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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콘사 RGM '영웅의 진격'에서
연재소설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25회

안동일 작

 

/ 문제는 운송이었다. 알레한드로는 이왕 마음을 먹었는데 한시가 급하다는 투였다. 오늘 저녁이라도 홍콩에 연락을 해서 지급으로 배에 싣게 되면 보름 이내에 마이아미 항에 도착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생면부지의 쿠바이민자의 한마디 말만 믿고 수만달러 상당의 물건을 운임 지불하면서 미국으로 들여 오자니 위험부담이 있었다. 원단의 경우에 후불이 관례 였기에 모든 리스크는 컨버터가 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빌리는 자신있게 열흘안에 공장에 부려 놓겠다고 약속을 했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자신의 운세를 시험해 보겠다는 배짱도 작용했다./

오후의 세일즈 방문도 오전과 별 다를게 없었다. 빌리의 유창한 언변과 준수한 용모, 세련된 복장 때문이었는지 대개들 친절하게 나왔으나 울긋 불긋한 인조 비단에는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얼만큼은 기대 했던 6층의 업체에서도 빌리가 제시하는 가격에 관심을 표하긴 했지만 자신들도 그런 비단 재고가 많다면서 다음기회에 보자고 했다. 재미 있는 일은 대개의 업체에서 빌리의 옷감 샘플 보다는 빌리 개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표시 했다. 전에 한일이 뭐냐는 것은 거의 한결같은 질문이었고 혹시 우리 회사에서 일할 생각이 없는냐는 얘기 까지 나왔었다.
빌리가 패션 센터에서 마지막으로 들어간 업체가 4층의 트라이던트사 였다. 그곳 메니저와는 4시경에 찾아 가겠다는 전화 약속이 되어있었다.
트라이던트사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 리셉션니스트가 빌리를 맞았다. 급한 회의가 갑자기 열려 그러니 잠시 응접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응접실에는 빌리 말고도 이 회사 사람들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대개들 봉제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컨트렉터들이 었고 개중에는 빌리와 같은 세일즈 맨들도 있었다. 회의가 길어 지는지 얼마간 기다려도 불려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연 기다리는 사람들 간에 얘기가 오고 갔다. 서로들 요즘 경기가 않좋아서 죽을 맛이라는 얘기를 했고 세일즈 맨들은 자신들의 옷감이나 만들어 온 옷들을 펴보이기도 했다.
같은 업종의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얘기가 통해 품평을 하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빌리가 펼쳐보인 샘플에는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와서 어떻게 그걸 팔겠다고 하느냐는 투였다.
그래도 빌리는 실망의 표정을 내비치지 않고 틀림없이 판로가 있을 것이라고 여유자적한 태도를 보였다. 한구석에 앉아 있던 덥수룩한 차림의 히스페닉 중년 남자가 빌리의 샘플에 관심을 표하는 것을 빌리는 읽을 수 있었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언변 때문이었는지 사내는 좌중의 대화에 참여 하지 않았었고 또 사람들도 그에게 관심을 표하지 않았었다.
빌리는 일부러 그와 눈을 마주친 뒤 인사를 보냈다.
빌리의 친절한 접근에 그는 단음절의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 했다. 그의 이름은 안레한드로였다. 마이아미에서 봉제업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일을 계속 해 왔는데 최근 자신 공장에서 만든 옷이 잘못 됐다고 클레임을 놓는 바람에 뛰어 올라왔다고 했다. 오전에도 담당자를 만났는데 얘기가 잘 풀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의 하청일에 진저리가 난다고 했다.
그때 여직원이 빌리를 불렀다. 메니저가 시간이 난 모양이었다. 빌리는 계속 얘기 하자 면서 안레한드로에게 미소를 띤 인사를 보내고 메니저의 방으로 따라갔다.
트라이던트의 구매담당 매니저는 그날 빌리가 만난 어떤 매니저들보다도 고답적이었고 딱딱한 태도로 나왔다. 무슨 거창한 원단이나 개발한줄 알았는데 겨우 그거냐는 투였다. 그와의 면담은 5분도 안돼 끝나야 했다. 말로는 다음기회 필요하면 연락 하겠다고 했지만 빌리의 명함을 탁자위에 그냥 놔둔채 일어서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다른 회사의 메니저들 처럼 자신 명함 꽂이에 꽂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했다.
응접실로 돌아 왔을때 알레한드로는 없었다. 클레임 담당자와 만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빌리는 한시간 가까이 그를 기다려야 했다. 알레 한드로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져서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빌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더니 얼만큼은 풀어지고 있었다.
“혹시 해서 들려 봤는데 젊은 친구 아직 안가고 기다렸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트라이던트를 빠져나왔다.
“말도 안되는 트집잡고, 더러워서 원…”
알레한드로는 계속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젊은 친구 아까 그원단 얼마나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설때 알레한드로가 물었다.
“양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알레한드로씨.”
“가격은 아까 말한 거기서 더 절충이 안되겠어?”
“양에 따라서 절충이 가능하죠, 운송비 때문에 그러니까요.”
“그러면 아직 미국에 와있지도 않단 말이야?”
“실은 그렇습니다.”
“배짱하나 두둑한 친구군.”
두사람은 인근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알레한드로는 홧김에라도 자신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또 빌리가 갖고 있는 원단이 유행이 지난것이기는 해도 아직 마이아미나 남쪽에서라면 먹힐 수 있을것 같다고 했다. 또 안되면 더 남쪽인 멕시코나 쿠바로 넘기면 된다고 했다.
어떻게 쿠바로 까지 갈 수 있냐고 했더니 요즘 쿠바를 드나드는 보따리 장사들이 엄청나게 많아 그 수요를 무시 못한다고 했다.
알레한드로는 쿠바 출신이었다. 자신이 마이아미에서는 가장 큰 봉제공장을 하고 있는데 재봉틀이 2백개나 된다고 했다. 이번 클레임 때문에 일감이 떨어지게 됐는데 그렇게 되면 대개 쿠바 난민 출신들인 종업원을 놀려야 한다고 걱정 했다. 자신에게 딸린 식구가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미싱사며 다림질 하는사람, 뒷일 하는 사람들에 그들의 가족 숫자까지 일일히 열거 하는 것이었다.
빌리는 자신 보다는 가난한 동포들을 걱정하는 그의 태도에서 작은 감동을 느꼈다. 빌리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빌리의 인조 실크 정도라면 아무리 못 받아도 야드당 6달러는 받을 수 있었다. 한때는 10달러 이상의 수준까지 올라 갔던 물건이었다. 빌리는 절반인 3달러에 해주겠다고 했다. 알레한드로는 그렇다면 이왕 모험 하는 것, 50라트 정도 쓰면 어떻겠냐고 하고 나왔다.
1라트는 1천야드를 말하는 원단 단위 였다. 원단은 라트 단위로 판매 됐다. 50라트라면 라트당 3천달러, 15만 달러 라는 얘기 였다.
빌리는 알레한드로가 그 정도나 되는 물량을 소화해 낼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들어 눈을 똥그랗게 뜰 수 밖에 없었다.
빌리의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알레 한드로가 말했다.
“걱정 말게 빌리, 까짓것 내가 10년전에 쪽배 타고 마이아미로 건너 올때 달러 라곤 페니 한잎도 없는 빈털털이 였는데 망해봐야 그때 보다 더 없기야 하겠어?”
문제는 운송이었다. 알레한드로는 이왕 마음을 먹었는데 한시가 급하다는 투였다. 오늘 저녁이라도 홍콩에 연락을 해서 지급으로 배에 싣게 되면 열흘 이내에 마이아미 항에 도착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생면부지의 쿠바이민자의 한마디 말만 믿고 수만달러 상당의 물건을 운임 지불하면서 미국으로 들여 오자니 위험부담이 있었다. 원단의 경우에 후불이 관례 였기에 모든 리스크는 컨버터가 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빌리는 자신있게 열흘안에 공장에 부려 놓겠다고 약속을 했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자신의 운세를 시험해 보겠다는 배짱도 작용했다.
알레한드로와는 다시 연락 하자면서 굳은 악수를 나누곤 커피숍 앞에서 헤어 졌다. 빌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알레한드로의 낡은 명함과 아무렇게나 휘갈긴듯한 가계약서의 서명 뿐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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