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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61회

안동일 작

 

비키는 오늘 아침에도 로마에서 전화를 해 왔다. 그곳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다. 영화에 첫 출연 하는 신인 배우로서는 기록적인 개런티를 받아내면서 패션 모델의 얘기를 담은 영화에 출연키로 했던 것이다. 그녀의 줏가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때문에 빌리는 자신과 비키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질까 조심 스러웠지만 비키는 여전히 빌리에게 기대오고 있었다. 아무리 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자기깐에는 조심을 한다는게 스탶들도 함께 묵고 있을 호텔에서 촬영이 끝나고 이제 돌아 왔다고 밤늦게 전화를 해 오는 정도였다. 로마의 밤늦은 시각은 뉴욕의 새벽이었다.
물론 비키에게 언질을 준 일도 또 그럴 생각도 없었다. 비키가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고 해도 달라질게 없었다. 그런 빌리의 태도가 비키를 한결 더 몸달게 하는지 몰랐다. 비키가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기에 라루시와의 그 일 때문에 비키에게 가해질 위협은 없어진 셈이었다. 참 중요한 얘기를 빠뜨릴 뻔 했는데 바로 라루시의 일이다. 라루시는 죽었다. 마이아미 앞 바다에서 요트를 타고 유람놀이를 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 표면상으로는 또 경찰 공식 발표로도 음주운전으로 화물선과 충돌해 익사 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빌리네 모델 대회가 막이 오르던 바로 전날 오후의 일이었다. 그때 빌리네는 라루시 일당이 대회장으로 쳐들어와 준비물들을 모두 폭파 하고 대회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라루시가 직접 일당 수십명을 이끌고 마이아미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영네 청년들이며 김광호네 한인 청년들을 동원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던 터였다. 물론 디즈니월드 경비대며 올랜도 경찰도 행사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막무가내이며 난폭한 라루시라고 해도 세계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대회에 쳐들어 온다는 것은 어쩌면 자살 행위 였을지도 몰랐다. 그랬는데 저녁 무렵 라디오 방송 뉴스에서 요트사고 소식이 들려 왔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빌리와 윤호는 하퍼 다마토의 얼굴이 떠 올랐다. 복수의 일념에 불타있는 라루시의 흥분을 잠재우고 또 조직을 건사하기 위해서 그런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됐다. 윤호는 “아무튼 넌 하늘이 낸 녀석이야.” 하며 빌리의 어깨를 쳤다.
며칠 뒤 필라델피아 에서 열린 동부지역 맙 커미션 회의가 라루시파의 새 보스로 하퍼 다마토를 인준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전날 에는 라루시의 직속 참모인 파올리가 뉴저지 뉴밀포드 호수에서 죽은 시체로 떠올랐다는 소식이 들렸었다. 모델대회가 아무런 사고 없이 한창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을 때 였다. 맙 커미션은 이러다가는 4대 페밀리의 하나인 라루시파가 공중분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다마토를 인준했던 모양이다.

피곤 했는지 숙정은 빌리의 어깨를 기댄 채 잠에 떨어져 있었다.
빌리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밀어 의자에 뉘운 뒤, 몸을 일으켜 그녀의 의자 조작 단추를 만졌다. 등받이를 뒤로 완전히 제꼈고 발 받침을 최대로 올려 편한 자세가 되도록 했다. 일등석이 좋은 이유는 이 발받침 때문이었다. 모포를 덮어주는 빌리의 손을 숙정이 꼭 쥐었다가 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여행의 피로 떄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지난번 홍콩에서 보았을 때보다 까칠 했지만 아직은 젊음의 팽팽함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숙정, 이 여자도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여자 였다. 따지자면 카니와 비키 바로 두여자의 딱 중간이었다. 비키 만큼 수선스럽지는 않았고 카니처럼 허무와 퇴폐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여인이 아니었다. 두가지를 적당히 지니고 있다고 할까. 왕노사가 이여인을 자신에게 보낸 의도를 곱씹어 보면 미소가 떠올랐다. 꼭 둘을 묶어 두려는 것은 아니었다. 왕노사는 빌리의 결혼에 대해서는 언제나 딴청을 부렸다. 재작년 홍콩 샹그리라 호텔 연회가 끝난 뒤, 둘을 엘리베이터로 함께 내려 보내며 ‘빌리, 군왕은 무치야’하고 한마디 했었다. 스텔라가 숙정을 노려 보고 있었다. 그때는 그 말뜻을 알아 듣지 못했는데 나중에 김장호 화백에게 물어 보니 임금은 여러 여자를 거느려도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참 노인네도… 군왕은 무슨 군왕.’
그 생각만 하면 쑥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앞으로 이 여인들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지 요량이 서지 않았다.
문득 비행기 창가로 어떤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빌리는 고개를 흔들며 그 얼굴을 지웠다. 승혜의 얼굴이었다. 왜 여자들과의 문제, 결혼 생각을 하면 그녀의 얼굴이 떠 오를까? 확실히 모르긴 해도 승혜는 이미 남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한국서는 한다하는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는 듯 했다. 몇달 전 우연히 한국 신문을 보다가 빌리는 깜짝 놀라야 했다. 승혜의 이름이 신문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승혜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이 주인공 이었다. 당시 한국서는 국회의원 선거전이 한창이었다. 각 지역의 유세 상황을 소개 하는 스케치 기사 였는데 충남 서산지구의 상황을 전하면서 유력 후보의 부인인 한승혜 여사가 연단에서 올라 남편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호소 했다는 한 줄의 기사였다. 충남 서산, 그리고 한승혜, 거의 틀림 없었다. 3선에 도전 한다는 젊은 중진 그녀의 남편이 당선 됐는지는 확인 해 보겠다고 했으면서도 깜빡 잊고 넘어 갔었다.
기사를 보면서 기분이 묘했다. 당연히 그랬으리라고 생각 하고 있었음에도 막상 확인이 된듯 싶자 얼굴이 확 달아 오르는 것이었다. 배신감이었을까, 아니면 실망이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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