 폭죽의 이미지는 중첩되어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된다.
〈확고한 빛의 영역〉- 번역자의 말
일본어 전공자도 아니고, 일본어와 관련해 대단한 경력도 없는 내가 쓰시마 유코의 연작소설 〈빛의 영역〉 번역을 덜컥 수락한 이유는 한 가지만이 아니다. 하나뿐인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의 처지가 나와 비슷해 감정이입을 한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소설의 제목 때문이었다.
전남편과 별거를 시작하고 지은 지 20년쯤 된 방 두 칸짜리 복도식 아파트에 아직 어린 딸과 나만 남겨졌을 때 나는 참 엉망이었다. 한동안 거의 매일 밤 술이나 수면제 따위에 의존해 불안과 불면의 밤을 견디고는 했다. 집은 점점 그늘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청소를 소홀히 해 여기저기 불결했으며, 호더증후군 기질 탓에 집 안 곳곳 온갖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갔다. 책, 아이 장난감, 옷가지, 그릇, 술병, 간식 부스러기가 한 덩어리를 이루어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치우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치울 에너지도 당시의 내게는 없었다. 집은 늘 어둡고 축축했다.
지난했던 소송이 끝나 정식으로 이혼이 확정된 후 나는 딸과 함께 내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그 아파트를 떠나고 싶었다. 많은 덩어리를 해체해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다. 이삿짐을 트럭에 다 옮기고 남은 잔해들을 치우려 텅 빈 아파트 현관에 들어선 순간의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뭐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베란다 창문을 통해 무수히 쏟아져 들어와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낯선 광경에 일순 사고가 정지되면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때는 단란을 꿈 꾸던 집, 닦고 정리하며 가꾸던 집, 그곳을 어두운 공간으로 만든 장본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음을. 이렇게나 밝고 따스한 곳이었다는 자각이 슬펐다. 거실 한가운데 모여있던 ‘빛의 영역’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준 광경, 채움으로 단단해지는 시기가 있듯 비움으로 깨달음을 얻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지나친 빛은 눈을 멀게 한다.
짙은 어둠은 시력을 무용하게 만든다.
이혼 후에도 한동안 목적을 상실한 부표처럼 출렁였지만 결국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 아이는 빛처럼 밝게 자라주었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은 내게 생계수단은 아니다. 글 쓰는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의 내 꿈 중 하나가 맞지만 글이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글은 확고한 ‘빛의 영역’이다. 쓰시마 유코의 〈빛의 영역〉 번역은 그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조금 더 확고한 빛의 영역으로 한 발 더 다가가게 해 준 이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도 그 마음이 부디 전해지길 바라며, 이런 기회를 선사해준 출판사 마르코폴로와 한결같은 응원으로 주춤거리는 내 등을 떠밀어준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인사를 전해본다.
작가 쓰시마 유코
여성과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쓰면서도, 늘 새로운 표현과 다양한 소재로 현대 일본 문학의 정점을 달리는 대표 작가다. 본명은 쓰시마 사토코(津島里子)로, 1947년 3월 30일 도쿄 교외 미타카에서 태어났다. 시라유리여자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포크너의 작품 등 미국 남부의 문학에 매료되었고 크리스토퍼 말로의 「파우스투스 박사」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파우스트 전설 연구로 졸업 논문을 썼다. 대학재학 중에 동인지 『요세아쓰메 よせあつめ』를 창간했으며, 이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1969년 첫 작품 『손의 죽음』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같은 해 ‘분게슈토’ (文芸首都)의 동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6년 『덩굴 어미』로 ‘다무라도시코문학상’을, 1977년『풀의 침상』으로 ‘이즈미교카상’을, 1978년 『총아』로 ‘여류문학상’, 1979년 『빛의 영역』으로 ‘노마문예신인상’, 1983년 『고요한 도시』로 ‘가와바타야스나리문학상’을, 1987년 『밤의 빛에 쫓겨』로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했다. 파리대학 국립 동양언어문화연구소에 초청되어 일본 근대 문학을 강의하는 등, 해외 교류에도 관심이 많은 작가는 한국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한국 작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그 외의 작품으로 『너무나 야만스러운』 『전기마』 『갈대 배, 날다』 등이 있고, 소설집 『「나」』가 국내에서 출간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2016년 10월, 폐암으로 세상을 뜬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