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ykorea
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42회

안동일 작 

 

/ 식사중에도 젠마노는 쉬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빌리와의 눈싸움 이후 젠마노의 태도는 다시 털털한 이민자 노인의 그것으로 돌아와 자신이 고생고생 해서 건축업을 일으켰고 청소업에 손댔고 또 트러킹 회사를 인수 했을때의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빌리와 윤호는 그의 장광설에 고개를 끄떡이거나 맞장구를 치기는 했지만 언제 불쑥 트럭 전쟁 얘기를 다시 꺼내 엉뚱한 요구를 해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마조마 해야 했다./ 

 

그랬는데 엊저녁 폴이 연락을 해와 난데없이 젠마노가 빌리를 보고 싶어 한다고 약속을 하자는 것 이었다. 빌리의 안전은 자신이 보장하겠다고 했고 빌리와 친구들은 고심 끝에 승락을 했던 것이었다.

“자네들 이 식당이 나하고 무슨 인연이 있는 줄 아는가? 폴 자네는 빼고.”
존 젠마노가 와인잔을 내려 놓으며 빌리와 유진에게 물었다. 폴은 아는 얘기인지 희죽이 웃고 있었다.
“글쎄요, 집에서 가까운 단골 아닙니까?”
이럴때 응대를 안하면 물어온 사람이 싱거워 지는 법이라 빌리가 틀렸을 줄 뻔히 알면서 대꾸했다.
“아니야 그런 정도라면 내가 왜 굳이 묻겠어? 자네는? ”
유진에게도 물었다.
“젊은 시절 데이트의 추억이라도 있습니까?”
“점점 비슷하게 가기는 하는군, 내가 여기서 버스보이 했었네, 40년 전에 말일세, 그때 시칠리에서 미국에 처음 와가지고 감자까고 토마토 썰고 접시 닦고 그랬지.”
“그래요?”
감탄하는척 해줘야 했다.
“이 식당이 그렇게 오래됐습니까? 보기엔 깨끗 한데요.”
“자꾸 고쳐서 그렇지. 작년에도 수리 했잖아, 저쪽에 발코니도 새로 내고, 테이블도 바꾸고, 자 산들리에 보이지 그것도 이태리에서 직접 공수해오고…”
젠마노는 식당에 애착이 많은지 이것저것 손짓 까지 써가며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럼 이식당 직접 경영 하십니까?”
유진이 물었다.
“뭐라고, 내가 이식당 주인이냐고? 허허허.”
젠마노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큰 소리를 내가며 껄껄 웃었다.
“이 존 젠마노 더러 이 식당 주인이냐고? 허허. ”
그는 폴의 어깨를 두드리며 더 크게 웃었다.
“어이, 바비 이리와 봐.”
젠마노는 아까부터 이쪽을 주시하며 카운터를 왔다 갔다 하던 중키의 대머리 노인을 불렀다.
“바비, 이청년들이 나더러 이식당 주인이냐고 하는데 그냥 놔둘래?”
“참을 수 없지, 어떤 녀석 들이 감히 바비의 식당 주인을 바꿔?”
그러나 부리부리한 눈매의 이탈리안의 노인의 험악한 표정은 일부러 그런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빌리, 인사해 이 식당 주인 바비야, 이 친구가 내가 버스 보이 할때 새끼 웨이터 였지. 이 친구는 자신의 식당이 세상에서 최고 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음식이나 서비스에 대해 불평하는 놈들은 바다에 빠치니까 조심해야 된다고…”
“빌리 정 입니다.”
빌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바비 노인의 손 역시 굳은살이 단단히 박혀 있었다. 윤호도 노인과 악수를 나눴다.
“바비, 이 청년들이 트럭 전쟁 일으킨 장본인들이야.”
“전쟁? 난 전쟁 싫어해, 2차대전때도 전쟁이 싫어 도망쳤는데 전쟁 좋아 하는 사람들이 내 식당에 온단 말이야.”
바비노인은 계속 일부러 짓는 험악한 표정이 오히려 우스꽝 스러웠다.
“저희들도 전쟁 싫어 합니다.”
그러나 젠마노의 소개에 은근히 가시가 돋혀 있었기에 긴장 해야 했고 의미있는 대꾸를 던졌다.
“이 젊은 친구들 때문에 우리가 일년에 3백만불 정도 손해를 보게 생겼는데 오늘 점심은 그보다 더 비싼 것으로 단단히 얻어 먹어야 겠지? 안그런가 바비?”
존 젠마노의 농담에는 계속 가시가 돋혀 있었다.
“그럼, 그 이하로는 우리집 메뉴 들여다 볼 수도 없지.”
“알아 들었는가 빌리?”
젠마노가 빌리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범상치 않은 광채가 있었다. 빌리도 지지 않으려는 듯 그 눈을 뚫어지게 응시 하면서, 입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노인을 공경하는게 우리 동양의 미덕입니다. 특히 먼곳의 노인을 찾아가 좋은 음식을 대접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치고 있죠.”
젠마노는 계속 빌리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두사람을 감싸는 순간이었다.
“하 하 핫, 그렇군”
갑자기 젠마노가 너털 웃음을 터뜨리더니 눈길을 거뒀다.
빌리의 등에는 땀이 솟아 있었다. 빌리는 젠마노가 갑자기 자신의 귀를 물어 뜯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다. 가멘트에리어 담당자인 토니의 귀는 젠마노가 물어 뜯어 잘려 나갔다고 하지 않던가.
음식은 꽤 정갈하고 괞찬은 편이었다. 그러나 워낙 긴장하고 있었기에 그 맛을 충분히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식사중에도 젠마노는 쉬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빌리와의 눈싸움 이후 젠마노의 태도는 다시 털털한 이민자 노인의 그것으로 돌아와 자신이 고생고생 해서 건축업을 일으켰고 청소업에 손댔고 또 트러킹 회사를 인수 했을때의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빌리와 윤호는 그의 장광설에 고개를 끄떡이거나 맞장구를 치기는 했지만 언제 불쑥 트럭 전쟁 얘기를 다시 꺼내 엉뚱한 요구를 해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마조마 해야 했다. 그가 엉뚱한 요구를 해올때 이자리에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거부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호랑이를 잡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 간것 이나라 호랑이 이빨 위에 올라 앉은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트러킹 회사 인수한 얘기를 하면서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넘어갔다. 재미있는 것은 그는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면서 천하가 다 알고 있는 폭력이나 탈법 불법 얘기는 쏙 빼고 자신이 했던 일이 하나같이 합법적이라고 강변했다. 자신은 성공한 비지네스 맨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자네들도 알았겠지만 나는 전쟁을 싫어 하지, 그래서 전쟁을 싫어하는 내 친구가 하는 식당에 와서 맛있는 고향 음식을 즐기는 한가한 이민 1세일 뿐이네, 그런데도 나는 엄청난 모함을 받아 왔고 지금도 적들이 나를 못 잡아 안달을 하고 있지. 사업을 하다 보면 적이 생기게 마련 아닌가? 그 모함들을 하나하나 헤쳐가면서 오늘에 왔는데, 사연이야 많지, 내 얘기를 글로 담으면 멋진 소설이 몇편 나올텐데 말이야, 그래서 언젠가는 자네들도 아는 뿌리라는 소설을 쓴 알렉스 헤일리를 만났지, 그 친구가 내 얘기 써 주겠다고 했는데 죽어 버렸어, 허허, 자료도 많이 줬었는데, 참 폴, 그거 연락해서 찾아 놔라.”
이런 식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옆길로 샜고 그때 마다 새로운 결정을 하곤 했고 지시를 내리곤 했다.
그런 장광설이 계속 되면서 그와 마주한 시각이 두시간 가까이 돼가고 있었다. 얘기를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하는 편이어서 크게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보자고 한게 이런 넋두리나 늘어 놓자고 한것은 아닐텐데 싶은 생각이 계속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젠마노가 자기의 얘기가 아닌 얘기를 꺼냈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53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30회

안동일 기자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제4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