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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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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66회

안동일 작

“백두산이여 민족의 시원이여'”

 

짙은 수목이 골짜기 사이로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산새가 날고 있었다. 하늘을 찌르고 있는 저 험준한 계곡 사이 사이에 독립군들의 함성이 지금도 메아리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로 아랫 쪽 계곡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벌써 해발 1천 미터는 넘을 텐데 계곡의 물은 그 양이 엄청났다. 쿵쾅대면서 장하게 흘렀다.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된 물줄기 이리라. 빌리는 노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 손을 담갔다. 시릴 정도로 물이 찼다. 쪼그려 앉아 푸덕 푸덕 세수를 하려니 백두산 가는길 백토길의 먼지 뿐 아니라 마음의 먼지 까지 씻어 지는 듯 했다. 만주 독립군들의 기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청산리 계곡의 찬물로 맛본 독립군의 기상은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천지 호텔에 도착 할때 까지 계속 됐고 붉은 비단 이불청의 침대 속에서도 새록새록 되새김질쳐 지는 것이었다.

왕노사가 자신의 젓가락으로 닭요리를 한움큼 집어 빌리의 접시에 올려 놨다.
“먹어 둬, 이따가 산에서 배고프다고 그러지말고.”
“아침에는 아무래도…”
“글쎄 산에서는 그러는게 아니야.”
노인이 오히려 빌리 걱정을 해주고 있었다. 이번 여행 내내 그랬다. 빌리는 4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연변과 백두산, 그리고 쯔안을 여행 하는 강행군의 스케줄에 가장 먼저 노인의 건강이 걱정이 되었었다. 그랬는데 오히려 노인이 빌리보다 더 쌩쌩했던 것이다.
호텔 앞에서 오씨의 일제 사륜구동 짚차를 다시 탔지만 잠시 달려 가자 장백산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삼단 문이 세워져 있는 백두산 입구에 도착 했다. 관리 사무소에 들어가려는 오선생을 왕노사가 손짓으로 말렸다.
“그냥 우리끼리 올라가지 뭐, 사람들 번거롭게 하지말고…”
차를 타고 오면서 오씨는 지난번에 왕노사가 이곳에 왔을때는 중국 중앙정부의 엄청나게 높은 고위 관리와 함께였다고 들려 줬다. 그때는 헬기가 동원됐고 관리사무소에 초비상이 걸렸었다고 했다.
일반 관광객들 사이에 서서 입장료를 냈고 관리소 측에서 운행하는 짚차를 타야 했다. 6명이 타는 짚차 였는데 빌리와 왕노사, 오선생 말고도 서울에서 온듯 한 세명이 함께 차에 탔다. 대학생 인듯한 청년이 나머지 중년의 두사람을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눈인사는 햇지만 특별히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산입구에서 천지 바로 아래까지 길이 닦여 있었다. 콘크리트 포장 도로 였다. 꼬불꼬불한 그길을 중국인 운전기사는 아찔할 정도로 거침없이 엑세레이터를 밟아 대고 있엇다.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백토가 뒤덮여 있는 구릉 아래 짚차가 멎었다. 2백 미터 쯤으로 보이는 저 백토 언덕 너머가 천지 라고 했다. 발목까지 빠지는 고운 백토를 성큼 성큼 밟으며 정상으로 오르려니 좀 싱거운 느낌이었다. 천지를 오르는 길이 이렇게 간단해서야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빌리가 왕노인에게 손을 뻗었더니 노인이 그 손을 탁 하고 쳐냈다.
천지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은 발이 빠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달리다 시피 경사면을 올랐다.
막상 구릉을 다 올랐을때 눈 앞에 펼쳐진 백두산 천지는 감격 그 자체였다. 빌리도 백두산 천지에 올라서 울지 않는 한국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지만 정말 그럴까 싶었는데 막상 자신이 올라서 보니 듣던 것 이상이었다. 푸른 천지물이 보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 지면서 콧날이 시큰했다. 옆에 섰던 왕노인도 그랬는지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탄성이 터져 나온 것은 한참이 지나서 였다.
“정말 대단 합니다. 그랜파.”
빌리가 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노사도 빌리의 손을 꽉 쥐어 줬다.
푸른 물이, 하늘을 그대로 빼다 박은 푸른 물이, 그것도 축구장 수천개나 됨직한 광대하게 넓은 물이 봉우리 사이에 펼쳐져 있었다. 매끈한 대리석으로 깍아놓은 듯한 검은 봉우리, 그옆의 푸른 초원 그리고 기암 괴석들, 그 찬란한 모습들이 그대로 푸른물에 또 다시 박혀 있었다. 천지는 천하의 거울이자 땅에 펼쳐진 하늘이었다.
천지를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는 맑은 날은 일년에 서너번 찾아올까 말까 하다고 했다. 수도 없이 천지에 올랐다는 오 선생도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 본다고 경탄하고 있었다.
그제사 여기 저기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들이 들렸다. 장관에 압도돼 카메라를 들이댈 생각을 못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행여 이 절경이 사라지기라도 할 듯 사진 찍기에 바빴다. 빌리도 목에 걸려 있는 카메라를 눈으로 가져가 여기 저기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오선생이 빌리의 카메라를 건네 받아 왕노사와 빌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저 멀리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구름이 그대로 자신에게 달려와 그리로 싣고 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야 했다.
빌리들이 서 있는 곳이 중국지역인 용문봉이었다. 용문봉에서 정면 왼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장군봉이라고 했다.그옆이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병사봉이었다. 장군봉 바로 아래 구릉이 형성 돼 있었는데 그 구릉에 점점이 사람들이 올라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북한쪽 에서 오른 사람들이었다. 그쪽의 사람들도 너무도 좋은날 천지에 올랐기에 호수 전체가 훤히 다 보이는 이 절경에 환호하고 있는 듯 했다. 북한쪽의 천지에는 봉우리 위쪽 보다 물가인 호수 아랫쪽에 사람이 더 많았다.
빌리는 이천하의 절경들을 뉴욕의 친구들과 함께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아쉬워 해야 했다.
‘다음번에는 꼭 다들 함께 와야지.’
빌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난데 없는 노래 소리가 들렸다. 오랫만에 들어 보는 애국가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애국가 였다. 빌리와 같은 차를 타고 왔던 교수네가 다른 짚차를 타고 오른 학생 일행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처음엔 한두 사람이 작게 시작 했는데 어느결에 합창으로 변하고 있었다. 빌리는 또 한번 가슴이 뭉클해 졌다. 저도 모르게 한소절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애국가가 다 끝나기도 전에 어디 있었는지 중국 군인이 나타나 눈을 부라리며 합창을 제지했다. 그는 장총까지 메고 있었다.
“나라에서 신경 많이 쓰고 있습니다. 왜 한국사람들이 남의 나라 산에와서 울면서 국가를 부르고, 만세를 부르냐는 거죠?”
오씨가 설명해 줬다.
“백두산이 원래는 우리땅 아니었습니까?”
빌리가 물었다.
“그렇게 따지면 백두산 뿐이겠습니까?”
오씨의 대답에 무슨 뜻에서 였는지 왕노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 그러면 물가로 내려가보도록 하지요.”
이좋은 천하절경에 그대로 머물러 돌이 된다 해도 아까울게 없었지만 천지물을 만져 보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지 물가로 내려가는 길은 장백폭포를 거쳐 돌산을 가로 질러 두시간을 족히 걸어 가야 했다. 크게 위험한 등산로는 아니었지만 가파른 경사와 자꾸 무너지는 자갈들 때문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천지에서 쏟아져 내려 폭포를 이루는 장백폭포의 물은 이세상 어느 청량음료보다 시원했고 그어떤 유명 생수보다 물맛이 좋았다. 저 위쪽에서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어떤 이는 수건도 빨고 있는 것이 빤히 보였건만 모두들 거침없이 손으로 움켜쥐어 퍼 마셨고 병에 담기에 바빴다. 빌리만 그랬던게 아니었다. 중국사람들도 그랬다.
천지의 등반이 허가된 첫 주말이어서 그랬는지 천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다. 마치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 처럼 무너져 내릴듯한 자갈산을 사람들의 행렬이 흰선으로 감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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