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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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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26회

안동일 작

/ 마이아미에 며칠 더 머물기로 한 것은 헤리의 골프대회 때문이었다.아무리 바빠도 이번 만큼은 헤리를 응원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러라도 찾아와야 했을텐데 두사람이 마침 마이아미에 있을때 대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 대회, U.S. 오픈 대회가 이들 죽마고우들에겐 운명의 대회이기도 했다.
헤롤드 오, 헤리는 대학에서도 골프만 쳤고 대학을 나와서도 프로골프에 입문해 이제는 경력 10년의 중견 프로골퍼가 돼 있었다./

 

사무실에 돌아왔을때 윤호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
“어때? 뭐 성과좀 있었어?”
윤호의 표정은 맥이 풀려 있었다.
빌리는 씩 웃기만 했다.
“다들 딱하다는 투로 보지?”
윤호가 다시 물어 왔다.
빌리가 대답없이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고 십여장이 넘는 명함들을 꺼내 명함철에 정리 했다.
“돌아 다니기는 했구나.”
“그럼 밥값은 해야지.”
빌리가 알레한드로와 작성한 가계약서를 윤호에게 던져 줬다.
“아니 50라트나?”
서류를 훓어 보던 윤호가 소리쳤다.
“짜식 놀라긴…50라트라 해도 미싱 2백개 공장이라면 보름 일감밖에 안되는데…”
“야 이거 장난 치는것 아니야?”
“그럼 너나 내 인생이 장난 이란 말이냐?”
빌리는 홍콩에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왕대인이 일러준 그의 직원에게 보낼 펙스 문건을 만들고 있는데 윤호가 옆에서 계속 부산을 떨었다.
“야 이회사에 대해서 알아 보기는 해야 할것 아니야? 어떤데 인줄도 모르고…”
“알아보나 마나야, 전화 해봐야 받지도 않을 거야. 며칠째 공장 놀고 있을 테니까… ”
“그런데 덥썩 물건 실으라고 연락 한단 말이야?”
“우리도 외상으로 들여 오는 건데 뭐.”
“그래도 운송료는 물어야지?”
“그러니까 지금 일하고 있잖아, 너도 그러지말고 운송회사좀 알아봐 홍콩쪽에서 알아 보는 것보다 이쪽에서 알아보는게 나을 테니까.”
왕대인은 자신의 비단에 대해서는 얼마가 됐건 알아서 지불 하라고만 했었다. 어차피 쌓여 있는 물건 이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물건을 싣자고 하니 복잡한 일이 많았다. 덜렁 운송회사에 연락해서 배에다 싣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었다.
외상으로 사는 물건이었는데도 신용장을 개설 해야 했다. 그리고 상무성의 쿼터에 대해서도 알아 봐야 했다. 다행히 홍콩이 낮 시간이었기 때문에 연락이 쉽게 됐고 왕대인의 얘기가 있었는지 홍콩서 연락을 받은 친구가 상당히 싹싹하게 협조적으로 나왔기에 큰 어려움을 덜 수 있기는 했다. 마침 그곳에서 쿼터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됐다. 그문제가 걸리게 되었더라면 만사휴의가 될 터 였다.
밤이 늦도록 바쁘게 이리저리 뛰고 있는데 왕대인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어이 빌리, 시작 한 첫날 부터 한건 했다고, 축하하네.”
“아직 축하 받기는 이릅니다, 대인.”
“그런데 50라트 팔았다고?”
“그런것 까지 보고 받으셨습니까?”
“그럼 누가 하는 일인데 …”
“신경 써 주셔서 감사 합니다.”
“고맙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고, 저 말이야 이번에 2백 라트 다 실어 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아. 어차피 운임료는 한 컨테이너로 같다는데 뭐.”
“네? 그거 다 실어 와서 어디다 쌓아 놓으라구요? 그리고 대금은 어떻게 결재 하구요?”
“그 넓은 미국 땅에 쌓아 놓을데가 없겠어? 대금이야 지난번에 말한대로 편리한 시간에 적당히 알아서 갚아.”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도 홍콩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떤 아가씨 였는데 유진을 찾았다.
유진이 통화를 하는데 어쩐지 빌리를 흘끔 보면서 계면쩍어 했다.
상대방은 다름아닌 스텔라였다. 그때까지도 빌리는 윤호가 스텔라와 계속 서로 연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공교롭게도 홍콩쪽 원단 일을 보고 있는 청년이 스텔라 오빠 라는 것이었다. 다행이면 다행한 일이었지 나쁜일은 아니었다.
스텔라 오빠는 빌리네 일을 자신 일처럼 열심히 해 줬고 빌리의 첫번째 선적은 스무스하게 풀릴 수 밖에 없었다.

물건이 마이아미 항으로 들어 오는 날, 빌리와 윤호는 마이아미로 날라갔다. 여직원 한명을 채용 했기에 사무실 지켜줄 사람은 있었다. 그사이 몇건의 일이 추진 되고 있었다. 인조 실크 선적 문제를 처리하고 있을때 ‘카트라이트 슬랙스’의 마가렛이 연락을 해와 소량이기는 했지만 린넨 원단을 수배해 달라면서 샘플을 건네왔고 다른 메뉴펙쳐 에서도 소소한 주문이 있었던 것이다. 또 유진의 삼촌네 봉제 공장에서도 자기 물건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인조 실크를 나눠 달라고 했다.
마이아미 공항에는 알레한드로가 육중한 뷰익차를 몰고 마중 나와 있었다. 알레한드로의 소개로 역시 쿠바 난민 출신인 통관사를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물건은 하자 없이 통관 될 수 있었다.
알레한드로는 커다란 창고도 가지고 있었다. 보잘것 없는 시설이기는 했지만 아쉬운 대로 몇가지 수리를 하고 나니 알레 한드로가 주문한 양 이외에 빌리네 앞으로 온 엄청난 양의 원단도 쌓아 놓을 수 있었다.
알레한드로의 공장이 쌩쌩이며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곳을 찾았을 때 씨끌 벅적한 스페인어의 난무 속에서 먼지와 실밥을 뒤집어 써 가면서도 빌리와 윤호는 너무도 흥겨워 지곤 했다. 빌리와 윤호가 흥겨울 수 밖에 없는 또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헤리 때문이었다.
마이아미에 며칠 더 머물기로 한 것은 헤리의 골프대회 때문이었다.아무리 바빠도 이번 만큼은 헤리를 응원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러라도 찾아와야 했을텐데 두사람이 마침 마이아미에 있을때 대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 대회, U.S. 오픈 대회가 이들 죽마고우들에겐 운명의 대회이기도 했다.
헤롤드 오, 헤리는 대학에서도 골프만 쳤고 대학을 나와서도 프로골프에 입문해 이제는 경력 10년의 중견 프로골퍼가 돼 있었다.
그러나 10년 동안 그의 성적은 별로 내세울것이 없었다. 1월 초순과 12월 말 몇주를 빼곤 거의 매주말 미 전역을 순회하며 일년에 40여 차례 열리는 PGA 대회에서 헤리는 줄잡아 3백여 차례 출전 했지만 어느해 여름인가 펜실바니아 허쉬타운서 열렸던 대회에서 공동 4위에 입상 했던 것이 가장 좋은 성적 이었다. 나머지 대회에서는 간신히 컷오프에 들거나 중간 정도의 성적을 올리는데 그쳐야 했다. 그만큼 미 PGA의 벽은 높았다. 전세계에서 날고 기는 선수들이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피를 말리는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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