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5 F
New York
September 20, 2024
hinykorea
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63회

안동일 작

빌리가 욕실에서 찬물을 뒤집어 쓰고 나왔을 때 숙정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테이블에 오렌지 주스를 한잔 따라 놓고 앉아 긴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그 어느때 보다 상큼해 보였다.조금전의 그녀와는 영 다른 본래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냐? 자다가 벼락 맞는다고 하더니 꼭 그짝 아니야?”
빌리가 주스를 한모금 마시면서 숙정을 쳐다 봤다.
“벼락?”
숙정이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그럼 벼락이었지, 그것도 번개까지 번쩍 거리는…”
“그래서 싫었어?”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따져? 무안하게…”
“무슨일이 있기는 있었구나? 그렇지?”
숙정은 얼굴 까지 빨개져 영 말을 안하려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빌리가 몇번 다구쳤더니 그제서야 사건을 털어 놓았다.
동키 타기 놀이가 순 섹시한 게임이었다고 했다. 두사람이 짝을 지어 당나귀의 눈을 가리고 한사람을 태우고 한사람이 마부가 되어 목표점을 돌아 오는 게임이었다. 대개는 남녀가 짝을 이뤘는데 숙정은 파트너가 없어서 어떤 아주머니와 짝이 됐었다고 했다. 게임에 지면 옷을 하나씩 벗어야 했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그런 게임을 해?”
“사람들이 그러자고 하니까 진행자도 좋다고 하던 걸…”
호텔 단지는 완전한 치외법권 지대였고 대부분 신혼 부부나 쌍쌍이 놀러온 사람들이었다. 또 해변이었기에 벗는다는게 그리 낯선 일도 아니었다. 최초의 승자가 벌칙을 정했는데 엉뚱하게도 옷을 벗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기성을 질러 댔지만 정말로 싫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단다. 대개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들 이었을 터였다. 몇번 하지도 않아 대부분 남자들의 상의가 벗겨 졌고 몇판이 지나면서 여자들 가운데 가슴을 드러내야 할 형국에 처한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남자가 없는 숙정네 편이 일찍 부터 그꼴을 당해야 했다. 나이든 아줌마를 벗기기도 그래서 숙정이 벗어야 했단다.
“그래서 벗었어?”
“그럼 어떻게 해?”
나중에는 여자들도 대부분 상의를 벗었고 나중에는 이긴 팀 남자가 지명하는 팀의 여자를 업고 눈을 가린채 당나귀 사이를 뛰어야 했다. 어떤 젊은 신혼 부부 쌍 가운데 털복숭이 남자가 숙정을 지명했고 숙정은 그남자의 등에 벗은 가슴을 대고 엎혀야 했단다. 그 남자의 아내는 브루스가 업고 뛰었다고 했다.
“완전히 미쳤군 미쳤어.”
“맞아 다 미쳤었어.”
“그래서 그 털복숭이 남자 때문에 흥분해서 나한테 달려 왔단 말이야?”
은근히 부아가 일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우리 동키 녀석이 웬일 인지 흥분을 했는데 다리사이의 물건이 이만해 지는데 내 얼굴이 빨개져 혼났어.”
숙정이 손까지 벌리면서 말했다. 빌리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왜 나를 혼자 보내? 그러니까 벌 받았지.”
“참 어이가 없다, 어이 없어, 어떻게 그런 흉칙한 짓을… 레크레이션 책임자 찾아가서 항의 하던지 해야지.”
“빌리도 거기 있었으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꺼야.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나중엔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자연 스럽던걸, 사람들이 다 그렇게 섹스에 억눌려 있었다는 얘기 아니야?”
“그래서 청연이도 벗었어?”
“그럼”
“그 이상은 없었고?”
“뭘 그리 따지려고 해, 그리구선 놀이가 끝났는데…”
“브루스하고 청연이는 어디있어?”
“자기들 방으로 들어 갔으니까 나도 몰라.”
그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이 묘했다.
그때 노크소리가 나면서 가영과 청연이 들어왔다.
그들도 머리가 젖어 있었다.
“점심 먹으러 내려 가야지.”
가영이 먼저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광란의 축제에 갔다 온 사람들의 저 표정이란…”
빌리가 우정 퉁명스러운 말투로 한마디 했다.
“왜?”
“어떻게 아침부터 그러냐?남사 스럽게.”
“아 그거, 뭐 재미 있던데, 덕분에 숙정이 예쁜 가슴도 구경하고…”
“아야”
청연이 가영의 팔을 꼬집었기 때문이었다.

오후 부터 해변에서나 풀 주변에서 가슴을 드러낸 여자들을 심심치 않게 구경 할 수 있었다. 또 사람들은 저마다 친해져 쾌활하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고 다녔다. 가슴을 들어낸 여자들을 봤을때 처음엔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오히려 이쪽에서 당황해야 했으나 나중에는 하나도 어색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사람의 의식이란 참 묘한 것이었다. 감추려 들고 숨기려 하니까 더 호기심이 나고 들여다 보고 싶었는데 막상 모두 그렇게 나오니까 예사 스런 일이 되었던 것이다.
숙정도 해변에 나가 올리브유를 발라 달라면서 엎드린 채 수영복 상의의 끈을 풀었고 그 다음엔 그 끈을 묶지 않았다.
축처진 가슴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낸 중년 여인들이 왁짜지껄 떠들며 지나갔고 털복숭이 가슴의 뚱뚱한 남편들이 흘금흘금 숙정의 가슴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지나쳐도 빌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해변에 있는 여인의 가슴 중에서 숙정의 가슴이 제일 예뻤다. 은근히 자랑스런 기분 까지 드는 것이었다.
숙정을 업고 뛰었다는 가슴에 털난 마이크 녀석과도 인사를 했다. 마이크의 신부인 제시카의 가슴은 낲작이였다.
‘요놈아 그러니까 네 녀석이 숙정이를 지명 했겠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빌리는 웃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이 리조트의 상술의 하나였다. 그것 때문에 은근히 소문이 나서 관광객들이 더 몰린다는 얘기였다. 동키게임의 최초 승자가 벗기 벌칙을 제안 하는 것이 바로 정해진 각본 이라는 것이다.
또 오전에 그런 게임을 해야 분위기가 더 이상 이상한 쪽으로 흐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머문다는 것 까지 레크레이션 담당자는 파악하고 있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분출구를 찾고 있었다. 가슴쯤 들어 낸다고 그간의 가식이며 허위가 말끔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억압된 자신의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저마다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파토스의 휴가가 필요한 것이고 사람들이 기를 쓰고 돈을 저축해 이런 리조트로 몰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제18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68회

안동일 기자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제4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