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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46회

안동일 작

/ “참 우습네요, 나 때문에 세상이 온통 난리인 모양이죠, 전화 받고 호텔에 가보면 아저씨같은 남자들이, 어떨때는 아저씨보다도 훨씬 멋있는 남자들이 나를 반겼죠, 그리고 대개는 친절하게 대해 줬지요, 그런데 이제와서 왜 나만 같고 이 야단이죠? 세상에 둘도없는 악마 취급을 하고 있잖아요. 내가 이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나요?” /

 

김광호와 급격하게 가까와 진것은 지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지나는 2급 살인과 매춘행위라는 끔찍한 죄명으로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포 여학생 이었다.
3주전 쯤인가 뉴욕의 한인동포들은 아침 데일리뉴스를 보고 깜짝 놀라야 했다. 명문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이 고급 콜걸 노릇을 하다 포주인 백인 청년을 권총으로 살해 했다는 기사가 일면 머릿 기사로 여학생의 사진과 함께 대문짝 만하게 실렸기 때문이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권지나, 10년전에 한국서 이민 온 교포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교포사회를 발칵 뒤집히게 한 사건이었다. 교포사회 뿐 아니라 온 뉴욕이 떠들썩 했었다. 가뜩이나 바로 직전에 미국인 여고생 창녀가 자신 단골 손님인 중년 남자의 아내를 살해 하려다 미수에 그쳐 청소년 매춘 문제가 심각한 사회 잇슈로 등장해 있는 판에 이 사건이 터졌기에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사건의 내막이며 뒷애기가 계속해서 매스컴을 장식 했다. 활달한 모범생인줄 알았던 그녀가 고등학교 다닐 때 부터 콜걸 노릇을 했었고 포주인 폭력조직 소속의 청년과는 오랜 기간 일종의 연인 관계에 있었다는 얘기 까지 나왔다. 그 청년 포주와 배당 문제며 시간 문제로 심하게 다툰 뒤 맨해턴 싸구려 호텔 방에서 자고 있는 청년의 두부를 쏴 절명케 했다는데 그녀가 사용한 권총은 청년포주의 권총으로 밝혀 졌고 총을 쏠 당시 그녀는 마약을 복용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한번 남자와 동침하면 5백 달러에서 1천 달러 까지 받았다는 얘기도 기사화 됐다.
빌리는 이 사건 초기에 지나를 찾아가 만나 보기 까지 했다. 두번이나 찾아 갔었다. 그녀가 자신과는 고등학교며 대학교 까지 같은 동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러 면에서 자신과 무관한 사건이 아니라고 여겨 지면서 웬지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빌리를 유치장의 지나에게 안내한 사람이 바로 김광호 였다. 진작부터 청소년들이며 젊은 기자들 사이에는 청소년 조직의 큰 형님격으로 알려져 있던 김광호는 이번 사건에도 앞장 서서 뛰고 있었다.
사건이 터지자 깜짝놀란 교포사회 전체가 청소년 문제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부리나케 움직였고 교포신문이며 방송사등 언론들도 연일 청소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럴때 마다 언론들은 김광호의 말을 꼭 인용하곤 했기에 빌리가 먼저 그를 수소문해 만나자고 했고 만나보니 역시 의기가 투합하는 인물이었다.
빌리가 변호사였기에 지나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김광호와 함께 맨해턴 남부 경찰서 유치장으로 지나를 찾았을때 지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외견상으로는 길거리에서 또는 대학 교정에서 자연스레 마주치는 여학생의 전형이었다.
어떻게 이런 소녀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도저히 믿어 지지 않았다. 그녀는 한국이름도 권 진아 였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빌리는 지나의 사건이 교포사회 청소년 문제를 극명하게 도출한 필연적인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했다.
지나의 부모는 큰 세탁소를 두개나 경영하고 있었다. 때문에 집안일에 소홀 할 수 밖에 없었다. 부부가 모두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돌아 와야 했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 끼리만 있어야 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미국에 와 이고생 하는지 아니? 모두다 너희들 때문 아니야.”
“공부해라, 공부해, 너희들이 뭐 부러울게 있니? 그저 공부만 하면 되지 않겠니.얼마나 편한세상이야”
진아가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 였다. 이민 가정 부모들은 모두들 한결 같이 자녀들 교육 때문에 미국에 이민왔다고 했다. 지나에게는 남동생이 둘 있었다. 그녀는 중학생이 되면서 부터 동생들 저녁 챙겨 먹이는 일이며 청소등의 집안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두뇌 명석한 그녀는 그러면서도 공부를 잘했고 명문고에 진학 했기에 부모들은 믿거니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나가 비뚤어 나가기 시작 한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부터 였다. 부모들은 여전히 가게일에 바빴으나 동생들도 커서 자기들 스스로 동네 피자집이며 버거킹에 혼자 다닐 수 있게 되었기에 시내로 통학하는 그녀는 부모가 들어 오기 전에만 집에 들어 가 있으면 됐다.
맨해턴은 청소년을 유혹하는 악마의 도시가 갖춰야 할것을 다 구비 하고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학교에는 어울릴 수 있는 한국 학생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여학생들끼리 어울려 다녔지만 이내 남학생들과 어울렸고 부모들이 늦게 들어와 텅 비어 있는 친구의 집들은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훌륭한 아지트요 공간이었다. 호기심에 한두번 해본 마리화나며 코케인은 그녀들에게는 이세상에는 전혀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했고 남학생들과의 육체적 교섭도 뭐 그리 나쁜일도 또 못할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갱조직의 청년들을 알게 됐고 그들의 은근한 권유와 예정된 함정에 의해 나이든 두목급의 파티에 불려 갔고 급기야는 그들이 소개하는 남자들과의 잠자리도 갖게 됐던 모양이다. 이때는 진아가 예뻤다는게 불행이었다. 불법과 탈법이 판을 치는 세상에는 좋은 어른들 보다는 나쁜 어른들이 더 많았다. 저도 모르게 그런길로 빠져든 지나의 그 세계 주변이야 특히 그랬다.
“처음엔 무섭고 떨리고 또 창피히고 그랬지만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내 몸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뭐 잘못 된게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요.”
“얼굴만 마주치면 공부 잘하니 하는 쓸데 없는 소리나 묻는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이 싫었어요. 딸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면서 어린애로만 취급하는 엄마와 아버지가 미웠단 말이에요.”
“돈 벌어 보니까 참 좋대요, 사고 싶은것 마음대로 살 수 있고 친구들에게도 선심 쓸 수 있고 그러니 친구들은 나를 좋아하고…”
“이제는 끝장이에요, 이제 난 살만큼 살았어요, 더 이상 바랄것도 없어요. 어차피 언젠가는 이렇게 끝날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열아홉의 새파란 처녀가 절규 하듯 던지는 말이었다.
“변호사 아저씨도 공연히 헛 고생 하지 마시고 내 문제에서 손을 떼세요.나야말로 이세상에 쓸모 없는 인간이니까요. 내가 쏜 리키란 사람도 진작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놈이었거든요. 지긋지긋한 놈 이었어요.어찌나 끈질긴지, 그를 죽였다는 건 지금도 후련해요.”
그녀의 고통이 어땠다는 것은 알만했다. 그러면서 진아는 이렇게 말했다.
“참 우습네요, 나 때문에 세상이 온통 난리인 모양이죠, 전화 받고 호텔에 가보면 아저씨같은 남자들이, 어떨때는 아저씨보다도 훨씬 멋있는 남자들이 나를 반겼죠, 그리고 대개는 친절하게 대해 줬지요, 그런데 이제와서 왜 나만 같고 이 야단이죠? 세상에 둘도없는 악마 취급을 하고 있잖아요. 내가 이세상을 만들었나요?”
그 경황 중에도 빌리는 자신이 멋있다는 말이 유달리 의식되는 자신을 느끼면서 속으로 피씩 웃어야 했다. 그러면서 이런 청소년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법률 회사에 다니던 시절 자신도 그런 전화번호를 몇개 알고 있어 중동이며 중남미의 클라이언트에게 건넨적도 있었다.
빌리가 진아를 찾았을때 까지 진아의 부모들은 경찰서를 찾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너무도 충격이 컸기에 두사람 다 쓰러져 몸져 누웠는지도 몰랐고 세상 볼 면목이 없었기에 집 밖을 나오지 않고 있는지도 몰랐다.
며칠 뒤 진아에게는 개업 하고 있는 다른 한인 동포 변호사가 담당으로 선임 됐고 그녀는 라이커스 아일랜드의 형무소에 수감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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