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수필가, SNS 인플루언서)
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양자경이 택한 선택, 영화 <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재료가 많이 들어가도 밸런스가 뛰어날 경우 향과 맛이 좋게 다가오는 술이 칵테일이다. 알코올 고도수의 술을 베이스로 하다 보니 과하게 마시면 머리게 빙빙 돌고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일상의 스트레스로 뇌가 ‘혼돈의 카오스’에 잠식되는 날 마시는 한 잔의 멋진 칵테일은 술이 아니라 다정한 치유에 가깝다.
최근 한 잔의 멋진 칵테일을 방불케 하는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가 바로 그 작품이다. 멀티버스를 소재로 한 영화니 장르적으로 보자면 SF라 볼 수도 있겠지만, 나라면,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지만 굉장히 멋진 영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무려 139분이라는 아주 긴 러닝타임의 영화임에도 시간은 훌쩍 흘러, 절반 이상이 지나는 동안 숨쉴 틈 없이 웃다 나중엔 폭풍 눈물을 흘렸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화면을 바라보며 나를 사로잡은 혼돈의 대서사시를 잠재울만한, 혹은 더욱 고양시켜줄, 빛깔이 화려하면서도 달고 시원한 칵테일 한 잔이 간절했다.
미국 이민자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의 일상은 고단하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앞뒤 꽉 막힌 친정아버지, 사람 좋다고만 하기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남편, 매사에 삐딱한 딸만으로도 속이 터질 것만 같은데 세무당국의 깐깐한 조사에 응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영수증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 지끈지끈한 일상을 살아가던 에블린은 어느 날 멀티버스(다중우주)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전혀 다른 세상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급기야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에 빠진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히어로적 운명에 처하게 된다. 에블린은 과연 대혼돈의 멀티버스 안에서 세상과 가족을 구할 수 있을까?
아무리 많은 멀티버스 세상 저마다에 나라는 존재가 그 수만큼 살아간다고 해도, 사실 저마다의 삶은 오로지 한 번뿐이다.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 건 나의 존재를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한 존재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우주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수많은 에블린이 다중우주에서 인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만 봐도 그러하다. 영화 속에서 존재의 형태는 달라도 에블린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내게는 커다란 위로로 다가왔음을 고백한다. 어떤 우주의 어떤 에블린도 끝내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
지난 삶을 향한 후회나 회한은 ‘if I should’ 에서 시작되고는 한다. 저 길로 갔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라는 안타까움은 절대로 가볼 수 없는 길, 가리워진 길이라서 애가 탄다.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이나 미래의 어느 시점을 볼 수 있는 설정의 이야기가 숱하게 지어지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일 테다. 사는 동안 시달릴 ‘만약’이라는 이름의 무간지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 말이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우주 어디에서든 나의 존재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나의 본질은 동일하며, 나의 고된 지금이 어쩌면 다른 우주의 내게는 호의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건 감히, 희망이었다. 나의 선택이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나와도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 현실이 힘겨워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 지금 내가 받은 행운에 동요하거나 나대지 말자는 마음가짐, 그러므로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다정한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다, 우린 너무 쉽게 잊는다. 다정이야말로 나와 너, 세상과 우주를 구한다는 사실을. 내 삶은 한 번뿐일지라도 우주 곳곳에 내가 존재한다면, 유일한 내가 영원히 이어지고 있는 것임을.
칵테일을 믹스하는 바텐더는 비단 술의 종류를 많이 아는 것만으로 훌륭한 칵테일을 만들지는 못 한다. 각 술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조합할 수 있는 능력과 본질을 잃지 않도록 양을 조절하는 감각을 벼려야 한다.
멀티버스처럼 밀도와 빛깔, 알코올 도수가 다른 7가지 술로 이루어진 ‘레인보우’라는 이름의 칵테일이 있다. 이 칵테일은 바텐더의 역량이 매우 중요한 술로, 작은 글라스에 서로 다른 술들이 섞이지 않도록 층을 이루게끔 정확한 비율로 따라야 한다. 눈으로 마시는 한 잔이자 마실 때도 한 입에 털어 넣어야 하는데, 층을 이룬 술을 섞어버리면 그야말로 대혼란의 멀티버스가 되어 참사 수준의 맛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칵테일이 되었든 삶이 되었든 이해라는 다정한 접근이 중요한 덕목인가보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이해에 대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행위 앞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의 시작이라고 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원 올앳원스>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대사도 ‘be kind’ 였다. (지은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