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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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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 현장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88회

안동일 작

녹색의 물결과 흰 거품

 

남국의 태양빛이 백사장을 내리 쪼이고 있었다. 태양이 막 머리위로 오르려 하는 늦은 오전 이었다. 카리브해의 정취와는 또다른 남국의 해변 이었다.
“빌리, 아까 하던 얘긴데 말이야, 여기다 야자 박물관을 짓는 거야, 식물원 이라 해도 좋겠지, 전세계의 열대 야자수들을 다 모아 놓고, 열매들의 특성 효능, 이런것들을 알리는 거야, 옆에서 직접 짜먹는 시음장 같은 것도 만들어놓고… 그리고 말이야 베트남 전통무용이며 연극을 공연 할 수 있는 극장도 짓고, 어때? 근사하지 않아?”
비치 의자에 나란히 누워 있던 브루스가 빌리에게 말했다.
“응, 그거 괞찬은 아이디언데…”
그러나 빌리의 대답은 어쩐지 시쿤둥 했다. 다른 생각에 골똘이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옆의 윤호는 잠에 떨어 졌는지 선그라스가 옆으로 돌아가 있는 것도 모르는 채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다.
세사람은 지금 베트남 나짱 해변에 누워 있었다. 모래는 잘 빻은 미싯가루 처럼 희고 고왔다. 녹색의 물결이 흰 거품을 내면서 찰랑대고 밀려왔다가는 밀려 가고 있었다. 키작은 야자수 들이 해변가를 장식하듯 죽 둘러 서 있었다.
그들은 아침 비행기로 이곳에 도착 하자 마자 호텔에 짐을 풀고는 이내그냥 해변으로 달려와 백사장에 몸을 뉘었다. 어젯밤의 파티는 모두를 녹초로 만들기에 충분 하고도 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영이 빌리의 말에 영향을 받아 문득 떠오른 새사업 때문에 제일 쌩쌩한 편이었다. 월남 전통무용 얘기를 빼지 않고 하는 것으로 보아 어젯밤의 그일이 가영에제도 꽤나 인상적 이었던 모양이다. 글쎄 인상적이기만 했을까.
호치민에서 함께 날아온 초청자격인 쿠엔 충은 오후의 일을 준비하기 위해 인근인 닌호아 시에 먼저 다녀오겠다고 그들과 헤어져 호텔을 떠났었다.

멀리 보이는 푸른 숲의 동그란 섬들이 빌리의 야릇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었다. 빌리는 그 섬들 가운데 이쪽에 나란히 서 있는 봉긋한 두개의 섬을 바라 보면서 카니 생각을 떠올렸던 것이다. 비가 몹씨 왔던날 흠뻑 젖은 카니는 짙은 녹색 슈미즈를 입고 있었다. 두 섬의 모양이 바로 카니의 가슴을 연상케 했다. 카니의 가슴은 두 봉우리가 살짝 떨어져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뒤 흔들어 놓았던 운명의 여인 카니 청, 그녀는 계속 빌리의 곁에서 우수가 깃든 끈끈한 관심의 눈망울을 흘리면서 맴돌고 있었다. 사실은 전날 그런일이 있었을 때면 다음날 꼭 카니 생각이 났다. 오늘은 섬의 숫자가 두개라는 것에 더욱 의미가 쏠렸다.
그 가슴 졸였던 재판이 멋진 승리로 끝나고 명예 회복을 위해 검찰을 상대로 무고 손해 배상 청구소송까지 제기 한뒤 빌리와 윤호는 머리도 식힐 겸 브루스의 제안에 따라 베트남 여행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처럼 베트남의 한적한 해변에서 머리를 식힌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브루스가 꼭 소개 하겠다는 베트남 친구 쿠엔 충과 만나 전부터 거론되던 건어물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 하기 위해 겸사 겸사 단행한 여행이었다.
또 베트남 일정이 끝나면 홍콩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를 둘러 봐야 했다. 홍콩에 가면 또 카니의 얼굴을 볼 수 있을게다. 방씨와 결혼한 카니는 홍콩에 갈 때마다 거의 마주치곤 했다. 그럴때 그녀는 동생을 걱정하는 누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떤 얼굴이 됐건 카니의 얼굴도 그리고 방옥의 얼굴도 오랫만에 보게 됐다.

실로 9개월 만에 해외 여행을 하게 된 셈이었다. 재판 중에 두사람의 여권은 압수되어 있었다. 여권을 찾아다 주면서 샥스틴 영감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방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었다.
“윌리코프 체스타비치가 될 뻔 했던 친구, 여권 여기 있네.”
“하필이면 그 이름입니까?”
“빌리 이름을 러시아식으로 근사히 고치면 그렇게 되거든…”
다른 얘기가 아니었다. 빌리가 난데없이 중범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된 알렉세이 보로이가 샥스틴 영감을 통해 은밀한 메시지를 전해 왔었다. 재판 결과가 여의치 않을 것 같으면 밀항을 해서라도 러시아로 튀어 오라는 것이었다. 빌리의 새 신분 하나 만들어내는 것 쯤은 일도 아니라고 했다. 왕노사가 생각했던 특단의 조치는 돈과 폭력을 총동원해 재판을 뒤집는 일이었을 터인데 보로이의 대책은 그처럼 간단 했다.그게 러시아 식이었다. 그말을 전하면서 샥스틴 영감도 웃엇고 빌리도 피씩 웃었었는데 또 그 얘기를 꺼내 웃었던 것이다. 보로이도 사귄지 오래 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고마운 사람이었다.

독불장군 없다고 세상은 관계속에서 살아가게 마련 이었다. 어제 처음 만난 쿠엔도 그로테스크한 엽색 취미가 좀 심하다 싶었지만 상당히 호감가는 선이 굵은 친구였다. 그래서 사업을 같이 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런데 왜 자신이 좋게 생각하는 친구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일까 싶다. 하긴 그들이 가진 경제력 그리고 완력과 조직력이 그들을 호탕하고 멋지게 보이게 했고 실제 그랬다. 돈이란 물건이 원체 명료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고지식한 방법으로 남의 눈치를 보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그저 먹고 살 뿐이었다. 빌리가 어렸을때 동리 복덕방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 난다. 사람은 부지런 하면 먹고는 산다고 그러나 큰 부자는 하늘이 내는 것이라고, 그말이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가끔씩 새록새록 기억 나는 것은 참 묘했다. 이 가난한 나라에서 그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니고 그런 호사와 퇴폐를 누리며 사는 쿠엔도 하늘이 낸 부자일까. 하긴 하늘이 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마는 빌리 자신의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게 하는 하늘의 뜻이 무얼까 궁금했다.

빌리 자신이 생각 하기에 자신 역시 하늘이 낸 사람이었다. 짧은 기간에 큰 성공을 해야 겠다고 자신을 다지면서 야심을 불태웠기도 했지만 보로이며 충과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나타나 그들과 돕고 도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결백했다고 자부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그런 파티에도 참석 하는 인물이었기에 지난번의 난데 없는 구속과 재판의 수난을 겪어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 됐다.인생은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암흑속의 항해인지도 몰랐다. 며칠전 까지만 해도 자신이 베트남의 해변에 누워 오전 부터 햇살을 쬐고 있으리라 생각이나 했던가. 또 어젯밤 그런 충격적인 파티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자신에게는 이뤄야 할 꿈이 있었다. 그래서 어제의 일같은 것에 소심하게 얽메여서는 안됐다.

어젯밤 쿠엔 충이 베푼 파티는 인간이 어디까지 퇴폐적일 수 있고 또 얼만큼이나 음란해 질 수 있느가를 시험하기라도 하는 것이었다. 또 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시위이기도 했다.
쿠엔 충은 사이공 최대의 신흥 갑부였다. 그역시 완강하게 자신은 비지니스맨이라고 하지만 전세계로 뻗은 베트남 마피아 조직인 메콩 데블람의 새 보스로 오른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 가을, 조직의 보스였던 카오 반뚝을 공해상에서 제거하고 그 자리를 차지 했다. 화교의 피가 섞여 있는 그는 이가영의 플라잉 드래곤, 그리고 홍콩의 트라이어드와 제휴 하고 있었다. 카오 반뚝이 바로 멕스였다. 가영 조부의 장례식날 기관총 셰례를 퍼부어 이전구를 죽게 했고 빌리와 윤호까지도 섬찟하게 했던 바로 뉴욕 데블람파의 보스 였던 인물 말이다. 그는 사건 직후 사이공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본국 조직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젊고 치밀한 쿠엔의 일격에 고기밥이 되었던 것이다. 가영은 멋진 복수를 해낸 것이었고 쿠엔 으로서는 뉴욕과 홍콩의 조직과 혈맹을 맺은 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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