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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최태엽의 독서일기> 다윗과 골리앗

말콤 글래드웰이 지었고, 김규태 번역으로 김영사가 출판했다.

최태엽 (전 KBS 국장 PD, 파워블로거)

‘다윗과 골리앗’ 부제는 ‘거인을 이기는 기술’이다.
책표지에 한글제목이 없다. 영문으로 우상단에 작게 ‘David and Goliath’가 있을 뿐.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저널리스트란 점과 재미있게 읽었던 그의 전작<아웃라이어>가 눈에 띈다
1부 ‘강점이 약점이 되는 순간’을 정리해 본다.
첫 페이지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고 정수로 보라’라는 구약성서에서 인용한 말이 요즘 특히 더 마음에 와닿아서 인상적이다.
프롤로그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골리앗의 방식이 아니라 다윗의 방식으로 싸움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즉 골리앗의 장점인 거대한 몸과 무거운 갑옷과 무기는 벌처럼 가볍게 날아서 쏘는 다윗의 슬링샷(물매)에는 약점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한방에 나가떨어졌다는 것이다. 슬링샷의 파괴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니 권총의 총알과 비슷한 위력이란다.

1장, 규칙을 역이용하는 약자의 전술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인도출신 IT기업경영자가 농구를 전혀 모르면서 자신의 딸 친구들을 어떻게 지도해서 전국적인 강팀이 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딸과 친구들도 농구를 모르고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남들이 하지 않던 전면 강압수비로 상대를 패닉에 빠뜨리고 손쉬운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이것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이긴다는 손자병법의 이치와 같다.
결국 누가 주도권을 잡고 판을 이끌어 가는가가 포인트다.
요즘도 국내외 정치나 기업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개인의 삶에서도 주도권과 상대의 강점을 역이용하는 역발상이 중요하다. 씨름이나 유도에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도 이와 같다

​ 2장, 더 크고 더 강하고 부유한 자의 딜레마에서는 학급학생수의 많고 적음과 부모의 경제력과 자식교육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학급의 학생수가 적을수록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성적도 향상된다는 신드롬 속에 경쟁적으로 학생수를 줄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을 틀리다는 것. 상관관계가 계속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상승하다 오히려 떨어지는 역 ‘U’자 형이다. 때문에 학생수가 적어질 수록 성적이 향상될 수 있으나 너무 적으면 경쟁과 다양성이 부족해 오히려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을 각국의 사례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학급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뤄지고 적당한 팀구성이 이뤄질 수 있는 24명 내지 30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또 부모의 재산이 많으면 자녀교육에 유리할 것 같지만 이것도 미국기준으로 연봉7만5천불이 넘어가면 오히려 역기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기 보다는 부모가 손쉽게 해주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정의 자녀는 스스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의지와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따라서 그런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헝그리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3장, 큰 연못엔 큰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우리가 말하는 ‘용꼬리 보다는 닭머리가 낫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하바드를 비롯해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는 천재들. 그러나 그 천재들 가운데에도 하위 3분1은 생기게 마련이고 그들은 결국은 원했던 것을 포기하고 만다는 것이다.
하바드대신 주립대를 선택했으면 무난히 과학자가 되거나, 전도유망한 엔지니어학위를 받을 수 있었을 학생이 아이비리그에 진학에 경쟁에 밀리면서 좌절하고 결국 전공을 과학이 아닌 손쉬운 분야로 바꾸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아이비리그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보통 성적 즉 용의 꼬리로 학위를 받아 교수가 된다해도, 소위 3류대학에서 우등, 즉 닭의 머리로 학위를 받아 교수가 된 사람보다 연구역량에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우수인용논문을 작성했느냐에서 닭의 머리인 후자가 월등히 많다는 것이다. 원래는 아이비리그 출신이 훨씬 머리도 좋고 학벌도 좋았지만, 어떤 물에서 놀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역전된 것이다.
그러니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낙담할 일이 아니다. 인생은 이제 부터인 것이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어도 훗날 교수가 되기도 하고, 기업에서 승승장구 CEO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여기 또 하나 중요한 시사점은 행복한 나라의 자살률이 불행한 나라의 자살률보다 높다는 것이다. 주변에 불행한 사람이 많으면 으례 그려러니 해서 참고 견디는데 행복한 사람이 많으면 나만 불행하다는 자괴감에 더 깊게 빠지는 것이다.
이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다. 우리나라도 자살률이 높다.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는 많아 더 쉽게 비교되어 상대적 박탈감이 아마 최고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로 남과 비교하지 말라.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란 생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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