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교통시스템 취약성 지적하는 목소리 높아져
11일 일어난 미국 항공 대란의 원인은 외부 공격도, 해킹도 아닌, 전산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 파일 손상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파일 손상 하나 때문에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미 전역의 항공 운항이 올스톱 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항공교통시스템의 취약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11일(현지시간) “노탐(NOTAM·항공 전산 정보 체계)이 중단된 근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철저히 검토하고 있다”며 “초기 작업에서 이 중단을 추적하니 문제는 손상된 데이터베이스 파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FAA는 “현재로서는 사이버 공격의 증거가 없다”고 했다. 노탐은 악천후, 활주로 폐쇄 등 비행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적인 안전 정보들을 공지하는 전산시스템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10일 오후 3시28분부터 문제를 일으켰다. FAA는 백업시스템을 가동한 데 이어 11일 오전 5시쯤 시스템을 재부팅했지만 시스템 정상화 여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FAA는 밤새 전화 핫라인을 통해 비행기 이륙을 승인했지만 11일 오전 많은 항공편이 몰리면서 결국 운항 중단 명령이 내려졌다.
FAA가 이날 오전 7시21분쯤 노탐 오작동을 이유로 발령한 운항 중단 명령은 발령 90분이 경과한 오전 8시50분쯤 해제됐다. 하지만 운항 중단 명령으로 인한 연쇄 효과로 지연 출발과 연착, 결항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미 전역의 공항에서 수많은 승객의 발이 묶였다. 항공추적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이날 오후까지 9585편의 운항이 지연되고 1321편은 취소됐다.
제프 프리먼 미국여행협회 회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를 ‘재난’이라고 지적하며 “미국 교통망에 대한 중대한 개선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미 언론도 이번 사태로 미국 항공교통 체계의 취약점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AP통신은 “미국 항공교통이 ‘노탐’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불과 2주 전 미국 최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운영 중단으로 수십만명의 여행자가 발이 묶였다”면서 “두 사건은 국가 항공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보도했다. NYT는 “FAA는 기술 시스템을 신속하게 현대화하지 못하고 충분한 항공교통 관제사 및 안전 전문가를 고용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오랫동안 직면해 왔다”며 “의회가 FAA에 충분한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는 항공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미 의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를 벼르고 있다. 하원 교통·기반시설위원회의 샘 그레이브스 위원장은 “우리 교통망의 큰 취약성이 드러났다”며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원은 5년마다 FAA 예산을 재승인하는데 올해 재승인을 앞두고 있다.
현재 FAA 수장인 연방항공청장은 공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필립 워싱턴 덴버국제공항 최고경영자(CEO)를 신임 항공청장으로 지명했지만, 인준을 담당할 상원 상무위원회가 인사청문회를 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