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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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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65회

안동일 작

“잘들 주무셨습니까? 오늘은 날이 좋아서 산에 오르기는 제격 입니다.”
연길에서 부터 동행을 했던 안내인 오씨가 빌리와 왕노사의 식탁으로 다가 오면서 말했다.
빌리와 왕노사는 백두산 아래 천지호텔에서 어제밤을 묵고 호텔 1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아침상은 푸짐했다. 쌀죽과 중국 야채 볶음, 그리고 닭고기와 돼지 고기 볶음, 그리고 딱딱 하기는 했지만 빵과 버터 까지 있었다. 두사람만의 식탁 이었는데도 종업원 처녀가 연방 접시를 날라 왔던 것이다.
“많이 먹으라고, 젊은 사람이 그렇게 식사를 못해서 어쩔 려고 그래? 오늘 산행을 하자면 아침을 든든히 먹야 돼.”
왕노사의 말은 거침없는 한국말이었다. 왕노사는 빌리네 아버지보다 오히려 한국말을 더 구수하게 했다. 왕노사는 한국인 이었던 것이다.
홍콩 출장에서의 업무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 노사는 빌리를 구룡 사이드 로빈슨 힐의 자신 저택으로 불렀다. 넓은 식탁에서의 두사람만의 저녁을 마치고 거실로 옮겨 앉아 브랜디 잔을 들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왕노사가 ‘빌리 한가지 밝혀둘계 있네.’ 하는 것 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빌리는 깜짝 놀라면서 고백의 내용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그 말 자체가 한국말 이었기 때문이다. 진작 부터 왕노사의 침실이며 서재에 한국어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던 것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거실 벽에만 해도 백두산 천지 사진이 붙어 있는 것들을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적어도 한글을 구사 할 수 있이라는 것은 확신하고 있었다.
왕노사는 자신의 본명이 김영 김씨 석훈이며 고향은 황해도 장연이고 9살 때 만주로 건너가 거기서 살다 일본 패망 후 홍콩에 자리 잡으면서 중국인 행세를 해 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와 과정은 차차 설명해 주겠다면서 이번에 자신과 함께 단 둘이 여행을 갔다 오자고 했다.
그때 빌리는 갑자기 노인이 평양에 가자고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의 아버지가 언젠가 ‘야 그 노인 북괴 공작원 아니야? 너한테 그렇게 조건도 없이 친절하게 나오고…’했던 말이 생각 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때는 ‘에이 그렇지 않아요 그런 거물이 북한 공작원이라니, 공연한 걱정 하지마세요, 오히려 노인이 북한을 다 살 수 있을지도 모를텐데…’ 했지만 그말이 빌리의 심저에 깔려 있는가 보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가?”
노인이 물었다.
“아닙니다, 갑자기 여행을 가자고 하시니…”
“어디로 가자고 하는지 궁금해서?”
“네, 혹시 평양 아닙니까?”
그말을 듣고 노인은 파안 대소를 했다.
“뭐라고 평양? 평양은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빌리는 말끝을 흐려야 했다. 그러나 사실 노인이 북한을 함께 가자고 하면 못 갈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쪽과 피치못할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교포들 가운데도 북한과 교역을 하기위해 평양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빌리로서는 크게 위험 하다거나 못할 일이라는 생각까지는 하고 있지 않았다.
“자네도 한반도 남북 문제에는 그렇게 소심한가?”
“아닙니다. 그랜파 모시고 가는 것이라면 어디든 가지요 뭐. 북한이야 워낙 그동안 제 관심 밖이었기 때문에… ”
“이사람아 이 왕상문이가 북조선 스파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하하”
노인은 이말을 영어로 한 뒤 또 한번 크게 웃었다.
“뭐 우리일을 위해서라면 스파이도 좋고 공작원도 좋겠다만 공작원을 하더라도 크게 해야돼, 지금이 어느땐가?”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튼 자네도 이제부턴 눈을 크게 떠야 돼, 그래서 이번에 백두산하고 광개토대왕 비가 있는 찌안에 다녀 오려고 하는데, 어때? 참 자네, 광개토대왕이 누군지 아나?”
“그럼요, 국민학교 때 배웠던 것 기억 하고 있습니다. 고구려때 우리 영토를 저 요동 까지 넓혔던 대왕 아닙니까?”
“그래, 잘 아는 구만, 그런데 자네가 말하는 그 우리가 누구야?”
“우리 민족이죠.”
“어떤 민족인가? 남한 민족인가? 북조선 민족인가?”
“그야 우리 같은 한민족 아닙니까?”
“그래 그 한민족이 어디서 시작 됐다고 하지?”
“단군 왕검이 백두산에서 시작 하지 않았습니까?”
“비슷하게는 알고 있군.어쨌든 그 백두산에 올라 보고 싶지 않은가?”
“백두산이라면 어렸을때 부터 가고 싶었지요, 저 천지물도 보고 싶었고.”
빌리가 머리위의 액자를 쳐다 봤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왕노사, 김 노인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동안의 습관도 있었고 또 아직은 누구에게도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했기에 그냥 왕노사 였다. 왕노사는 이번 여행이 빌리가 계획하고 있다는 대규모 휴양 위락 단지 조성 사업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도미니카에 다녀오면서 빌리는 자신도 그런 휴양지 리조트를 개발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 했엇다. 친구들도 좋은 아이디어리거 찬동했고 여유가 나는대로 본격적인 조사작업을 진행키로 했었다.
함께 홍콩에 왔던 유진은 서울을 통해 먼저 뉴욕으로 떠나게 했고 홍콩에서 북경, 북경에서 천진, 그리고 천진에서 그제 저녁 비행기로 연길에 도착 했다. 이제 왕노사의 홍콩 여권은 그대로 중국여권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왕노사는 연길에 자주 왔던 모양으로 아는 것도 많았고 아는 사람도 많았다. 모두들 젊은 빌리 하나만을 대동하고 단촐하게 연길에 나타난 왕노사의 모습에 놀라는 기색 들이었다. 연길서 여행사를 한다는 오씨가 안내인으로 나섰다.
“지난번처럼 직승기를 조직하랍니까? 대인?
백두산을 가려 한다고 하니까 오씨가 왕노사에게 물었다. 중국말이었다. 직승기는 헬기를 말했다.
“아니야 이번에는 차로 가지, 가면서 볼것도 많고 한데, 안그런가 빌리?”
“네 천천히 산천경계 구경하면서 오르는게 좋겠죠.”
“산천경계라? 하하”
어제 오전에는 왕노사가 어린시절 살았다는 용정을 둘러 보고 오씨가 마련한 사륜 구동 지프를 타고 7시간을 달려 백두산 산 아래 천지빈관에 도착 했다. 왕노인의 근력은 대단 했다. 용두레 공원이며 일송정, 해란강등을 둘러 보았던 용정 에서도, 또 덜컹대는 산길을 달리면서도 하나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빌리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느라 조금도 쉬지 않았다. 백두산 오는 산길은 멀고도 험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수목 사이의 덜컹대는 꼬부랑 산길이었다. 용정에서 출발해서 다섯시간쯤 왔을때 한번 차를 멈췄다. 청산리라는 곳이라고 했다. 빌리도 어린시절 들었던 기억이 있는 지명이었다. 일제 시대 만주의 독립전쟁 가운데 가장 혁혁한 승리를 거뒀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일제시대, 독립군,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단어 였다. 그런데도 그 말들이 웬지 비장한 느낌으로 뭉클하게 다가서는 것에 빌리 스스로도 놀라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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